푸른숲출판사
도서정보
더 뉴스(THE NEWS)(아시아를 읽는 결정적 사건 9, THE NEWS)
쉐일라 코로넬외·오귀환 역
2008. 07. 25
16,000원
A5, 148*210mm(판형) | 324페이지
9788996023937

지금 우리가 아는 뉴스는 누가 만든 뉴스인가?

아시아 사람들의 땀, 눈물, 희망이 살아 숨 쉬는 아시아의 오늘을 만난다!




아시아 현대사 주요 사건들을 현장에서 취재한 아시아 기자들을 통해 읽는 『더 뉴스(THE NEWS)』. 사건 당시 현장을 취재한 기자이자 사건 당사자였던 이 책의 저자 9명은 「뉴욕타임즈」같은 서구 언론을 통해서는 알 수 없던 새로운 정보와 사실 즉 'NEWS'를 전하고 있다.



서민들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대통령을 취임 2년 반 만에 쫓아낸 필리핀 피플파워Ⅱ, 238년 이어온 네팔 군주제를 지난 역사로 만든 왕세자 왕실 참살사건, 선진국 기업들의 위험ㆍ공해 사업장 개도국 이전이 지닌 위험을 일깨우는 인도 보팔 참사의 전말과 현재, 아프가니스탄 산악 기지에서 만난 미국 정보국 일급 수배자 오사마 빈 라덴이 스스로 밝히는 그가 싸우는 이유, 1990년부터 2008년까지 이어지는 북한 핵 카드 전략의 배경과 본질 등 현재 아시아를 움직이는 핵심요소를 품은 아시아 뉴스의 현장을 찾아간다.



저자들은 피플파워Ⅱ 바닥에는 부패한 보수정권과 무능한 민주정부 양쪽에 지친 시민들의 좌절과 혐오가 있었고, 15,000명을 죽인 보팔참사에는 사건 발생 23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어지는 선진국 기업과 정부의 시민 경시가 있었고,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를 떠받치는 것은 약탈ㆍ추방ㆍ모욕당해온 무슬림들의 분노와 좌절이라고 설명한다.



작품 자세히 들여다보기!

이 책은 아시아의 언론 현실과 그 현장을 뛰는 기자들의 모습을 정직하게 보여주면서 독자들과 함께 아시아를 고민해보고 싶은 바램에서 기획되었다. 아시아 뉴스에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아시아 기자들의 꿈과 울림을 만날 수 있다.

쉐일라 코로넬
[저자]



쉐일라 코로넬(SHEILA CORONEL)

동료 기자들과 필리핀 탐사보도센터를 세워 필리핀 최고위층 부패를 매섭게 파헤쳤다. 아시아의 언론 노벨상으로 부르는 막사이사이상을 받았고, 현재 컬럼비아 대학 언론대학원 교수다.



쿤다 딕시트(KUNDA DIXIT)

유엔담당 기자, 정치ㆍ경제담당 기자로 일했다. 네팔로 돌아가 독립뉴스 에이전시 남아시아지부를 설립ㆍ운영했다. 현재 네팔언론사 히말미디어 공동 발행인이다.



라아즈쿠말 케스와니(RAAJKUMAR KESWANI)

인도 여러 매체에서 발행인, 편집자, 기자로 일해왔다. 보팔 가스 누출 참사를 예견한 탐사보도로 B.D. GOENKA AWARD를 비롯해 여러 상을 받았다.



라히물라 유수프자이(RAHIMULLAH YUSUFZAI)

탈레반 지도자 물라 오마르 최초 인터뷰, 오사마 빈 라덴 단독 인터뷰 등 많은 특종을 터트렸다. 파키스탄 영어신문<더 뉴스 인터내셔널> 편집장이며, 등과 일한다.



나오키 마부치(NAOKI MABUCHI)

1975년 폴 포트 최초ㆍ최후 인터뷰, 마약왕 쿤사와 시아누크 국왕 단독 인터뷰 등 현재까지 캄보디아의 역사적 순간들을 현장에서 취재해왔다.



야수오 요시수케(YASUO YOSHISUKE)

한국말로 김일성 주석과 이야기를 나눈 유일한 외신기자로 1989년 평양축전에 참여한 임수경을 밀착취재했다. <교도통신>서울지국장, 방콕지국장, 논설위원을 지냈다.



다오우드 쿠탑(DAOUD KUTTAB)

오슬로협정을 최초 보도했고 아랍 최초 인터넷방송 <암만넷>을 설립ㆍ운영해왔다. IPI WORLD PRESS FREEDOM HERO를 비롯해 많은 언론자유투쟁상을 받았다.



쁘라윗 로자나프룩(PRAVIT ROJANAPHRUK)

옥스퍼드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현재 방콕 영어신문 <네이션>일요일판 편집장이다.



아흐마드 타우픽(AHMAD TAUFIK)

아시아의 대표적 독립매체 <템포>에서 일해왔다. “정부에 대한 증오와 적의 확산”을 이유로 32개월 동안 감옥을 전전했다. HELLMANN/ HAMMET AWARD를 비롯해 많은 언론자유투쟁상을 받았다.



[옮긴이]



오귀환

<한겨레신문> 전 편집국장. 1982년 <조선일보> 기자로 언론인 경력을 시작해 지금까지 다양한 미디어 활동을 하고 있다. 1988년 한겨레신문으로 옮겨 시사주간지 <한겨레21>편집장, 한겨레신문 사회부장, 정치부장, 편집국장, 이사 등을 지냈다. <인터넷한겨레>(현 한겨레플러스) 창립 대표이사, 중앙일간지 인터넷신문 연합체인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한겨레신문의 ‘북녘동포돕기 캠페인’을 주도해 한국기자협회, 전국언론인노동연합, 한국PD연합회가 공동으로 시상하는 ‘통일언론상’을 수상했으며, IMF 사태 직후 ‘실업극복국민캠페인’ 신문부문 지원활동을 주도했다.

서문

1장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다
피플파워에 쫓겨난 로빈후드 대통령_ 필리핀
네팔 왕세자, 왕실을 쏘다_ 네팔
독가스, 도시를 뒤덮다_ 인도

2장 뉴스 인물을 만나다
오사마 빈 라덴이 당신에게 안부를 전합니다_ 아프가니스탄
살인마 혹은 혁명가 폴 포트를 좇다_ 캄보디아
갈림길에 선 김일성을 만나다_ 북한

3장 아시아의 뉴스, 아시아의 기자
단지 뉴스를 전하려는 욕망 때문에_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태국에서 임금님 문제를 말하는 방법_ 태국
군부독재가 주춤하니 재벌권력이 밀려온다_ 인도네시아

역자 후기

현재 디펜드라의 범행이라는 점은 대체로 수긍하는 것 같지만 일부 의문점이 남아 있고 정확한 사건 경위에 대한 진술도 엇갈리고 있다. 예를 들어 디펜드라는 자기 가족만 죽이려 했을까? 아니면 모든 사람들을 죽이려고 했을까? 처음에는 아버지만 살해하고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려 했는데, 아버지에게 중상을 입힌 뒤 방에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후에 완전히 미쳐 날뛰게 된 것일까? (중략) 분명한 사실은 이 참살이 네팔 정치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고 군주제에 대한 전통적인 존경심을 앗아가버렸다는 점이다. 이번 ‘살해’는 너무나 충격적이라 네팔 사람들은 이 단어를 입에 올리기조차 꺼릴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공화제 지지 물결은 이번 사건에 대한 늦지만 확실한 반응이다. - 63~64쪽 '네팔 왕세자, 왕실을 쏘다_네팔' 중에서 
애초 위험을 별로 걱정하지도 않았지만, 1,000킬로미터를 종군하는 동안 주민들 도움으로 베트남군에게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안전한 가운데 취재를 마칠 수 있었다. 의심은 말끔히 사라졌다. 크메르루주는 인민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지침 없이 대베트남 항전을 해나가고 있었다. (중략) 민주캄푸치아 일반 전사들에 대한 믿음은 버리지 않았지만 지도부에 대해서는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전황에 대한 확신과 지도부에 대한 불신, 그 둘을 가슴에 담고 나는 방콕으로 되돌아 나왔다. -163~164쪽 '살인마 혹은 혁명가 폴 포트를 좇다_캄보디아' 중에서 
공범자인 주정부와 중앙정부가 함께 검사의 법복을 입고 기소권을 행사하고, 유니온 카바이드가 저지른 범죄를 앞장서서 용서하는가 하면 희생자들의 이익을 해치는 온갖 짓들을 법원으로부터 추인받은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애당초 주정부와 중앙정부는 시민의 안전을 확보한 뒤에야 유니온 카바이드 사업을 승인해주겠다는 개념조차 없었다. (중략) 사망 보상 신청 2만 2,149건 가운데, 1만 5,100건만이 보상을 받고 나머지는 거부당했다. 그래서 공식 사망자 ‘약 15,000명’도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98~99쪽 '독가스 도시를 뒤덮다_인도' 중에서 
용모와는 달리 손은 섬세했고 어투는 수줍고 부드러웠다. 이 사람이 ‘테러’를 후원하는 장본인이라고 상상하기 쉽지 않았다. 오사마 빈 라덴은 자신이 테러리스트라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이 가난하고 작은 나라들을 공격했고, 무고한 사람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무슬림들에게 테러를 자행해왔다고 비난했다. -127쪽 '오사마 빈 라덴이 당신에게 안부를 전합니다_아프가니스탄' 중에서 
1990년 2월 소련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 폐지 선언, 10월 동서독 통일로 이어지면서 국게 정치 환경은 급변하고 있었다. 1989년 6월 중국에서는 학생들의 민주화 시위가 천안문 사태로 이어졌다. 세계사의 극적인 변화는 한반도에도 몰아쳤다. 한국은 서울올림픽 기간 동안 헝가리를 시작으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과 임시 외교 관계를 맺은 뒤, 1990년 9월 공식 외교 관례로 들어가는 첫 협정을 체결했다. 이런 움직임은 중국과의 관계정상화로 이어졌다. (중략) 북한은 미국, 일본과 관계를 개선할지 아니면 핵무기를 개발해 독자적 생존을 추구할지, 말 그대로 기로에 놓여 있었다.-196~197쪽 '갈림길에 선 김일성을 만나다_북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