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출판사
도서정보
촐라체
박범신 저 ·푸른숲
2008. 03. 01
9,800원
330페이지
9788971847671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연재되며 누적 방문자수 100만 명을 돌파한 화제의 소설 <촐라체>가 단행본으로 출간된다. 목숨을 걸고 험난한 등정에 나선 두 형제를 주인공으로 한 이 소설은, '홀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 그 뜨거움에 대한 목마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에베레스트 서남쪽에 있는 촐라체(6440m)라는 산의 정상을 오른 뒤 하산 중에 실족한 형제가 7일 만에 극적으로 생환한다. 소설가 박범신은 가혹한 생존의 갈림길에서 신뢰의 끈을 놓지 않고 끝내 인간의 길을 걸어간 두 남자의 초상을 그린다.

생존의 길과 인간의 길이 하나로 모이는 경험, 극한 상황에서 오히려 더욱더 존엄해지는 인간 삶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산악인 박정헌, 최강식이 실제로 촐라체 등반에서 겪은 조난과 생환의 경험이 작품의 모티프가 되었다. 단행본으로 출간하면서 온라인 연재 당시의 서사 구조를 한층 긴박감 넘치게 재구성했다.

박범신
1946년 충남 논산 출생. 원광대 국문과 및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1978년까지 문예지 중심으로 소외된 계층을 다룬 중ㆍ단편을 발표, 문제작가로 주목을 받았으며, 1979년 장편 『죽음보다 깊은 잠』『풀잎처럼 눕다』등을 발표, 베스트셀러가 되어 70~80년대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활약했다. 1981년 『겨울강 하늬바람』으로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빛나는 상상력과 역동적 서사가 어우러진 화려한 문체로 근대화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를 밀도 있게 그려낸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며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영원한 청년작가'로 불리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던 중 1993년 돌연 절필을 선언하고 문학과 삶과 존재의 문제에 대한 겸허한 자기 성찰과 사유의 시간을 가졌다. 사유의 공간으로 선택한 곳은 세상에서 가장 높고 멀게 느껴지던 히말라야였다.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등 히말라야를 여섯 차례 다녀왔으며 최근에는 킬리만자로 트레킹에서 해발 5895미터의 우후루 피크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1996년 유형과도 같은 오랜 고행의 시간 끝에 작품활동을 재개한 후 영혼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작품 세계로 문학적 열정을 새로이 펼쳐보이고 있다.

『외등』은 그가 글쓰기를 떠나기 전의 문학세계와 그 후의 문학성이 어우러져 있는 작품으로, 해방 후의 현대사의 흐름을 같이 걸어온 주인공 서영우와 민혜주, 노상규 이 세 인물들을 통해 잃어버린 사랑의 원형을 찾아 결국엔 죽음에 이르는 피빛 사랑을 그려내면서 해방 후 현대사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더러운 책상』은 특이하게 '단장'으로 이뤄져 있다. 박범신의 자전적 소설로도 볼 수 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그가 겪었을 젊은 날의 고뇌들이 그렇게 표현된 것처럼 평가받는다. "새벽이다. 무엇이 그리운지 알지 못하면서, 그러나 무엇인가 지독하게 그리워서 나날이 흐릿하게 흘러가던, 그런 날의 어느 새벽이었을 것이다."라는 그의 말은 예술가로서 인간으로서 살고자 했던 그의 고민을 엿보게 해준다. 작가 박범신은 이 작품으로 창작과비평사가 제정한 2003년 제18회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남자들, 쓸쓸하다』에서 박범신은 그의 문학인생 못지않게 녹록치 않았던 남자인생 60년을 이야기한다. 오로지 아들 하나를 욕망하던 어머니의 늦둥이 외아들로, 수많은 복병에도 불구하고 30년 이상 한 울타리를 지켜온 남편으로, 수십 년간 밥벌이를 감당해야 했던 고단한 아버지로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며 이 땅에서 남자로 살아간다는 것의 참된 의미를 짚어본다. 또한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어가는 사회 구조 안에서 이제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남자들, 즉 구시대의 ‘화려한 권력자’에서 이 시대의 ‘쓸쓸한 인간’으로 자리바꿈한 중년 남자들의 현주소를 살펴봄과 동시에, 이제는 사회의 구석자리에서 불안한 헛기침만을 날릴 수밖에 없는 그 ‘쓸쓸한’ 남자들의 진솔한 속내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비우니 향기롭다』는 더욱 더 소유하고자 하는 물질 만능주의 현실에서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나'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안내서이다. 내면의 깊이가 더욱 확장된 저자가 히말라야에서 깨달은 바는 진정한 삶의 행복은 가지려는 마음보다 비우려는 마음에 있다는 것. 이는 바로 불교 철학의 '무소유'와 직결된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소유하지만 살아가는 기쁨이 더 줄어든 시대. 이 책은 우리에게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이 외의 작품으로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불의 나라』 『물의 나라』 『겨울강 하늬바람』 『킬리만자로의 눈꽃』 『침묵의 집』 『와등』 『더러운 책상』 『나마스테』등이 있고, 소설집에 『토끼와 잠수함』 『덫』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 등이, 연작소설에 『빈 방』 『흰수레가 끄는 수레』 등이 있다. 2001년 소설집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로 제4회 김동리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05년 『나마스테』로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가의 말

프롤로그
베이스캠프
첫째 날
둘재 날
셋째 날
넷째 날
다섯째 날
여섯째 날
베이스캠프
에필로그

작품 해설
등반 용어

2, 3미터를 가고 한참씩 숨을 몰아쉬고, 2, 3미터를 가고 또 한참씩 숨을 몰아쉰다.
"자꾸... 잠이... 와, 형..."
영교가 눈속에 코를 박으며 중얼거린다.
"눈 감지 마. 하... 늘을 봐!"
나는 씨근덕거리면서 영교 곁에 쓰러져 누워 그의 어깨를 흔든다.
잠들면 죽음이라 할지라도, 죽음이 오는 것조차 모르는 척하고, 눈 감고 잠들고 싶은 건 나도 마찬가지다. 손끝까지 움직일 힘이 없다. 살아 있는 영교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래서 혼자라면, 호수를 건너다가 나도 쓰러져 눈 감고 말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 있다.
나 혼자 살아 있는 게 아니다. 우리... 가 살아 있다. 내가 포기하면 영교도 죽는다. 그러니, 함께 가야 한다. 나도, 영교도, 혼자만의 힘으로 갈 수는 없다. 내가 앞에서 끄는 힘과 그가 뒤에서 의지를 갖고 기는 힘이 보태져야 겨우 움직일 수 있다. - 본문 262쪽에서 
김선배는 당신 스스로 로프를 끊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확실히 느낀다.
그 사고의 충격으로 산행을 하지 못했던 지난 십여 년간, 김선배의 추락을 직접 목격한 공포감 때문에 구체적으로 상상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알 것 같은 게 아니라 확신이 든다. 나를 살리기 위해 로프를 끊고 있는 김선배의 손이 보이는 듯하다. 널 저승길까지 데려가진 않겠어. 소리쳐 말하는 김선배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208
돌이켜보면, 내가 일상적인 삶을 택해 클라이머의 꿈을 접은 것도, 그 일상의 길에서 따뜻하고 성실하게 일구고 싶었던 가정생활, 사회생활에의 적응에 계속 실패해온 것도, 그 모든 연원은 김선배의 추락사다. 나는 김선배의 추락 이후 피나게 노력했지만 결국 아무것에도 적응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판사판이다. 김선배를 넘어서지 않고는 앞으로의 삶도 그럴 게 뻔하다. 무슨 일을 해도 텅 빈 사막 같은 삶만이 계속될 터이다. 애당초 촐라체 북벽을 선택해 온 것도, 이 성공을 밑거름 삼아, 다음엔 혹독하기 이를 데 없는 에베레스트 남서벽으로 김선배를 찾아 떠나고자 한 은밀한 소망 때문이 아니던가. 김선배를 넘어서야 비로소 살아 있는 것처럼 살 수 있다. 그것은 확실한 결론이다. 그런데 그 김형주 선배가 저기, 설연이 날리는 촐라체 위에서 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214
히말라야는 산스크리트어로 눈을 가리키는 '히미아(Himia)'와 보금자리를 뜻하는 '알라야(Alaya)'의 합성어로 '눈의 보금자리'라는 뜻이었다. 서쪽 끝의 낭가파르바트에서 동쪽 끝까지 장장 2500칼로미터나 뻗어 있는 히말라야는 8천 미터 이상 되는 고봉 14개를 비롯해 수많은 설봉들을 품고 있는 지구의 등뼈로서, 아직도 대부분 사람의 발걸음을 허용하지 않는 죽음의 지대, 혹은 불멸의 초월적 상징으로 드높이 솟아 있었다. 수천의 봉우리 하나하나가 그대로 다 하나하나의 별과도 같았다.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그곳은 죽음의 지대이면서 죽음을 넘어선, 살아 있는 존재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299
여명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베이스캠프의 불빛이 멀지 않다. 한 시간 이상 걸어왔는데 불빛은 너무 가까워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다. 밤은 이래서 좋다. 불빛과 불빛 사이에 아무런 절망적인 거리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 그 따뜻한 착각.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