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출판사
도서정보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세트
레프 톨스토이
2017. 11. 27
9,800원
규격외 변형 / 252페이지
9791156751533

새롭게 태어난 톨스토이 문학의 완결판 『톨스토이 단편선』. 톨스토이는 러시아 문학사에서, 아니 세계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이다. 톨스토이의 작품들은 전집을 비롯해서 이미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출간되어 있다. 하지만 톨스토이의 민중 문학이 온전하게 번역된 예는 아직까지 없었다. 그만큼 톨스토이의 민중 문학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우리말로 옮겨 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학자나 역자가 드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러시아 문학, 그중에서도 톨스토이 문학을 수십 년 동안 외곬으로 연구한 고려대 박형규 명예 교수가 번역을 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의의를 가진다.

레프 톨스토이
러시아의 소설가ㆍ사상가.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와 더불어 ‘러시아 3대 문호’로 일컬어지고 있다. 1828년 남러시아 툴라 근처에 있는 영지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명문 백작가의 4남으로 태어났으며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모을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카잔대학에 입학했으나 중도에 자퇴했다. 1847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농장일에 전념했으나 실패하고 1851년에 카프카즈의 군대에 들어갔다. 1852년 처녀작 『유년시대』를 발표하여 투르게니에프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그 후 러시아 농민의 비참한 현실에 눈을 뜬 그는 농민계몽을 위해 야스나야 폴랴나 학교를 세우고 농노해방운동에도 활발히 참여하였다.
그후 1869년에 완성한 『전쟁과 평화』로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으며, 러시아의 현실과 고통받는 러시아 민중의 삶을 여러 각도에서 포착하여 생동감 있게 그려내 오늘날까지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로 인정받고 있다. 1870년대 후반기에 수많은 정신적 갈등과 고뇌를 겪고 난 뒤 홀연히 농부로 변신하였으며 1885년에는 뽀스레드니끄(중개인이라는 뜻) 출판사를 만들어 러시아 민화와 복음서의 진리를 대중에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꾸민 책들을 펴내기 시작했다.

1870년대 후반 『안나 카레리나』의 마지막 몇 장을 쓸 무렵 그는 모든 것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죽음에의 공포에 사로잡혀 인생의 의미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게 된다. 결국 삶의 의의는 과학이나 철학도 설명할 수 없고, 이성의 힘에 의지해서도 해결되지 않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민중의 태도에서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녀의 비극은 사회 가치에 대한 대안을 추구하는 레빈의 행위와 평행을 이루는데, 레빈은 자신의 영지에 있는 농부들 사이에서 해답을 찾는다. 『안나 카레리나』에서 정신적 위기와 극복이 이른바 톨스토이의 회심(回心)이며 『참회록』 속에 서술된 고백의 내용이다. 여기서부터 톨스토이는 현대의 타락한 그리스도를 배제하고 원시 그리스도에 복귀하여 근로, 채식, 금주, 금연의 생활을 영위했다. 원시 기독교의 소박성을 지닌 포괄적인 비전에 부합된 삶을 살려고 노력함으로써 예언적인 현자가 되었다. 톨스토이는 그렇지 않으면 뒤얽혀버렸을 인생에서 자기 책의 핵심을 형성해 주는 인생의 의미를 끊임없이 추구했다.
도덕적 필연성과 합리적 기독교 윤리에 바탕해 농민적 무정부주의, 악에 대한 무저항 정신으로 대변되는 그의 사상은 한때 전 서계로 퍼져 톨스토이즘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후 수많은 평론과 소책자, 교훈적인 단편소설 등을 통해 사랑과 믿음으로 가득 찬 삶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주장하고 인간이 만들어낸 정부, 교회 등의 제도와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자신의 견해를 전파했다.

톨스토이의 걸작 『전쟁과 평화』는 나폴레옹 침략 사건을 러시아의 여러 가정 문제를 통해 그려낸 거대한 서사시다. 이 작품에서는 특히 자신들의 삶 속에서 중요성과 의미를 찾고자 하는 두 사람, 즉 안드레이 볼콘스키 왕과 피에르 베주호프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톨스토이는 남은 생애를 자신의 원칙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한편, 자신의 철학을 책으로 구현하면서 보냈다. 종교적 전향 이후에는 비록 도덕주의자 톨스토이가 인생과 인간 경험의 활력 및 다양성을 뛰어나게 포착해 낸 예술가 톨스토이보다 우세할지라도, 그 시기에 나온 작품들 가운데 일부는 그의 가장 훌륭한 작품에 속한다. 특히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과 『크로우처 소나타』(1891)가 그렇다.

톨스토이의 신비주의와 금욕주의는 헌신적인 추종자들을 매혹시킨 반면, 아내와 가족으로부터는 그를 소외시켰다. 82살 되던 해 그는 그의 가르침과 그의 개인적 부유함의 부등으로 괴로워하던 중, 그의 아내와 말다툼 한 후 집을 나왔다. 3일 후, 1910년 11월 20일 빈촌의 정거장에서 폐렴으로 죽었다.

러시아 민화에 기반을 둔 『바보 이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등과 같은 짧지만 진정한 교훈을 주며 삶의 의미를 반추하게 하는 작품들을 써내기도 했다. 그 외의 작품으로 『교의신학비판』,『참회록』,『나의 신앙』,『부활』,『유년시대』,『소년시대』,『청년시대』,『세바스토폴 이야기』, 『카자흐 사람들』,『빛이 있는 동안 빛 가운데로 걸으라 』,『어떻게 전쟁을 끝낼 것인가』등 다수가 있다.
[예스24 제공]

제1편 일리야스
제2편 작은 악마와 빵 한 조각
제3편 사랑이 있는 곳에 신도 있다
제4편 바보 이반
제5편 아이가 어른보다 지혜롭다
제6편 촛불
제7편 불은 놓아두면 걷잡을 수가 없다
제8편 달걀만 한 씨앗
제9편 대자
제10편 예멜리얀과 빈 북
제11편 노동과 죽음과 병

[작은 악마와 빵 한 조각]
톨스토이는 1886년 2월에 A. N. 아파나시예프의 작품집 『민중의 러시아 종교 전설』을 읽으면서 영감을 얻었다. 그 작품집에 “인간의 이성을 어둡게 하고 인간을 온갖 도덕적 죄악과 범죄로 불러내는 것과 같은 악덕으로서의 알코올 중독에 단죄를 내리고 있다.”는 글이 실려 있었던 것이다. 톨스토이는 비록 민중의 불행(기아, 질병, 범죄 등)이 모두 알코올 중독에서 비롯된다고 여기지는 않았지만, ‘술을 빚는 것의 도덕적 죄악’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하고 이 작품을 쓴 뒤 금주를 장려하는 활동을 펼쳤다.

농부들은 곧 석 잔째 술을 마셨다. 그러자 완전히 취해서 녹초가 되어 버렸다. 그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이며 소리를 지를 뿐, 남의 말에는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자 하나둘 흩어지기 시작했다. 한 사람, 두 사람, 혹은 세 사람씩 떼를 지어 비틀거리며 거리로 나갔다. 주인은 손님을 배웅하러 나갔다가 물웅덩이에 거꾸로 쓰러져 흙탕물을 뒤집어쓴 채 돼지처럼 뒹굴며 꿀꿀거렸다.
이것은 큰 악마의 마음에 쏙 들었다.
“거참, 아주 좋은 음료수를 발견했구나. 이것으로 훌륭하게 빵 한 조각의 값을 치렀다. 한데 너는 어떻게 해서 이런 술을 만들었지? 넌 틀림없이 그 속에 여우의 피를 넣었을 거야. 그래서 사람들이 여우처럼 교활해진 게 틀림없어. 그다음에는 이리의 피를 넣었겠지. 그래서 사람들이 이리처럼 사나워진 거야. 마지막으로 돼지 피를 넣었겠지. 그러니까 놈들이 돼지처럼 된 것 아니겠어?”
작은 악마가 말했다.
“아뇨, 저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자에게 곡식이 남아돌게 해 주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그 짐승들의 피는 그자의 마음속에 쭉 있었던 겁니다. 단지, 그자가 필요한 만큼의 곡식을 생산할 때는 그 피가 출구를 찾지 못했던 거지요. 그즈음에는 그자가 빵 한 조각을 아끼지 않았는데, 곡식이 남아돌게 되자 좋은 위안거리를 찾고 싶어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술을 빚어 마시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후 그자는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자기의 위안거리로 삼기 위하여 술을 마시다가, 몸속에서 여우와 이리와 돼지의 피가 뒤섞여 용솟음친 겁니다. 그래서 이제는 술만 마시면 아무 때나 짐승이 되어 버린답니다.”
큰 악마는 작은 악마를 칭찬하고 빵 한 조각의 실패를 용서한 다음, 졸개들의 우두머리로 뽑아 주었다.
--- p.24~25 중에서

[사랑이 있는 곳에 신도 있다]
1885년 3월 후반에 쓰여졌으며, 그해 6월에 A. D. 키프쉔코의 표지화와 함께 중개인출판사에서 소책자로 출판되었다. 이 작품에서는 ‘신은 곧 사랑이며, 사랑을 베풀어야 할 대상 역시 신’이라고 강변한다. 아브데이치라는 구두장이의 아내는 세 살짜리 아들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난다. 그 아이마저 조금 자란 뒤 병으로 숨을 거둔다. 실의에 빠진 아브데이치는 신을 몹시 원망하는데…….

아브데이치는 아들의 장례를 치르고 나자, 완전히 실의에 빠져서 헤어 나오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신을 원망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자신의 삶이 어찌나 비참하게 느껴지던지, 차라리 죽게 해 달라고 신에게 빈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늙은 자신을 내버려 두고 어리디 어린 외동아들을 데려간 신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래서 짐짓 교회에도 나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트로이싸에서 고향 사람이 찾아왔다. 그 사람은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었는데, 벌써 팔 년째 성지를 순례하고 다니는 중이었다. 아브데이치는 그 노인과 세상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갑자기 마음이 울컥해져서 자신의 슬픔을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여보게, 난 이제 산다는 게 의미가 없어졌네. 그저 죽고 싶은 마음뿐이야. 오직 그것만을 신께 빌고 있다네. 난 이제 아무런 소망도 없는 인간이 돼 버렸어.”
--- p.27~28 중에서

[바보 이반]
『L. N. 톨스토이 백작 작품집』 제12권(1885)에 수록된 작품으로, 민담으로 널리 알려져 있던 [바보 이반]의 이야기에서 교활한 형들의 형상을 변용하여 만든 것이다. 권력과 돈, 전쟁에서 벗어나기를 열망하던 민중의 마음을 여실히 나타내 보여 주는 이 작품은 큰형인 세묜을 통해서 전쟁을 비판하고, 작은형 배불뚝이 타라스를 통해서 자본주의 체제의 모델을 제시했으며, 누이 말라니야를 통해 특권 계급의 기생충적인 삶을 폭로하였다. 이러한 이유를 들어, 종교 검열 위원회는 이 작품의 재판본을 압수하고 판매를 금지하였다.

큰 도깨비가 어디를 찾아가도 돈을 보고 무엇을 주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무엇이든 딴 걸로 가져오거나, 일을 하러 오거나, 그렇지 않으면 적선을 바라고 동냥을 하구려.”
큰 도깨비가 가진 것이라곤 오직 돈밖에 없었다. 그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적선을 바라고 동냥을 할 수도 없었다. 급기야 큰 도깨비는 잔뜩 화가 났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당신들에게 금화가 필요할 텐데. 대체 돈을 언제 주어야 한단 말인가?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살 수가 있고 어떤 일꾼이든 부릴 수가 있는데 말이야.”
그러나 바보들은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아뇨, 그런 건 필요 없습니다. 여기선 물건을 사면서 돈을 낼 필요도 없고 나라에 세금을 바칠 일도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그까짓 돈은 가져 봐야 쓸 데가 없어요.”
큰 도깨비는 저녁도 먹지 못한 채 잠자리에 들었다. [중략]
큰 도깨비는 별수 없이 이집 저집 돌아다니게 되었다. 그러다 이반의 궁궐로 들어갈 차례가 되었다. 큰 도깨비가 점심을 먹으러 갔을 때, 이반의 궁궐에서는 벙어리 누이가 점심을 차리고 있었다.
그녀는 게으름뱅이에게 속은 적이 많았다. 게으름뱅이는 일도 하지 않는 주제에 꼭 맨 먼저 밥을 먹으러 와서는 장만해 놓은 음식을 싹싹 먹어치우곤 하였다. 그녀는 사람의 손만 보고도 게으름뱅이인지 아닌지를 곧잘 분간하였다. 손에 못이 박힌 사람은 식탁에 앉히지만, 못이 박히지 않은 사람은 먹다 남은 찌꺼기만 주었다.
큰 도깨비가 식탁 머리에 앉자 벙어리 처녀는 여느 때처럼 얼른 그의 손을 들여다보았다. 못이 박혀 있지 않았다. 손이 아주 깨끗하고 매끈했으며 손톱이 길게 자라 있었다. 벙어리 처녀는 무엇이라고 외쳐 대더니 큰 도깨비를 식탁에서 끌어냈다. --- p.101~103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