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출판사
도서정보
꼭 완벽하지 않아도 돼
엘리 스와츠
2018. 09. 10
10,000원
264 페이지
9791189208073

‘4, 8, 12, 16, 20, 24…….’
나는 마음속으로 쉼 없이 4의 배수를 세고 있어!
안 그러면 내 동생한테 나쁜 일이 생길 것 같거든.
 
반에서 일등을 도맡아 하는 우등생에다, 무슨 일이든 완벽하게 척척 해내서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몰리! 그러나 남들은 눈치채지 못하는
혼자만의 고민으로 속앓이를 하는데…….
 
회사 일에 치여서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어린 동생에게 보호자 역할을 하다가 강박증에 걸린 소녀의 홀로서기!
 
 

이 책의 특징
 
왠지 나쁜 일이 생길 것만 같아 : 내 안의 불안감 들여다보기
손을 ‘지나치게’ ‘열심히’ ‘오래’ 씻는 사람이 있다. 소지품을 늘어놓을 때 ‘반드시’ 순서를 지켜야 하는 사람도 있다. 조금이라도 순서가 어그러지면 처음부터 다시 차례로 늘어놓아야만 안심을 하는……. 또, 특정한 숫자를 반복해서 ‘계속’ 세는 사람도 있다. 홀수라든가, 2의 배수라든가, 10의 자리라든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못 견디는 거다.
이런 증상은 사춘기 즈음에 누구나 한 가지쯤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물론 어른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단지 그 증상의 정도가 더 하냐 덜 하냐의 차이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은 불안한 마음에서 출발한다. 내 마음 어딘가가 편안치 않아서 이렇게 딱딱 맞추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거다. 《꼭 완벽하지 않아도 돼》의 주인공 몰리도 그렇다.
올해 열다섯 살인 몰리는 방 안 진열장에 유리 피규어를 정렬할 때 반드시 자를 사용해 간격을 정확하게 맞추어야 하고, 손을 씻을 땐 살갗이 부르틀 때까지 빡빡 문지른다. 심지어 머릿속으로 연방 4의 배수를 읊조릴 뿐 아니라, 어쩌다 홀수와 연관된 상황과 맞닥뜨리게 되면 불행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짝이 맞지 않은 양말을 신고 있는 친구를 보고 있으면 불안감이 증폭하면서 마음이 산란해지고, 아무리 배가 고파도 깨끗하지 않은 식탁에는 절대로 앉지 못한다.
그러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질문을 놓쳐서 주의를 듣기도 하고, 친구와의 약속을 깜빡해서 원망을 사기도 한다. 몰리는 원래 학교에서 손꼽히는 우등생에다 모범생이기에 주변 사람들은 이런 모습에 공감하기보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리둥절해한다. 몰리의 증세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며 파국으로 치닫는다. 누가 봐도 모범생의 전형이었던 몰리……. 어쩌다 이런 강박 증세에 시달리게 된 걸까? 
 
 
모든 것이 완벽할 필요는 없어 : 강박증에서 놓여나기
이 모든 것은 바빠도 너무 바쁜 엄마 아빠에게서 비롯된다. 야채 주스 회사의 마케터로 일하는 엄마는 해외 지사로 발령이 나서 일 년간 집을 비운다. (엄마와 아빠는 그 전에 6개월가량 별거를 했기 때문에 몰리에겐 이 일이 상당한 위기감으로 작동한다.) 프리랜서 작가인 아빠는 언제나 원고 마감에 쫓겨서 집안일을 살필 겨를이 없다. 어린 나이에 엄마와 떨어져 지내게 된 일곱 살배기 동생 이안은 몰리를 엄마처럼 의지하고, 몰리는 엄마와 아빠를 대신해 이안의 식사와 잠자리는 물론 유치원의 등‧하원까지 챙긴다.
몰리는 신경 쓸 일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마음이 조급해지는 데다, 몸속 깊이 배인 범생이 기질 때문에 무엇이든 척척 잘해 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그러다 이 불완전한 생활을 단박에 끝낼 수 있는 기막힌 방법을 찾아내는데……. 바로 학교에서 열리는 창작시 낭송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 결선 대회에 진출하게 되면 부모님이 시상식에 초대되기 때문이다. 엄마가 초대장을 받으면 만사를 제치고 자신을 보러 달려와 주리라고 철석같이 믿으면서.
시 창작에 남다른 재주를 가진 몰리는 예선과 본선을 가뿐하게 통과하고 결선 대회로 치닫는다. 뿐만 아니라 유력한 우승 후보로 손꼽히며 친구들에게 미리 축하 인사까지 받는다. 마침내! 결선 대회가 시작되어 무대에 올라간 몰리……. 객석에 엄마 없이 홀로 앉아 있는 아빠를 보는 순간, 긴장의 끈을 놓치며 그대로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엄마가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게다가 행운의 수호신마냥 떨리는 순간마다 만지작거리며 위안을 얻던 유리 몽돌이 주머니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머릿속으로만 읊조리던 4의 배수를 그만 입 밖으로 뱉어내고 만다. 갑자기 벌어진 돌발 상황으로 자신에게 쏠린 객석의 시선이 두려워진 나머지, 몰리는 한껏 겁을 집어먹은 채 커튼 뒤로 숨어 버리는데…….
이렇듯 《꼭 완벽하지 않아도 돼》는 다른 사람들 눈에는 빈틈없이 완벽해 보이는 열다섯 살 소녀가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좌절에 빠지는 상황을 현실감 있게 담아내었다. 부모가 이혼 위기에 놓이게 되자, 그것을 봉합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며 자신을 옭죄다가 끝내 길을 잃어버리고 휘청거리는 모습이 안쓰러울 만큼 정밀하게 그려져 있다.
 
   
언제나 널 지지하고 응원해 : 가까운 사람에게 마음 털어놓기
그렇다고 이 작품이 절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건 아니다. 몰리는 모든 걸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뜻하지 않은 고통에 봉착하지만,  그저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 가족들은 염려와 애정이 듬뿍 담긴 시선으로 언제나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꼭 완벽하지 않아도 돼》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면서 완벽한 삶을 추구하기보다는 서로에게 주어진 짐을 덜어서 나누며 하나를 이루어 가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 주고 있다. 즉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옹송그리고 있음을, 단지 내가 미처 깨우치지 못하고 있었음을 다시금 되새기게 해 준다.
불완전한 세상에서 완전함을 찾으려 했던 몰리……. 이윽고 가족과 친구의 도움을 받으며 세상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게 된다. 온몸을 옥죄고 있던 강박적인 버릇들도 하나하나 벗어던진다. 위기의 극한에 이른 뒤에야 가족과 친구들의 진심 어린 염려와 사랑을 깨닫고서 생각의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비로소 이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으며, 강박적인 행동으로는 그 무엇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된 것이다.
몰리는 이제 완벽하지 않은 세상에서 완벽하지 않은 방법으로 더 자유롭고 건강하게 사는 법을 배워 나간다. 세상의 모든 짐을 혼자서 짊어지고 간신히 하루하루를 견디며 남들에게 멋지게 보이는 데만 신경 쓰는 ‘완벽한 몰리’가 아니라, 여느 사춘기 아이들처럼 어설프고 변화무쌍한 열다섯 살짜리 ‘진짜 몰리’로 사는 법을 하나하나 알아 가면서.
결국 작가는 뜻하지 않게 힘겨운 일과 맞닥뜨렸을 때 혼자서 끙끙거리지 말고 부모님이든 친구든 선생님이든 마음을 털어놓고 구조 요청을 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런 뜻에서 《꼭 완벽하지 않아도 돼》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춘기 아이들의 슬픔과 아픔을 포근하게 감싸 안으며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지은이 : 엘리 스와츠 Elly Swartz
미국 보스턴 대학교와 조지타운 대학교 로스쿨에서 공부했으며, 지금은 메사추세츠주 보스턴 외곽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세서미 플레이스 놀이공원의 기구 안전 요원을 비롯해, 가구 매장의 점원, 법학 도서관의 사서 매니저, 법률 문서 작성 전문가, 법률 서류 작성 및 리서치 강사 등 다양한 직업을 거친 뒤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꼭 완벽하지 않아도 돼》는 그가 쓴 첫 번째 청소년 소설이다.
 
 
옮긴이 : 김선영
동덕여자대학교에서 식품 영양학과 실용 영어를 공부했으며, 지금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책을 번역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형, 내 일기 읽고 있어?》 《휴대폰의 눈물》 《나는 말하기 좋아하는 말더듬이입니다》 《오, 나의 푸드 트럭》 외 여러 권이 있다. 
 
 

엄마 냄새
뻔뻔한 거짓말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서랍 속의 돈뭉치
불안은 나눠지는 게 아니야
거짓말의 조각
4, 8, 12, 16, 20…
절반의 진실
질투와 가면
내 편 들지 마!
불안의 갑옷
고장난 수도꼭지
완벽하지 않아도 돼
나만의 숙제
작별 인사

엄마 냄새
올해 열다섯 살인 몰리는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엄마와 아빠, 언니, 동생과 함께 비교적 평화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또래 아이들과 달리 장난감 블록을 정리한다든지 몸을 청결히 하는 일에 유난히 신경을 쓰기는 했지만,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착하고 똑똑하고 바른 아이로 통했다. 그런데 어느 날, 주스 회사에 다니는 엄마가 캐나다 지사로 발령이 나면서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가 떠난 뒤로 내 머릿속을 온통 뒤덮고 있는 질문을 언니에게 던졌다.
“엄마가 돌아오긴 할까?”
언니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니.”
케이트 언니의 ‘아니.’란 말이 천장에 부딪혔다가 다시 내 얼굴을 세차게 때렸다. 일 년만 있다가 꼭 돌아오겠다던 엄마 목소리가 귓가에서 쟁쟁하게 울렸다. 나는 불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돌아온다고 약속했잖아. 그냥 잠깐 가 있는 거라고.”
“아빠하고 별거할 때처럼?”
나는 그 말을 짐짓 못 들은 척했다.
“엄마는 일 때문에 가는 거라고 했어.”
나는 달력에 엄마가 돌아오겠다고 한 날짜에 동그라미를 쳐 놓았다. 엄마가 떠난 날에서 꼭 일 년째 되는 날이었다. 언니가 ‘그걸 믿니? 이 바보야.’ 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전에도 이런 눈빛을 본 적이 있었다. 아니, 여러 번 보았다.
“네 마음대로 생각해.”
나는 유리 몽돌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언니는 손톱에 바른 초록색 매니큐어 젤을 괜히 긁었다.
“난 네가 엄마를 왜 감싸는지 모르겠어. 엄마는 널 두고 떠났잖아.”
“엄만 돌아올 거야. 약속했어.”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나한테 계획이 있어.”
언니가 오른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것도 엄마하고 똑같은 버릇이었다.
“계획이라니?”
언니가 호기심을 보였다.
“창작시 낭송 대회에서 우승하는 거야.”
“엄마를 캐나다에서 돌아오게 한다는 네 계획이란 게, 고작 학교 창작시 낭송 대회에서 우승하는 거라고?”
언니 얼굴에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18~19쪽에서
 
 
뻔뻔한 거짓말
몰리와 가장 친한 친구 해나에게 큰 고민이 생겼다. 요리사로 일하는 아빠가 레스토랑에서 해고된 것.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선 다른 도시로 이사를 해야 한다나? 결국 해나는 살림에 보태기 위해 ‘청소년 창업 콘테스트’에 응모할 계획을 세우고, 색실로 팔찌를 만들어 팔기로 한다. 마침 학교에서 창업을 주제로 한 수행 평가가 있던 날, 해너는 친구들에게 팔찌를 팔기 위해 몰리더러 수업 시간을 주문을 해 달라고 부탁한다.
 
해너가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가 주문해야 할 차례였다. 바로 지금이었다! 나는 파란색으로 결정했다. 다섯 가지 색 모두 파란색으로……. 그런데 손을 막 들려는 순간, 그레그의 양말이 보였다. 한쪽은 목이 긴 갈색이고, 다른 쪽은 목이 짧은 회색이었다.
나는 반 아이들의 종아리를 차례로 살피기 시작했다. 양말이 모두 엉망진창이었다. 맥의 양말은 한쪽이 올라가 있었고 다른 쪽은 내려와 있었다. 조시의 양말은 양쪽 다 발목으로 흘러내려서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잡혔다. 해너의 양말은 아예 짝짝이였다. 감사하게도 브리짓만은 까만색 아가일 체크무늬 양말을 양쪽 모두 무릎까지 딱 맞게 올려 신고 있었다.
내가 양말 탐구에 빠져 있는 사이에 다른 아이의 손이 먼저 올라갔다. 브리짓이었다. 브리짓은 손을 높이 쳐들고서 마구 흔들어 댔다. 해너는 짐짓 브리짓을 외면하고서 그레타의 이름을 불렀다.
“해너, 네 아이디어 정말 좋아.”
그레타가 해너에게 칭찬의 말을 했다.
“고마워.”
브리짓의 손은 여전히 공중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다음은…… 그레그.”
“그걸 계속 손목에 차고 다닐 거야?”
“그럼.”
그때 선생님이 끼어들었다.
“이제 의견은 하나만 더 받도록 하자.”
‘어서 손을 들어. 해너한테 파란색 팔찌를 사겠다고 말해.’
그렇지만 나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온통 양말 생각뿐이었다. 우리 반 스물두 명 중에 오직 네 명만이 짝이 맞는 양말을 신고 있었다. 갑자기 누구나 맨발에 샌들만 신던 여름이 그리워졌다. 그러면 양말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37~38쪽에서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엄마가 떠난 뒤 가족들은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 아빠는 일에 치여 식사다운 식사를 해 본 지가 언제인가 싶다. 언니 케이트는 남자 친구 케빈과의 연애에 푹 빠져 동생들은 뒷전이다. 막내 이안은 너무 어려서 왜 엄마가 해 주는 저녁을 먹을 수 없는지, 왜 엄마와 함께 잠자리에 들 수 없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몰리는 언젠가부터 이안이 잘못될까 봐 두려워 전전긍긍한다. 이안이 잠시라도 눈에 띄지 않으면 혹시 다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되어서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6시 30분이었다. 평소 같으면 저녁을 먹을 시각이었다. 나는 방에서 나가지 않고 선반의 피규어를 다시 배열했다. 그런 다음 뒤로 약간 물러서서 감상했다. 아름다웠다. 그제야 뻣뻣하던 목이 풀렸다.
그렇지만 이안에게 나쁜 일이 닥칠 거라는 불안감은 여전했다. 내가 뭐든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면, 이안이 혼자 아파하거나 무서운 일을 당할 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안이 옆방에서 레고를 쌓으며 놀고 있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기장을 서랍에 넣어 두고 방에서 나왔다. 아빠가 저녁을 준비하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해너 아빠는 최고의 요리사였다. 차라리 해너네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 편이 더 좋을 뻔했다. 우리 집 주방에서는 피자나 짜장면, 그게 아니면 세제 냄새뿐이었다. 이제 더는 엄마가 만든 땅콩버터 초콜릿 칩 쿠키나 걸쭉한 시나몬 사과 소스 냄새는 나지 않았다. 심지어 냄비가 달각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아빠!”
아빠를 불러 보았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나는 목소리를 조금 더 높였다.
“아빠!”
그래도 대답이 없었다. 할 수 없이 계단을 쿵쿵 내려갔다. 창문 너머로 주황색 노을이 보였다. 이안은 소파에 앉아서 만화 영화를 보고 있었다.
‘이 파괴왕 녀석! 오늘은 나한테 말 걸 생각도 하지 마.’
주방을 힐끗 보았지만, 식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싱크대도 깨끗했다. 서재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아빠는 아직도 컴퓨터 앞에서 화면에 뜬 글자에 쉼 없이 빨려 들어가는 중이었다. -71~73쪽에서
 
 
거짓말의 조각
무엇보다 요즘 몰리를 괴롭히는 것은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이상한 행동들을 한다는 거다. 언젠가부터 진열장에 늘어놓은 유리 피규어의 간격을 자로 딱딱 맞추어야 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뿐만이 아니다. 숙제를 하다 글씨가 조금이라도 비뚤어지면 처음부터 새로 해야 직성이 풀렸다. 옷을 입을 때는 반드시 오른팔, 오른 다리부터 꿰어야 하며, 잠을 자기 전에는 서랍 속의 양말을 모두 꺼내 다시 개야 했다.
 
이제 학교에 입고 갈 옷을 고를 차례였다. 갈색 코듀로이 바지에 분홍색과 갈색이 섞인 긴소매 티셔츠를 집었다. 오른쪽 다리, 왼쪽 다리,  오른팔, 왼팔, 머리. 티셔츠 매무시를 가다듬고 거울 앞에 섰다. 그런데 주름이 잔뜩 져 있었다. 이런 건 입을 수가 없잖아! 티셔츠를 벗었다. 오른팔, 왼팔, 머리. 오른쪽이 안으로 가게 접어서 옷 바구니에 잘 넣은 다음 쪽지를 남겼다.
‘다림질해 주세요.’
제대로 쓰느라 네 번이나 다시 썼다.
6시 10분. 다행히 갈색 바탕에 크림색 스웨터는 깨끗했다. 스웨터를 입고 거울에 비춰 보았다. 이번에는 머리가 메두사 같았다. 빗, 오른쪽, 왼쪽, 뒤통수, 다시 오른쪽, 왼쪽, 뒤통수.
‘다시 해.’
‘아니야.’
‘다시 할 수밖에 없잖아!’
오른쪽, 왼쪽, 뒤통수.
‘다시.’
오른쪽, 왼쪽, 뒤통수.
‘다시.’
6시 20분.
양말을 집어 들었다. 오른발 신고, 왼발 신고. 이제 갈색 부츠다. 왼쪽 밑창에 흙이 묻어 있었다. 화장실로 가서 수건에 물을 적신 뒤 부츠 밑창을 닦아 냈다. 그다음엔 오른쪽. 혹시 못 본 흙이 있을지도 몰라서 오른쪽, 왼쪽, 오른쪽, 왼쪽, 오른쪽, 꼼꼼히 살폈다. -101~102쪽에서
 

작별 인사
엄마는 창작시 낭송 대회에서 몰리에게 벌어진 일을 듣고는 곧장 집으로 달려온다.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따로 아파트를 마련한 뒤 아이들을 자주 만나며 그동안의 공백을 채우려 노력한다. 해나는 결국 아빠를 따라 시애틀로 이사하게 된다. 그 전에 몰리와 함께 타임캡슐을 만들어 나중에 열어 보기로 약속한다. 두 사람은 그렇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눈다. 몰리는 강박 장애를 앓고 있는 다른 친구들을 만나 마음을 조금씩 건강을 회복해 나간다.
 
‘나’라는 존재로 돌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힘들긴 하지만, 걱정과 싸우는 일은 점점 더 쉬워지고 있었다.
일기장은 차에 두고 내렸다. 해너네 집까지는 아빠가 데려다주었다. 현관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휴대폰이 바르르 떨렸다. 라이안이 보낸 문자 메시지였다. 창작시 낭송 대회 우승작인 서배스천의 <바다> 낭송 동영상 링크가 함께 왔다. 영상은 조회 수가 벌써 1,000회나 되었다. 나는 빙그레 웃었다. 다음 창작시 낭송 대회에 출품할 시는 이미 써 두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였다.
트럭 한 대가 경적을 울리며 해너네 마당으로 후진해 들어왔다. 오늘은 해너가 이사하는 날이었다. 해너 아빠는 요리사로 취직했다. 빅레드 토마토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인데, 하필이면 시애틀에 있었다.
해너가 달려나왔다. 나는 해너를 껴안으면서 두 가지를 꾹 참았다. 숫자를 세지 않아야 하고, 눈물을 흘리지 않아야 했다.
우리는 함께 이층 해너 방으로 올라갔다. 옷장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삿날의 혼돈을 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손을 맞잡고 있었다. 내 뺨에는 소리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253~254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