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출판사
도서정보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위화
2018. 11. 15
14,500원
384 / 페이지
9791156757696

가장 세계적인 중국 작가
위화余華
그의 읽기, 쓰기
그리고 사람으로 살기
 
*
 
책과 점점 멀어지는 시대이다.
이럴 때 읽는 행위란 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이야기해준
위화에게 위안을 많이 받았다.
아, 그래. 책을 읽는다는 게 이런 거였지.
장강명(소설가)
 

책 소개
‘가장 세계적인 중국 작가’ 위화(余華)가 글쓰기와 독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담은 신작 에세이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으로 한국 독자를 찾았다. 서울, 베이징, 프랑크푸르트, 뉴욕, 베오그라드 등 세계 곳곳에서 그곳 독자를 대상으로 강연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든 책이다. 읽는 이가 장벽 없이 위화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입말을 살려 옮겼다. 이번 책은 1997년 위화의 장편소설 《인생》(당시 제목 ‘살아간다는 것’)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고 《허삼관 매혈기》《가랑비 속의 외침》《제7일》《형제》와 소설집 《내게는 이름이 없다》 등 위화의 작품을 꾸준히 출간해온 도서출판 푸른숲에서 처음 출간하는 논픽션으로, 허구의 프리즘을 거치지 않은 작가 위화의 통찰력을 직설적이고 유머러스한 육성에 담아냈다.
 

출판사 서평

“지난 세기 세계는 루쉰의 작품을 통해 중국을 알았지만
지금은 위화가 있다”(<뉴욕 타임스>)
 
38개국 사람들이 35개 언어로 읽은 작가,
일본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다면 중국에는 위화가 있다

 
아시아의 다음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점칠 때마다 빠짐없이 거론되는 작가가 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위화다. 위화는 현존하는 중국 작가 중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1993년 처음 출간된 이래 중국에서만 400만 부가 팔린 《인생》으로 2012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모옌보다 더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기도 하다. 이후 발표한 《허삼관 매혈기》로 세계의 호평을 받으며 인기 작가 자리를 굳히더니 《제7일》과 《형제》로 중국 사회에 첨예한 화두를 던지고는 가장 논쟁적인 작가라는 이름을 얻으며 문호 반열에 올랐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읽은 중국 작가 위화
그가 말하는 읽기, 쓰기 그리고 사람으로 살기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법이라지만, 작가가 직접 자신의 작품과 삶을 이야기하는 글은 언제나 독자의 환영을 받는다. 널리 알려진 작품을 쓴 작가가 하는 이야기라면 더더욱 그렇다. 작품의 뒷이야기와 창작 과정, 그리고 그 작품을 만들어낸 작가의 삶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은 탓이다.
우리 독자에게는 《허삼관 매혈기》와 《인생》으로 가장 잘 알려진 중국 작가 위화의 이력은 독특하다. 소설가로서의 삶은 물론이고 개인사도 그렇다. 중국의 과거사와 현대사가 낯설기만 한 우리 독자에게는 바로 이웃나라 일인데도 어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탓에 독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위화에 대해서는 세 가지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 하나는 작가가 되기 전에 치과의사였다는 것, 또 하나는 어린 시절에 루쉰을 싫어했다는 것, 마지막 하나는 성장기(고등학생 때까지)를 문학작품 읽는 것이 금지된 문화대혁명 시대에 보냈다는 것이다. 위화의 이력이 이렇게 독특해진 데는 중국이라는 이상한 사회(위화는 중국의 빈부격차를 두고 “같은 무대에서 절반은 희극을 공연하고, 절반은 비극을 공연하는 이상한 극장”이라 평한 적이 있다. 이 말은 손석희 앵커가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인용했다.)가 한몫을 했다. 치과의사가 된 것은 나라에서 정해준 직업이었기 때문이고, 문학을 못 읽은 것은 문화대혁명이라는 기이하고 비극적인 시대에 마오쩌둥이나 루쉰 외에는 읽기가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저는 루쉰의 작품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의 교과서에 나오는 소설과 산문, 시가 전부 루쉰 아니면 마오쩌둥의 작품이었으니까요. 어렸을 때 저는 중국에 작가가 루쉰과 마오쩌둥 두 사람밖에 없는 줄 알았습니다.” (p. 30)
 
“저는 책이 없던 문화대혁명 시대에 성장했고, 제가 진정으로 진지하게 문학작품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소설을 쓰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글을 썼던 셈입니다. 맨 처음 저의 글쓰기에 영향을 준 작가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였습니다. (…) 여러 해가 지나며 저의 글쓰기 스타일이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서 많이 멀어지긴 했지만, 그를 첫 번째 스승으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커다란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는 저에게 디테일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주었지요. 이런 것이 한 작가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를 결정짓습니다.” (p. 38)
 
소설가로서 위화의 이력이 독특해지는 지점은 그가 소설 읽기와 쓰기를 거의 동시에 시작했다는 데 있다. 대작가들이 성인이 되기 전 세계의 고전문학을 ‘떼는’ 것과 달리 위화는 스무 살이 넘어서야 가와바타 야스나리, 헤밍웨이, 카프카, 스탕달, 마르케스, 프루스트, 포크너, 도스토옙스키 등을 읽었다. 문화대혁명 후반기에 접어들어서는 앞부분과 뒷부분이 유실되어 제목도 결말도 알 수 없는 책을 읽으며 상상력을 키웠다지만, 그전에 재미있게 읽은 것이라곤 《마오쩌둥 선집》에 들어 있는 주해가 다였다.
쓰기의 역사는 더 유별나다. 위화는 자신이 처음으로 쓴 것이 문화대혁명 시대의 대자보였다고 기억한다. 글씨 연습을 하기 위해 쓴 것으로, 내용은 없고 신문에서 베낀 공허한 혁명 구호가 가득했다. 그가 나중에 소설을 쓰게 된 것은, 남의 입안이나 들여다보는 일이 지겨워서 한가해 보이는 문화관에 들어가려면 작가가 되어야겠다 싶어서였다. 소설을 쓸 때 그는 단편소설부터 쓰고, 익숙해지면 중편, 그다음에 장편으로 서서히 길이를 늘려가며 마치 하나의 단계를 ‘클리어’하듯 써나갔다.
 
“저는 1982년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이 문화대혁명(1966~1976)이라는 재앙에서 벗어난 지 몇 년 되지 않은 때였지요. 그때는 문학잡지의 황금기로서 문화대혁명 기간에 정간되었던 문학잡지들이 전부 복간되었고, 적지 않은 수의 문학잡지가 새로 창간되었습니다. 당시의 중국에서는 잡지라고 하면 거의 전부가 문학잡지였지요. 문화대혁명 이후에 글을 쓰기 시작한 저와 같은 세대의 중국 작가들이 갖는 한 가지 공통점은 먼저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어느 정도 숙련된 다음에 중편소설을 쓰고, 더 숙련된 다음에 장편소설을 썼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문학잡지에 작품을 발표하는 것이었지요. 그때는 작품을 단행본으로 출판하는 일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거든요. 중요한 것은 가장 좋은 잡지에 작품을 발표하는 일이었습니다.” (p. 23)

위대한 작가는 장애물을 피하지 않는다

쓰기와 읽기 경험이 중첩되며 이어지는 위화의 문학 유랑은 흥미롭다. 백미는 젊은 시절의 그가 ‘글쓰기의 감옥’에 갇혀 괴로워하는 부분이다.
 
“제 글쓰기에 있어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의미는 그의 작품을 통해 디테일한 묘사를 중시하는 것을 배웠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저의 글쓰기는 튼튼한 기초를 갖출 수 있었고, 그 뒤로 글을 쓸 때는 거친 부분이든 섬세한 부분이든 디테일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오랫동안 한 작가에게 빠져 그의 창작 스타일을 학습하다 보니 갈수록 더 많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986년이 되자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제게 더 이상 날개가 아니라 함정이었습니다.
바로 이때 ‘비경험’이 나타났지요. 제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함정에 빠져 큰 소리로 구해달라고 외치고 있을 때, 마침 카프카가 길을 가다가 제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는 다가와 저를 함정에서 끄집어내주었습니다.” (p. 194)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저는 줄곧 그를 흉내 냈습니다. 그렇게 3년이 지나서야 제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았지요. 아직 젊을 때였고 지나칠 정도로 그에게 빠져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제 소설은 갈수록 형편없어지고 있었지요. 저의 글쓰기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오랏줄에 꽁꽁 묶여 있었던 겁니다.” (p. 41)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감옥, 그리고 소설가로서 만난 ‘대화문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과 ‘등장인물의 심리를 어떻게 묘사해야 할 것인가’라는 장애물을 극복하는 여정은 글쓰기의 감옥에 갇혀 있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과 공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위화는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에게 직접적인 조언도 한다. 장애물이란 넘어서면 별것이 아니며, 위대한 작가는 장애물을 피하지 않는다는 것.
 
글쓰기에는 끊임없이 앞을 막는 장애물이 나타납니다. 동시에 글쓰기는 물줄기가 모여 도랑을 이루는 과정이지요.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장애물이 눈앞에 있을 때는 아주 거대하게 느껴지지만, 이를 피하거나 넘어서고 나면 갑자기 그리 거대하지 않게 느껴지고, 그저 종이호랑이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는 겁니다. 용기 있는 작가들은 항상 장애물을 향해 전진하고, 종종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을 넘어섭니다. 지나친 다음에야 깨닫고 이렇게 가볍게 지나쳤나 하고 놀라는 경우도 많지요. (p. 71)
 
많은 작가들이 장애물을 만나면 피하려고 합니다. 이런 작가들이 아마 전체의 90퍼센트 이상일 겁니다. 극소수만이 이런 장애물을 기꺼이 대면하지요. 자기 자신에게 장애물을 일부러 만들어주는 작가도 있습니다. 장애물을 넘으면 종종 대단한 작품이 나오거든요. (p. 72)
 
위대한 작가가 말하는 ‘위대한 작가’

 
맞닥뜨린 장애물을 넘어서든, 장애물을 일부러 만들어 극복하든, 위화가 생각하는 ‘위대한 작가’는 어떤 사람인지 그가 든 몇 가지 예시로 살펴본다. 일단, 훌륭한 작가는 훌륭한 독자여야 한다. 위화가 말하는 훌륭한 독자란 “평범한 작품 말고 위대한 작품을 많이 읽어 취향과 교양의 수준이 높아져서 글을 쓸 때 자연히 스스로 아주 높은 기준을 요구하게 되는” 사람을 말한다.
 
“저는 그 유명 작가들은 도대체 어떻게 소설을 쓰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사람들이 남긴 유명한 글귀에서 지름길을 찾아보기로 했지요. 운 좋게도 잭 런던이 작가가 되려는 젊은이에게 쓴 편지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 편지에서 그는 바이런의 시를 한 행 읽는 것이 문학잡지를 백 권 읽는 것보다 낫다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저는 금세 그 이치를 깨달았지요. 시간과 정력을 문학잡지에 낭비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문학잡지라 해도, 그 잡지에 발표된 작품 가운데 50년, 백 년 뒤에도 여전히 읽힐 작품은 얼마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지요. 별로 뛰어나지 않은 잡지라면 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때부터 저는 문학잡지를 읽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대신 본격적으로 세계적인 문학 유산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을 읽기 시작했지요.” (p. 28)
 
위화가 말하는, 위대한 작가가 갖춰야 할 가장 어려우면서도 필수적인 요소는 바로 ‘사람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사람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며 위화는 한 유대인을 구한 폴란드 농민의 사례를 든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자기 집 지하실에 유대인을 숨겨준 이 폴란드인은 왜 생명의 위험을 감수했냐는 질문에 “저는 유대인이 뭔지 모릅니다. 저는 그저 사람이 무엇인지를 알 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위화가 꼽은 ‘사람을 아는’ 작가로는 루쉰, 셰익스피어, 하비에르 마리아스, 스탕달 등이 있고, 역시 사람을 아는 영화감독으로는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등이 있다.
 
“둘 다 가리는 행위이지만 동시에 활짝 열어 보이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앞서 말한 두 가지 ‘가리는 행위’가 가장 멀고 가장 깊은 인간 본성으로 통하는 길을 우리에게 활짝 열어주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직접적이고 강력한 방식으로요. 다른 점이 있다면 타르콥스키는 영화로 수치의 힘을 말하고 있고 마리아스는 서사로 놀라움과 두려움의 힘을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죠. 가정을 해봅시다. 만일 구급차를 기다리던 사람이 손수건으로 부러진 다리를 가리는 게 아니라 손가락으로 부러진 다리를 가리킴으로써 사람들의 동정을 구하려 했다면 이 이야기의 서술자는 타르콥스키가 아니었을 것이고, 그 아버지가 냅킨으로 비데에 떨어진 딸의 브래지어가 아니라 반라의 몸을 가리려 했다면 이런 디테일은 마리아스의 묘사가 아니었을 겁니다.” (p. 297)

저는 운이 좋은 작가입니다

위화의 소탈함과 털털한 유머는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이 주는 재미 중 하나다. 그의 소탈함은 스스로 ‘운이 좋아서’ 인기 작가가 됐다고 말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가 인기 작가가 된 데는 세 번의 운이 따랐다. 첫째는, 문화대혁명 직후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 두 번째는 한 사람과 한 잡지를 만난 것, 세 번째는 선택한 길이 전부 정확했다는 것이다.
 
“저는 제가 자주 운이 좋은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1980년대 초는 막 글을 쓰기 시작한 무명작가들에게는 가장 좋은 시대였습니다. 이후 세대의 작가들은 더 이상 그런 시대를 누릴 수 없었으니까요.” (p. 63)
 
“이제 편집자들은 투고 원고를 뒤질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이미 아는 작가들의 작품만으로도 충분히 잡지를 만들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아주 운이 좋았다는 겁니다. 2년만 더 늦게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면 저는 지금도 이를 뽑고 있을 겁니다. 이런 것이 바로 운명이지요.” (p. 65)
“저는 정말 운이 좋은 작가입니다. 한 사람을 만나야 했을 때 리퉈를 만났고, 한 잡지를 만나야 했을 때 <수확>을 만났으니까요. 리퉈와 <수확>이 저로 하여금 제 작품에 충분한 자신감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p. 95)
 
‘한 사람과 한 잡지’라는 제목의 글에는 위화가 처음 소설가가 되는 여정에 오르는 과정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그는 당대 최고의 문학잡지였던 <수확>에 글을 싣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높은 평가를 받은 단편 <십팔 세에 집을 나서 먼 길을 가다>가 <베이징문학>에 실리기 전까지는 그런 기회를 얻지 못했다. <베이징문학>의 부주간 리퉈는 이 단편을 읽고 “자네는 이미 중국문학의 맨 앞에서 걷고 있네.”라고 평가하며 위화를 최고의 문학잡지 <수확>에 추천했다.
위화가 소설가가 되기 위해 ‘선택’한 것에 대한 이야기는, ‘문학잡지 백 권 읽느니 바이런의 시 한 줄을’에 담겨 있다. 위화가 한 최초의 선택은 다름 아니라 문학잡지 대신에 허구 세계를 풍부하게 해줄 고전문학을 읽는 것이었다. 위화는 고전문학 속에서 세 명의 스승을 만나기도 한다.
 
“그 무렵엔 《전쟁과 평화》가 2위안밖에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런 책의 정가는 보통 5마오에서 2위안 사이였습니다. 그때는 수입도 많지 않아 월급이 36위안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먹는 걸 줄여서 책을 사야 했지요. 이런 고전문학 작품들이 저의 허구 세계를 풍부하고 다채롭게 해주었습니다.
제가 말하는 허구 세계는 사실 누구나 다 갖고 있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드러나지 않는 각양각색의 환상과 명상 같은 것들 말입니다.” (p. 29)

문학은 인생보다 긴 길,
소설은 끝나도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는 인간 위화를 보다 더 가깝게 만나볼 수 있다. 그처럼 글쓰는 이들에게는 문학이 인생이고 인생이 문학일 테지만, 소설가로서 그는 그토록 오래 글을 쓰고서야 문학이 인생보다 더 긴 길임을 깨달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사람과 삶을 말하면서도 책이나 영화에서 본 예시를 즐겨 들곤 한다.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소설 《새하얀 마음》에서 읽은 인간에 대한 통찰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에밀 쿠스트리차의 영화 <아빠는 출장 중>에 대한 감상을 읽으면 위화가 삶의 어떤 부분을 포착해 그의 소설에 재현하는지를 살짝 엿볼 수 있다. 에밀 쿠스트리차, 이보 안드리치 등 동구권 영화감독이나 작가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흥미롭다.
 
“삶이란 그토록 강대합니다. 삶은 항상 슬픔 가운데 기쁨을 편집해 넣지요. 이것이 제가 <아빠는 출장 중>이라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쿠스트리차는 삶에서 가장 강대한 부분을 잘라낸 다음, 이를 평범함 속에 끼워 넣은 것입니다.” (p. 323)
 
독자와 함께 만든 책
이 책은 위화 혼자 쓴 책이라기보다는 독자와의 협업으로 완성한 것이다. 1999년부터 올해(2018년) 1월까지, 서울에서부터 베오그라드까지, 위화는 그곳에 있었고 그곳 독자를 만나 그들과 함께 이 책을 만들었다. 그의 책을 읽은 청중이 앞에 앉아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거나, 의아한 표정을 짓거나, 질문을 했을 때 위화가 거기에 답하는 모습도 비록 문자의 형태지만 생생히 느껴진다. 이 책을 읽는 독자 또한 그곳의 분위기를 느끼고 그의 목소리를 옆에서 듣는 듯하다. 생각하고 계산해서 치밀하게 쓴 글이 아니라 현장에서 청중의 반응에 응답하며 한 말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인 저로서는 당연히 저의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바람직하겠지요. 하지만 저는 이미 30년 넘게 저의 글쓰기, 그리고 제가 이해하는 문학에 대해 이야기해왔습니다. 얼마나 많이 얘기했는지 모를 정도지요. 원고를 쌓으면 아주 큰 산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작지도 크지도 않은 산 하나는 될 겁니다. 또 이런 얘기를 하면서 튀긴 침방울을 다 합치면 제가 빠져 죽을 정도일 겁니다.
저는 이런 주제로 글도 아주 많이 썼습니다. 중국에서는 먼저 여기저기에 발표했다가 나중에 책으로 출판하기도 했지요. 그래서 저를 이해하는 수많은 독자들은 제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 오늘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은 한국과 일본에서 오셨지만 중국 독자들보다 저를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제가 반 마디를 하면 그 뒤에 올 반 마디를 알아차릴 수 있으실지도 모르지요. 여러분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떠오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물론 놀란 표정이 나타나기를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무심하게 들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p. 11)

 
위화余華
1960년 중국 저장성에서 태어났다. 단편소설 〈첫 번째 기숙사〉(1983)를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1988) 등 실험성 강한 중단편 소설을 잇달아 내놓으며 중국 제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첫 장편소설 《가랑비 속의 외침》(1993)을 선보인 위화는 두 번째 장편소설 《인생》(1993)을 통해 작가로서 확실한 기반을 다졌다. 장이머우 감독이 영화로 만든 《인생》은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이는 세계적으로 ‘위화 현상’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 작품은 중국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으며, 출간된 지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중국에서 매년 40만 부씩 판매되며 베스트셀러 순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허삼관 매혈기》(1996)는 출간되자마자 세계 문단의 극찬을 받았고, 이 작품으로 위화는 명실상부한 중국 대표 작가로 자리를 굳혔다. 이후 중국 현대사회를 예리한 시선으로 그려낸 장편소설 《형제》(2005)와 《제7일》(2013)은 중국 사회에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전 세계 독자들에게는 중국을 이해하는 통로가 되어주었다. 산문집으로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 등이 있다.
 
 
옮긴이 김태성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타이완 문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학 연구 공동체인 한성문화연구소(漢聲文化硏究所)를 운영하면서 중국문학 및 인문 저작 번역과 문학 교류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중국에서 문화 번역 관련 사이트인 CCTSS의 고문, 〈인민문학〉 한국어판 총감 등의 직책을 맡고 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풍아송》, 《미성숙한 국가》, 《마르케스의 서재에서》 등 100여 권의 중국 저작물을 우리말로 옮겼다. 2016년에 중국 신문광전총국에서 수여하는 ‘중화도서특별공헌상’을 수상했다.

1 읽고 쓰기
 
나와 동아시아 ―― 서울 2017. 5. 2
문학잡지 백 권 읽느니 바이런의 시 한 줄을 ―― 상하이 2007. 4. 20.
제목은 아직도 미정입니다 ―― 베이징 2008. 10. 16.
소설가의 장애물 ―― 베이징 2014. 5. 6.
한 사람과 한 잡지 ―― 우한 2017. 4. 10.
넓은 문학을 말하다 ―― 우한 2017. 4. 11.
최초로 읽은 것, 쓴 것 ―― 우한 2017. 4. 12.
진리에 대한 추구를 포기하지 말 것 ―― 우한 2017. 4. 19.
국어와 문학 사이 ―― 중산 2017. 5. 11.
문학은 인생보다 긴 길 ―― 뉴욕 2016. 5. 11.
세계를 유랑하는 나의 책들 ―― 브뤼셀 2017. 9. 21.
원작과 겨루어 비겨야 좋은 번역이다 ―― 프랑크푸르트 2009. 9. 27.
한 민족의 전통에는 그들만의 개성이 있다 ―― 서울 1999. 6. 15.
 

2 사람으로 살기
 
우리와 그들: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 ―― 서울 2017. 5. 23.
사람을 안다는 것 ―― 밀라노 2017. 9. 14.
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세 가지 이야기 ―― 난징 2017. 5. 13.
<아빠는 출장 중>과 기억의 착오 ―― 베오그라드 2017. 6. 10.
재떨이를 주고는 금연이라니 ―― 뉴욕 2016. 5. 12.
내 친구 마위안 ―― 베이징 2017. 11. 18.
독자와 만나다: 네 가지 질문과 네 가지 답변 ―― 우한 2017. 4. 14.
“너희 집, CNN에 나오더라”: 이보 안드리치 문학상 수상 소감 ―― 비셰그라드 2018. 1. 27.
 
루마니아 독자 여러분께 보내는 감사의 말
덴마크 독자 여러분께 보내는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저는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학습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거의 4년에 가까운 시간이었지요. 이 기간 동안 열 편 가까운 단편소설을 발표했습니다. 하나같이 아주 조심스러운 작가 지망생의 습작이어서 나중에 출판된 소설집 어디에도 수록하지 않았지요. 저는 다른 사람들이 제게 이런 작품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저를 그냥 놔두지 않았지요. 그들이 나중에 발표된 저의 작품을 평가하면서 이런 습작을 거론하는 일이 갈수록 더 많아졌습니다.
제 글쓰기에 있어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의미는 그의 작품을 통해 디테일한 묘사를 중시하는 것을 배웠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저의 글쓰기는 튼튼한 기초를 갖출 수 있었고, 그 뒤로 글을 쓸 때는 거친 부분이든 섬세한 부분이든 디테일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오랫동안 한 작가에게 빠져 그의 창작 스타일을 학습하다 보니 갈수록 더 많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986년이 되자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제게 더 이상 날개가 아니라 함정이었습니다._‘국어와 문학 사이’ 중에서
 
이미 겨울이라 저는 이불 속에 들어가 그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시골의사>를 읽었지요. 그날 밤, 저는 완전히 잠을 잊었습니다. 소설 속에 말이 한 마리 있었습니다. 있다고 하면 있고 없다고 하면 없는 셈이었습니다. 전혀 논리적이지 않았지만 대단히 합리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그 불면의 밤이 제게 앞으로 어떻게 소설을 써야 하는지 알려주었습니다._‘문학잡지 백 권 읽느니 바이런의 시 한 줄을’ 중에서
 
문학은 삼라만상을 다 담고 있습니다. 문학작품에서 세 사람이 걸어오고 한 사람이 저쪽으로 걸어가는 장면을 읽을 때, 우리는 이미 3 더하기 1은 4라는 수학적 사실에 도달해 있고, 설탕이 뜨거운 물에 녹는 장면을 읽을 때는 이미 화학에 도달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낙엽이 떨어지는 장면이라면 이미 물리학을 언급하고 있는 겁니다. 수학, 화학, 물리학도 피해갈 수 없는 문학이 어떻게 사회와 정치는 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문학은 결국 문학입니다._‘세계를 유랑하는 나의 책들’ 중에서
 
저는 우리의 이 세계는 허구가 아니고 우리의 현실도 허구가 아니지만 사실 우리가 생존하는 방식은 허구라고 생각합니다. 마르크스의 말을 빌리자면 주관과 객관의 관계라고 할 수 있겠지요. 비허구는 객관적 존재이고 허구는 주관적 표현인 것입니다. 예컨대 제가 유년을 회고하며 산문을 한 편 쓰려고 한다면 무엇에 의지해야 할까요? 제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기억일 것입니다. 하지만 기억은 어느 정도 이미 허구가 되어 있습니다. 허구적인 것들이 많이 첨가되어 있지요._‘문학은 인생보다 긴 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