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출판사
도서정보
모퉁이 하얀 카페 심쿵 레시피
박현정
2019. 05. 31
9,800원
160페이지
9791156752400

 
고민을 딛고 성장의 한 고비를 넘는 변화의 순간을 담다
누구에게나 말 못 할 고민이 하나쯤은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말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사소한 비밀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하루 밤낮을 꼬박 새워 얘기해도 부족할 만큼 복잡한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얄궂게도 대부분의 ‘말 못 할 고민’들은 아무리 작더라도 마음 한구석에서 점점 커져 이내 온몸을 짓누르는 짐덩이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만다.
이런 말 못 할 걱정의 무게는 아이들에게는 더욱 크다. 친구 관계가 중요하고 주변 시선에 민감해지는 나이, 스스로를 알고 원하는 것을 찾으며 성장하기 시작하는 나이, 그러면서도 아직까지는 부모님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나이. 그 미묘한 시기에 아이들이 겪는 일들은 그야말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 혼자 끙끙 앓아야 하는 것투성이다. 
《모퉁이 하얀 카페 심쿵 레시피》는 《우리들의 빛나는》, 《파트너 구하기 대작전》등 다양한 작품에서 아이들의 심리를 세심하게 파고들어 온 박현정 작가의 신작으로, 고민에 휩싸인 네 아이가 신비한 모퉁이 하얀 카페를 찾게 되면서 자신의 문제를 직면하고 성장의 한 고비를 넘는 순간을 담아낸 연작 동화이다.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겪을 법한 크고 작은 고민과 갈등이 아주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상처투성이가 된 날, 마음을 어루만지는 심쿵 레시피 하나
이야기 속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진짜 속마음을 겉으로 털어놓지 못한다. 제대로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람이 없어서, 부모님을 실망시킬까 봐, 내 잘못을 인정하는 게 어렵고 부끄러워서, 혹은 자기조차 알 수 없는 갈대 같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머뭇거리게 만든다.
아빠의 사업 실패로 하루아침에 모든 게 달라진 해진이(<잘 알지도 못하면서>), 의도치 않은 실수로 학폭위 가해자가 된 동권이(<됐고 대마왕의 대굴욕>), 남자다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빠와 발레리노의 꿈 사이에서 흔들리는 선유(<마음 속 새 한 마리>), 사람들이 원하는 이미지대로 일상을 연기해야 하는 나라(<확 삐뚤어지고 싶은 날)>, 저마다의 갑갑한 상황 속에서 네 아이들이 꺼내지 못한 말들은 마음속을 헤집어 놓는 커다란 회오리가 되어 온몸과 마음을 상처 입힌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의 놀림을 묵묵히 참아 왔던 해진이가 외마디 비명을 토해 내던 날, 늘 아이들의 중심에 있던 동권이가 원 밖으로 밀려나던 날, 안전하고 따뜻한 부모님의 보호 아래에 있던 선유가 차갑고 어두운 집 밖으로 쫓겨나던 날, 늘 착한 아이를 연기했던 나라가 이제 그 역할을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던 날, 아이들의 눈앞에 신비한 모퉁이 하얀 카페로 안내하는 발자국이 나타난다.
모퉁이 하얀 카페에 도착한 아이들은 카페 주인의 신비한 레시피를 통해 과거를 떠올리며 자신의 문제를 마주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없었던 것, 지금 필요한 것을 떠올리며 문제 해결을 위한 용기를 얻게 된다.
이 책은 ‘다 괜찮으니까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으라’며 아이들의 용기를 북돋는다. 한마디의 용기만 내면 복잡한 감정이나 마음의 짐이 한결 가벼워질 거라는 응원을 전하고, 자신이 원하는 진짜 모습을 스스로 찾아내도록 돕는다. 이를 통해 한없이 웅크린 것 같은 지금이 고치를 막 나오기 직전이라는 걸, 조금만 더 용기를 내 팔을 뻗으면 더 큰 세상을 날아다닐 나비가 될 수 있다는 걸 아이들에게 일러 주고 있다.
 

지은이 : 박현정
친한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 먹는 걸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고 새로운 레시피에 관심이 많다. 함께 나누면 행복하고 마음의 아픔도 치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음식과 동화는 닮았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맛난 음식을 먹으며 맛난 동화를 쓰기 위해 궁리하고 있다. 제19회 눈높이 아동문학상, 제12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백 년 만의 이사》《우리들의 빛나는》《새앙머리 보름이》《파트너 구하기 대작전》《다시 만난 내 친구》《위당클럽 다이어리》《두 얼굴의 여친》《별통 아저씨의 선물》 등이 있다.
 
그린이 : 신민재
힘든 하루, 학교에서 돌아와 투덜거리던 아이도 맛있는 떡볶이 앞에선 온갖 이야기를 다 쏟아 낸다. 어느새 기분이 풀어져 다정한 아이로 돌아오곤 한다. 어릴 때 내 모습 그대로인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모두 말랑말랑해지는 것 같다.
그동안 《우리말 모으기 대작전, 말모이》 《가을이네 장 담그기》 《얘들아,  학교 가자》 《눈 다래끼 팔아요》 《잘못 걸린 짝》 등에 그림을 그렸고, 《언니는 돼지야》 《안녕, 외톨이》 등을 쓰고 그렸어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_ 해진 이야기> - 9
덜 마른 수건 같은 아침 – 10 / 허언증이라고? - 13 / 뿅, 하고 사라지고 싶은 순간 – 22 / 발자국을 따라가다 – 29 / 감자 빵처럼 폭신하고 따뜻한 – 37 / 손등 위의 나뭇잎 무늬 – 43 / 젖은 날개를 펴고 – 48
<됐고 대마왕의 대굴욕 _ 동권 이야기> - 53
심술 꽃이 피었습니다 – 54 / 뜻밖의 사고 – 62 / 세상 밖으로 밀려난 기분 – 69 / 환상의 짝꿍 – 75 / 생애 첫 피자를 먹던 날 – 81 / 일급비밀을 들키다 – 87
<마음속 새 한 마리 _ 선유 이야기> - 95
동권이는 좋겠다 – 96 / 도어록 너머로 – 104 / 우주가 춤추는 집 – 110 / 무대 공포증이 생긴 날 – 115 / 달빛 칵테일 – 121 / 아빠가 그랬잖아 – 128 / 날마다 조금씩 – 135
<확 삐뚤어지고 싶은 날 _ 그리고 나라 이야기> - 141
천사표 욕쟁이 – 142 / 주인공이 되면 행복할까 – 146 / 세상에 하나뿐인 레시피 – 152
 
작가의 말 - 158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빠 사업이 망하면서 해진이는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집은 좁고 눅눅한 반지하 방으로 이사했다. 학교에서는 유일한 친구였던 소윤이가 전학을 간 뒤, 말을 걸어 주는 친구가 없다. 아니, 말을 걸기는커녕 속사정도 모르면서 겉만 보고 비난을 쏟아 놓는 아이들뿐이다. 누구 하나 해진이의 속마음이 어떤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꾹 내리누를 수 있었던 아이들의 말이 유난히 큰 상처로 느껴지던 날, 해진이는 속에 있던 말들을 이제 그만 내뱉고 싶어진다.
 
소문은 들불처럼 참 빠르게도 퍼졌다. 불과 두세 시간 만에 5학년 전체에 ‘2반 이해진이 윤나라랑 같이 오디션을 봤다는 거짓말을 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래전에 내가 아역 배우를 했으며, 나라랑 같은 연예 기획사에 다녔다는 거짓말까지 한 걸로 부풀려졌다. 내가 헬리시움에 사는 척하며 연기를 했는데, 알고 보니 윤나라가 거기 살고 있었다는 얘기까지 곁들여졌다.
쉬는 시간에 다른 반 아이들이 나를 일부러 보러 오기도 했다. 그 아이들 중 누구도 나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아이들은 내 말을 들어 보려고 하지도 않은 채 허언증에 관심 종자로 몰아붙였다.
누구든 붙들고 그게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점점 속이 답답해졌다. 꿀꺽꿀꺽 삼킨 말들이 딱딱한 돌로 변해 목구멍을 꽉 틀어막았다.
〔……〕
“야, 굼벵이 이해진! 이 나물 좀 먹어 주겠니?”
누군가 개그맨 흉내를 내며 내게 말을 걸었다. 나를 굼벵이라고 부르는 아이는 보나 마나 나동권이다. 전에는 동권이가 그렇게 불러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어차피 동권이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워낙 장난을 잘 치니까. 하지만 오늘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이 확 뒤틀렸다. 내가 정말 땅속의 굼벵이가 되어 버린 듯했기 때문이다.
‘나는 굼벵이가 아니야. 너희가 함부로 갖고 놀아도 되는 벌레가 아니라고!’  (22~24쪽)

 
됐고 대마왕의 대굴욕
동권이는 반 대항 야구 시합에서 지고 난 뒤 심기가 불편하다. 모든 게 다 갑작스럽게 불참을 선언한 선유 때문이다. 불만으로 가득 차 한참을 티격태격하던 그때, 그만 야구 방망이를 잘못 휘둘러 선유의 팔을 부러뜨리고 만다. 다음 날, 노발대발한 선유의 아버지가 학교로 찾아와 한바탕 난리가 나고, 친구들은 모든 잘못을 동권이 탓으로만 돌리며 모른 척하기에 급급하다. 꼼짝없이 학교 폭력 위원회의 가해자가 된 동권이, 두려움과 배신감으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선생님이 다그쳐 물었다.
“그러니까 야구 방망이를 가지고 있었던 게 누구야? 선유 팔을 다치게 한 사람 말이야.”
재서와 만호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다. 그리고 입을 모아 대답했다.
“동권이요!”
귓불에서부터 서서히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치 난로 위에 올라앉은 것처럼 온몸이 홧홧해졌다.
“때린 거 아니에요! 일부러 그런 거 아니라고요!”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그럼 바지를 벗겨 보자고 한 건 누구야?”
선생님이 또 물었다. 만호가 내 눈치를 보며 웅얼거렸다.
“도, 동권이가요……. 선유더러 아무래도 여자가 되려다 만 것 같다고 하면서…….”
나는 잠시 멍해졌다. 할 말이 너무나 많은데…….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를 얹어 놓은 것처럼 답답하기만 할 뿐,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바지를 벗기려고 한 건 내가 아니었어. 여자가 되려다 만 놈이라고 농담한 건 맞지만. 너희도 웃으면서 맞장구쳤잖아. 야구 방망이에 선유가 맞은 것도 순전히 실수였고. 너희는……, 너희는 다 봤잖아!’ (71~72쪽)
 
 
마음속 새 한 마리
동권이 때문에 팔을 다친 선유는 오랫동안 준비해 온 발레 콩쿠르에 나가지 못하게 된 게 속상하기만 하다. 무대 공포증도 감수하고, ‘남자애가 돼서 발레가 대체 뭐냐’고 반대하는 아빠에게 비밀로 하면서까지 나가고 싶었던 콩쿠르였다. 하지만 팔을 다치면서 콩쿠르에 못 나가게 된 것은 물론, 아빠에게 그동안 몰래 발레를 계속해 왔다는 것까지 모조리 들키게 된다. 결국 선유는 발레 가방과 의상을 버리고 오라며 집 밖으로 내쫓기는데…….
 
“그거 뭐냐?”
다른 날보다 일찍 퇴근한 아빠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 아빠……!”
“아직도 발레냐? 너,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구나.”
아빠 목소리는 목덜미에 얼음을 끼얹은 것처럼 차갑고 섬뜩했다.
〔……〕
“이거 버리고 와. 네 손으로 처리하라고! 안 그러면 너도 집에 못 들어올 줄 알아.”
“여보……!”
엄마가 아빠를 말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빠가 나를 현관문 밖으로 밀어냈다. 나는 그렇게 집에서 쫓겨났다.
띠리릭, 도어록 잠기는 소리를 듣고도 한참을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설마 이 저녁에 진짜 쫓아내지는 않겠지. 속으로 60을 세고 또 60을 셌다. 60초를 다섯 번쯤 세고 난 후에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굳게 닫힌 문 앞에 서서 꿈쩍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텅 비어 버렸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집 안에서 엄마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아마도 아빠를 설득하는 것 같았다. “시끄러워!” 하는 아빠의 고함 소리를 끝으로 이내 잠잠해졌다. 불 꺼진 복도에 혼자 서 있으려니, 무섭기도 하고 서럽기도 했다.
‘발레복을 버리고 오라고? 아빠는 내가 정말 그러기를 바라는 걸까?’
아빠가 처리하고 싶은 건 발레복이 아니라 바로 나일 거다. 아빠 말을 듣지 않는 내가 미울 테니까. 유일한 방패막이였던 엄마도 이제 더는 나를 도와줄 수 없다. 엄마 아빠는 내가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는 모양이다. (105~108쪽)
 
 
확 삐뚤어지고 싶은 날
아역 배우인 나라의 유일한 휴식처는 학교다. 학교 밖에서는 엄마 등쌀에 중국어니, 필라테스니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엄마가 원하는 대로, 그리고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착하고 예쁜 아이의 모습만을 보여 주며 일상을 연기해 왔다. 그런데 오늘, 혼잣말로 욕하는 걸 다른 아이에게 들켜 버렸다. 심지어 오디션에서 또 떨어졌다는 소식까지 전해 졌다. 여기저기 나를 들들 볶는 사람들뿐이다. 아, 오늘만큼은 착한 배역에서 도망치고 싶다!
 
주머니에서 휴대폰 진동음이 계속 울려 대었다.
“당장 나와.”
전화를 받자마자 엄마 목소리가 귓전을 사납게 때렸다.
“엄마…….”
방금 내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설명하고 싶은데, 이상하게 말문이 콱 막혀 버렸다. 침만 꿀꺽꿀꺽 삼키는 사이, 엄마 목소리가 이어졌다.
“……배역 발표 났대. 거기에 네 이름은 없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 어떡해.’
나는 또 해내지 못했다. 배역을 따내지 못했다는 아쉬움 위로 엄마의 화난 얼굴이 스쳤다. 무슨 정신으로 복도를 걸어 나왔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 보니 1층 현관이었다. 엄마 차는 여전히 교문 옆에 서 있었다. 엄마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거기에 네 이름은 없어! 또 떨어졌다고.’
엄마가 얼마나 잔소리의 날을 갈고 있을까. 내가 오늘 무슨 일을 당했는지, 내 기분이 어떤지 따위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을 거다. 나는 그동안 엄마 말을 한 번도 거스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엄마의 날 선 목소리를 더 듣고 싶지 않았다. 착한 배역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오늘만큼은 확 삐뚤어지고 싶었다. (154~1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