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출판사
도서정보
스무살을 적절히 부적절하게 보내는 방법
김율
2015. 02. 27
13,800원
368 / 페이지
9791156755357

“오늘밤이 아니면 의미 없어.
지금 떠나지 않으면 난 평생 후회할 거야!”
함께이기에 외롭지 않았던 청춘의 1학기
찌질했고 서툴러도 자신만만했던 스무 살의 어느 날


“이 소설은 이불의 실존적 의미를 한껏 되새기는 데에 있었다.
어차피 잘 정리된 스무 살의 이야기는 ‘어른’들이 써내려갈 것이다.
민증의 잉크가 번들번들한 내가 할 일은 정리되지 않은
날것의 이야기를 라이브로 중계하는 것이다.
서른 살쯤에 나를 덮은 이불이 밤마다 폭행당할 만한,
그런 글을 쓰려고 했다.” _작가의 말에서

《스무 살을 적절히 부적절하게 보내는 방법》은 기숙사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빨간아이’라는 괴담이 발생하면서 벌어지는 기묘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사건들을 속도감 있게 펼쳐낸 이야기다. 대학교 1학년, 일곱 명의 친구들이 이 전대미문의 괴담을 함께 추적하는 내용으로, 그 과정에서 젊음의 맨 얼굴과 맨 언어들이 여기저기서 날것으로 튀어나와 활기차게 살아 움직인다. 직설적이면서도 솔직한 문장들은 스무 살의 작가만이 표현 가능한 스무 살의 정서를 담고 있기에 더 매력적이다. 또한 빨간아이의 폭로문에 함께 쓰인 《햄릿》의 문장들은 빨간아이에 대한 묘한 공포심과 두려움을 배가시키며 고전과 현대소설을 줄타기하듯 읽어 내려가는 재미를 더해준다. 문학평론가 김명인으로부터 “기숙사 전체를 지배하는 억압과 공포의 기제로 발전시켜나가고, 이것을 역으로 추적해 사태의 진실을 밝혀나가는 탐정담 구조의 탄탄한 스토리라인은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를 의식 못할 정도로 흥미진진하다”라는 평을 받은 이 작품은 마지막까지 책을 덮을 수 없게 만드는 스토리텔링의 힘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나아가 그동안 젊은 작가들이 ‘대한민국에서 청춘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갖고 관심을 기울였다면, 이 책의 작가 김 율은 도리어 재기발랄한 상상력으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수 있다는, 잊고 있었던 청춘의 가능성을 들추어낸다. 가능성을 가능성이라 말할 수 없는 이 시대의 젊음. 이를 역설적으로 상기시키는 스무 살의 맨 얼굴 같은 이야기는 외면하고 싶은 젊은 세대들의 불편한 자화상을 비추고 있다.

간략한 줄거리

외진 바닷가에 덩그러니 놓인 기숙사. 평균 연령 스무 살의 학생들이 모여 있는 유배지에 살고 있는 ‘유리’는 최다 커플을 배출하는 신입생 환영 파티에 참가한다. 한참 파티를 즐기고 있을 무렵, 천장에서 엄청난 양의 시뻘건 물이 쏟아진다. 학생들은 SNS에 소문이 불붙듯이 퍼져나간 학교 귀신, 빨간아이가 벌인 짓이라며 공포에 떤다. 그때부터 빨간아이는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서는데, 기숙사 질서를 망치는 일이 발생하면 SNS에 현장 사진, 《햄릿》의 문장과 함께 사건을 폭로하는 것이다. 친구들이 공개적으로 망신당하는 것을 본 학생들은 점점 서로를 검열하기에 이르고 결국 크고 작은 다툼으로 번진다. 학생 전체가 자발적으로 빨간아이의 눈이 되어버린 셈이다. 이런 상황이 가장 당황스러운 사람은 바로 유리다. 바로 그가 ‘빨간아이’라는 존재를 처음 만들었기 때문. 정의와 질서라는 이름으로 학교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니는 제2의 빨간아이를 잡기 위해 유리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는데…….

“빨간아이가 만드는 현실에선 언제나 서로가 서로에게 공포다!”
외딴 기숙사를 상호불신으로 물들인 빨간아이
이를 추적하는 스무 살의 낮과 밤!


국제학과 안기태는 기숙사에서 수없이 많은 여성들과 성관계를 가졌다.
A violet in the youth of primy nature, Forward,
not permanent, sweet, not lasting, The perfume and
suppliance of a minute. No more. _《햄릿》 9행 레어티즈
(젊음의 객기이며 청춘기의 꽃송이라, 빨리 피나 영원하진 못하고 달콤
하나 오래가진 못하니, 한순간의 향기요 시간 때우기 이상은 아니다.)

서로의 숨소리까지 검열하는 보이지 않는 감옥, 제2의 빨간아이는 기숙사 전체를 지배하는 억압과 공포의 기제로 발전해간다. 진압봉을 통한 물리적 가격이 아니라 정보를 통해 형체 없는 구타를 하고 있는 셈이지만, 어느 누구도 ‘빨간아이는 악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확실한 답을 내리지 못한다. 공개적으로 열린 토론회에서도 빨간아이 등장한 이후 기숙사 내의 사건 발생률이 절반가량으로 줄었고, 덕분에 숨겨져 있던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이유로 빨간아이를 지지하는 단과대학들과 학내 사고의 당사자들을 적나라하게 노출시켜 마치 공개 처형을 유도하는 행위는 명백한 인권 유린이라고 주장하는 단과대학들로 극명하게 의견이 나뉜다. 빨간아이는 자신의 존재는 완벽히 숨긴 채 학생들에게 불신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씨앗을 심었다. 정말 우리의 행동을 제약하는 것은 빨간아이일까, 아니면 내가 피해 입을까 싶은 두려움일까, 나만 아니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이기심일까. 작가는 ‘나는 아니다’라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오히려 친구들의 단점을 자발적으로 밀고하는 행위는 익명성이 갖는 폭력성과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의 크기, 우리를 두려움에 빠트리는 허상에 대해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

“내가 볼 때, 그 여잔 발암물질이야.”
젊음의 맨 얼굴과 맨 언어들이 날것으로 튀어나와 살아 움직인다!
함께이기에 외롭지 않았던 청춘의 1학기 이야기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한밤중 운동장에서 알몸으로 난동 부렸다.
Be thou familiar, but by no means vulgar. _《햄릿》 64행 폴로니우스
(친구를 사귀어도 상스럽게 굴지 말 것이며.)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새벽녘 운동장에서 바비큐를 해 먹었다.
Any unproportion’d thought his act. _《햄릿》 63행 폴로니우스
(엉뚱한 생각을 행동에 옮겨서는 안 된다.)

《스무 살을 적절히 부적절하게 보내는 방법》은 표면적으로는 해결된 탐정담이자 동시에 이면적으로는 어떤 것도 해결되지 못한 성장담의 첫 장이다. ‘완성형 양아치’ 기태, ‘연애고자’ 창훈, ‘성자聖姿’ 현석이 형, ‘친구인 듯 친구 아닌 친구 같은’ 미나, ‘경극 배우처럼 화장을 떡칠하는’ 장미 등 인물들의 이름 대신 ‘스무 살’ 혹은 ‘젊음’이란 말을 넣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각 캐릭터들은 딱 그맘때의 혈기왕성함과 불안, 번민을 안고 있다. “젊다 못해 치기어린” 스무 살 작가가 만들어낸 생동감 있는 인물들은 대학교 1학년 시절 우리 주변에 꼭 하나씩은 있었던 친구들을 오랜만에 떠올리게 만든다. 이들은 함께 모여 캠퍼스커플이었던 친구의 이별을 달래주고, 야밤에 축구시합을 하거나, 시험 이틀 전 새벽 바닷가로 향하며 추억을 쌓아간다. 24시간 내내 빨간아이에 매어 있기엔 스무 살의 시간들은 하루하루가 아깝다는 것을 알기라도 한 걸까.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다 보면 굳이 흑역사를 들추고 싶지 않은 어른들도 그 시절을 떠올리며 천진한 미소를 짓게 될 수밖에 없다. 괜히 투덜거리면서도 한편으론 기대하며 나갔던 첫 미팅, 좋아하는 여자가 했던 한 마디에 의미를 부여하며 애태웠던 밤들, 변변한 자금 없이 즉흥적으로 떠난 여행…… 함께이기에 외롭지 않았던 청춘의 1학기. 문득 문장과 문장 틈새로 숨겨둘 수 있어서 다행일 만큼 찌질했고, 서툴러도 자신만만했던 스무 살의 어느 날로 돌아가 있는 자신을 마주할 것이다.

김율

저자 : 김율
저자 김율은

1994년생, 연세대학교 국제학과 재학 중.

  

블랙 앤드 화이트 / 백야 / 입장 / 지배 그리고 레지스탕스 / 잠재 울분 / 그녀들 / 잔상 / 만남 / C and Sea / 꿈 / 밤 무지개 / 상처 / 사냥 / 트로이 목마 / L.O.V.E / 브러더후드 / 바람 / 합작 / 그녀 / 불청객 / 미아 / 우정 / 도화선 / 내전 / 빨간 회담 / 휴가 / 첫 번째 승부 / 체크메이트 / 달이 빛나는 밤 / 빗나간 화살 / 마녀사냥 / 나쁜 생각 / 피날레 제1막 / 피날레 제2막 / 피날레 제3막 / 에필로그 / 추천의 말 / 작가의 말

오늘 밤도 어김없이 기태와 나는 함께였다. 블랙 앤드 화이트. 정장을 갖춰 입고 참가하는 신입생 환영 파티로, 기숙사에서 가장 성대한 행사다. 워낙 많은 CC가 탄생하기에 이날만을 벼르고 별렀다. 파티가 절정에 이를 때쯤 우리는 끝내주는 여자애를 좇아가고 있었는데……. 그런데 지금 우리는 시뻘건 물을 온몸에 뒤집어 쓴 채 피투성이 몰골로 내 방에 앉아 있다. “야 인마, 정신 차려! 너 왜 이래!” 기태가 넋이 나가 멍하니 앉아 있는 내 뺨을 때리며 소리쳤다. “방금 그거 빨간아이가 분명해! 빨간아이가 나타난 거라구!” --- p.11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그냥 장난삼아 물어본 거야. 요샌 다들 그 얘기만 하잖아. 유행에 편승해본 셈이지. 그런데 너는 빨간아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성철이가 만약 제2의 빨간아이라면 정면으로 칼을 찌른 것이다. 과연 어떻게 받아칠까? “나? 나……는 별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그다지 관심이 없거든. 그…… 아무튼 관심이 없어서 나만의 견해랄 것도 없어. 미안.” 거짓말이다! 자신이 빨간아이에 대해 지극히 무심하다는 성철이의 말은 거짓말이다. 얼굴에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라고 쓰여 있다. 혹은 순진한 척 연기를 하고 있거나! 성철이가 제2의 빨간아이라면 뛰어난 방어였다. 어떠한 속내도 노출시키지 않으며 평소 행동의 연장선상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는, 지극히 성철이다운 반응으로 내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여기서 지나치게 파고든다면 오히려 내 정체가 슬쩍 내비칠 위험도 있었다. --- p.53

나는 아직 그녀에 대해 지극히 피상적인 정보밖에 알지 못한다. 마리가 나의 이런저런 질문에 자신의 기호, 성격, 취향 등이 흠뻑 배어 있는 대답을 던져주는 것은 그녀 스스로 ‘마리’라는 한 폭의 그림을 구성하고 있는 물감을 한 색상씩 건네주는 행위이다. 나는 건네받은 형형색색의 물감들을 그녀라는 밑그림 위에 하나 둘씩 칠해간다. 마리의 입술, 눈, 목덜미 등에 색을 입히다 보면 그림이 어느 정도 완성되어간다. 이러는 동안 어느 순간 “아, 저만 너무 말을 많이 하는 것 같네요”라는 말과 함께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 많은 물감을 건네주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그녀는 이제 ‘나’라는 그림을 그리기를 원한다. --- p.66

“너랑 평소에 맨날 붙어 다니던 룸메이트‘들’은 오늘 뭐한데?” 일부러 룸메이트‘들’이라고 표현해 지수라는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동시에 복수형으로 물어서 지수의 흔적을 최대한 지우려 했다. 사실 그녀의 오늘 밤 행적이 궁금하기도 했다. “민선이는 소개팅한 남자 만나러 갔고 지수는 원래 이런 곳 잘 안 와.” “피차일반이구나. 룸메이트란 것들이 참 매정해. 그치?” 둘 다 룸메이트들이 우리 빼고 바쁘다는 동병상련의 처지를 활용해 동질감을 고취시켰다. 그러고는 살짝 미소를 띠고 장미를 가볍게 툭 쳤다.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 장미의 머릿속에는 심야버스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 영화가 상영되고 있을 것이다. 장미로서는 그리 나쁘지 않은 밤인 듯싶다. --- p.142

록밴드를 하고 있는 현석이 형, 축구부를 하고 있는 창훈이와 달리 난 학기 초에 이리저리 간만 보다가 한 동아리에 정착할 시기를 놓쳐서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지수는 정말로 예의상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듯 보였고 의외로 민선이와 창훈이가 잘 되어가는 모양새다. 장미가 나에게 말을 붙이려고 시도했으나 적당히 거리를 두었다. 어차피 생각이 없다면 희망고문을 하기보다는 칼같이 끊어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창훈이가 축구부였구나.” “민선아. 너 혹시 FC바르셀로나 알아? 내가 진짜 좋아하는 팀이거든. 그 팀이 이번 시즌에 리그하고 챔스에서…….” 또 시작되었다. 창훈이 얼굴 위에 ‘연애고자’라는 글귀가 서서히 떠올랐다. --- p.184

지수를 처음 본 순간부터 단 한 번도 변한 적 없었던 시큰둥한 표정에 경악과 놀라움이 깃들었다. 5초 전까지 나를 조롱하듯 내려오며 ‘유리 넌 끝났어’라는 말과 함께 입을 벌린 엘리베이터는 무안하게 입을 닫았다. 우리는 닫힌 엘리베이터 앞에서 말문이 막힌 채 서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방금 전 발언은 지수뿐 아니라 나에게도 상당한 충격이다. 만약 지수가 제2의 빨간아이가 아니라면 그간 내가 은밀히 쌓아왔던 노력을 한 번에 무너트릴 수도 있는 경솔한 행동이었다. --- p.189

날을 새우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밤은 영원의 시간이었다. 하루의 끝을 알지 못했던 그때는 매일매일이 무한으로 수렴했다. 그러나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밤도 그저 그런 아침 해에 치일 뿐이란
것을 깨달은 후, 삶에서 또 하나의 영원이 사라졌다. --- p.268

“내가 술 마시면서 왜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니 말에는 허점이 너무 많아. 우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까지 따라오는, 말하자면 자아실현에 성공한 놈들은 분명히 승리자야. 그렇게만 되면 더할 나위 없지. 하지만 대부분은 딱히 자기 일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묵묵히 각자의 직업에 종사하잖아. 그런 것들이 인내와 노력이라는 생각을 안 해봤냐? 인간이 어떻게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아. 다들 엿 같아도 참고 일하면서 가족도 부양하고 이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거지. 너는 지금 그런 노력 자체를 폄하하고 있어. 이렇게 노력하는 삶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것 아니냐?” --- p.276

“뭐가 그렇게 오래 걸리냐? 가서 도와줘?” “야…… 그…… 그…….” 기태는 전화기 너머로 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날 정도로 덜덜 떨며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기태가 이러고 있다. 몇 초 뒤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는데 비명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미친 듯이 창고로 달려갔다. 계단에서부터 비명, 울음, 절규 등이 쩌렁쩌렁 들려왔다. 이미 사람들이 꽤 모여 있다. 공황 상태에 빠진 인파를 뚫고, 넋이 나간 경비 아저씨를 밀친 뒤에야 창고 안에 서 있는 기태를 보았다. 창고에서 내가 본 광경은 20년 동안 목격한 장면 가운데 가장 참혹했다. --- p.315

기숙사는 며칠간의 상처를 조금씩 회복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나는 팡세에 앉아 빨간아이의 결말 각본을 완성시켰다. 제1의 빨간아이, 셰익스피어, 그리고 원작자로서 이 이야기의 마침표는 내가 찍어야만 했다. --- p.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