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출판사
도서정보
너와 나의 세미콜론
킴벌리 브루베이커 브래들리
2022. 07. 20
12,000원
248페이지
9791192411040

2021 뉴베리 아너 상 수상작
2021 보스턴 글로브 혼북 아너 상 수상작
스쿨 라이브러리 저널 선정 2021년 최고의 책 
북리스트 선정 2021년 최고의 책 
커커스 리뷰 선정 2021년 최고의 책 
뉴욕 공공도서관 선정 2021년 최고의 책 
시카고 공공도서관 선정 2021년 최고의 책 


출간의 의의
킴벌리 브루베이커 브래들리, 뉴베리 아너 상을 두 번째로 수상하다!
작가의 전작 《맨발의 소녀》(원제 : The War That Saved My Life)는 출간되자마자 각종 매체로부터 엄청난 찬사를 받으면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 후 뉴베리 아너 상과 슈나이더 패밀리 도서상까지 받기에 이르렀다. 

신기하게도 그로부터 5년 뒤에 펴낸 《너와 나의 세미콜론》(원제 : Fighting Words) 역시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출간 즉시 각종 매체의 주목을 받기 시작해 2021년에 뉴베리 아너 상과 보스턴 글로브 혼북 아너 상, 골든 카이트 아너 상을 단숨에 거머쥐었다. 그리고 현재 《맨발의 소녀》가 그랬듯이, 보스턴 글로브 선정 2021년 최고의 책, 혼북 팡파르 선정 2021년 최고의 책, 스쿨 라이브러리 저널 선정 2021년 최고의 책, 북리스트 선정 2021년 최고의 책, 커커스 리뷰 선정 2021년 최고의 책, 북페이지 선정 2021년 최고의 책, 뉴욕 공공도서관 선정 2021년 최고의 책, 시카고 공공도서관 선정 2021년 최고의 책 등 하나하나 읊기에도 숨 가쁠 만큼 화려한 수상과 선정 이력을 기록했다.

전작 《맨발의 소녀》가 지독한 장애를 안고서도 용기 있게 자신의 앞길을 헤쳐 나가는 열세 살 소녀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면, 《너와 나의 세미콜론》은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두 자매에게 보호자라는 허울 좋은 이름을 내세운 채 은밀하고 교묘하게 성적 학대를 하는 그루밍 성범죄자의 맨 얼굴을 들춰낸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고도 자신의 잘못이라 여기고 어둠 속으로 침잠하며 불안에 떨던 두 소녀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당당히 거듭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의 특징
“나한테 빚진 거 있잖아!” : 보호자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그루밍 성범죄
델라는 올해 열두 살이고, 언니 수키는 열일곱 살이다. 델라가 다섯 살일 때 엄마는 필로폰으로 문제를 일으켜 구속된 뒤 줄곧 교도소에 갇혀 있다. 그런 데다 정신 분열증을 앓고 있어서 델라와 수키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린 지 오래다. 갈 곳이 없던 두 자매는 엄마와 함께 동거하던 클리프턴 아저씨네 집을 떠나지 못하고 쭉 같이 지낸다.  

그러다 일주일 전, 델라와 수키가 클리프턴 아저씨 집에서 황급히 도망쳐 나오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 그 일로 클리프턴 아저씨는 교도소에 수감된 채 재판을 앞두고 있고, 델라와 수키는 사회 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프란시스 아줌마 집에서 생활한다. 델라는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가고, 수키는 독립을 꿈꾸며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어릴 때부터 무책임한 엄마 대신 델라를 돌봐 온 수키는 클리프턴 아저씨 이야기만 나오면 극도로 예민해진다.  

한편, 델라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트레버란 남자애가 날마다 문제를 일으키면서 담임 선생님의 눈총을 받는다. 여자아이들의 등을 꼬집으면서 ‘아기’라고 놀려 대는데, 여자아이들은 이 문제로 시끄러워지는 것이 싫어서 묵묵히 감내한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수키는 날마다 한밤중에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깬다.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가면서 신경이 매우 날카로워진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오줌이 마려워 잠이 깬 델라는 거실로 나갔다가 끔찍한 장면을 목격하는데…….

이 작품은 델라와 수키가 위탁모인 프란시스 아줌마의 집으로 들어간 시점에서 시작한다. 그러면서 일주일 전에 왜 엄마의 동거남이었던 클리프턴 아저씨 집에서 둘이 도망쳐 나오게 되었는지를 실타래에서 실을 풀 듯 조금씩 조금씩 들려준다. 

델라의 시선으로 써 내려간 이 이야기는 사건의 진실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긴장감을 드높이며 가슴을 조여 온다. 클리프턴 아저씨는 수키에게 경제력이 없다는 점과 동생인 델라를 끔찍이 아낀다는 점을 이용해 수년간 그루밍 성범죄를 저지른다. 자신이 아니면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빌미로 가스라이팅을 하면서 불안감과 두려움에 휩싸이도록 조장한 뒤 오랜 세월 동안 성폭력을 가해 온 것이다. 

작가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잔인하고 끔찍한 일을 겪고도 누군가에게 드러내놓고 도움을 청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알리려 노력한다. 또한 주변인들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는 사실을 연거푸 강조한다. 그래서 성범죄가 일어나는 정황에 집중해 자극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그런 사건이 일어난 후 두 자매가 어떤 식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자존감을 회복해 나가는지에 더 초점을 맞춘다. 

처음에는 델라와 수키 역시 대부분의 성폭력 피해자들이 그러하듯, 이 모든 일이 자신들 때문에 생겨난 거라고 자책하면서 죄책감에 빠진다. 특히나 델라는 수키의 자살 시도를 목격하면서 엄청난 죄책감에 휩싸인다. 자신이 언니의 아픔을 일찍 알아채지 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두 자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기를 기도하며 물심양면으로 애쓰는 주변 사람들, 즉 프란시스 아줌마와 사회 복지사, 그리고 심리 상담사는 그 모습을 안타까이 여기며 끊임없이 이렇게 말한다. 너희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런 일을 저지른 사람이 나쁜 거라고, 그런 사람 때문에 너희의 미래를 망쳐선 안 된다고, 앞으로 얼마든지 행복하게 잘살 수 있다고…….


“어, 아직 아기잖아?” : 장난으로 치부되기 십상인 아이들 사이의 성희롱
이 작품에서는 델라와 수키가 겪는 그루밍 성폭력 외에 다른 한 줄기의 이야기가 더 있다. 바로 델라의 반 친구들이 트레버라는 남자아이에게 겪게 되는 성희롱이다. 트레버는 같은 반 여자애들의 등을 꼬집어 보고선,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았을 땐 바로 “아기구나!” 하고 큰 소리로 놀린다. 여자애들은 트레버의 그런 행동이 끔찍하게 싫으면서도 그저 제풀에 꺾이길 바라며 저항하기보다는 무시하는 방법을 택한다. (트레버 엄마로 대변되는 어른들 역시 잘못을 정확하게 짚어내기보다는 ‘아이들끼리 장난 좀 친 것 가지고 수선을 피우냐’는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델라는 생각이 다르다. 허락 없이 남의 몸을 만지는 것은 잘못된 일이기에, 트레버와 끝까지 싸워서 벌을 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델라의 끈질긴 노력 끝에 트레버는 학교에서 징계를 받게 되고, 델라네 반 아이들은 이런 일일수록 드러내놓고 맞서 싸워야 반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두 줄기의 이야기에서 작가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당한 사람이 스스로 그 사실을 이야기하고 목소리를 높여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피해를 입었을 땐 쉬쉬하지 말고 안전한 상황에 놓일 때까지 계속 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원제가 ‘Fighting Words’인 듯.) 거꾸로 누군가가 자신에게 그런 피해를 입었다고 털어놓는다면, 불편해하거나 의심하지 말고 그 말을 믿어 주어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이 작품은 성폭력, 자살, 필로폰, 문신 등 다소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거칠거나 폭력적인 단어나 표현을 거의 쓰지 않는다. 델라는 자기주장이 뚜렷하고 언행이 다소 거칠긴 하지만, 수키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나쁜 말을 쓰면 안 된다고 한 말에 따라 욕이 나오는 대목을 ‘눈’이나 ‘눈송이’, ‘눈사람’ 같은 말로 바꾸어 나타낸다. (욕을 내뱉고 싶을 때 ‘눈’이라고 하는 순간,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면서 화난 마음이 누그러지는 예상 밖의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욕을 ‘눈’으로 귀엽게 표현하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이야기를 결코 교훈적으로 풀어내지 않는다. 주제가 풍기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열두 살 델라의 시선으로 통통 튀는 어법을 구사한다. 아이의 시선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해법을 찾아 나가는 것이기에 읽는 재미 또한 아주 쏠쏠하다는 게 이 작품의 아주 큰 매력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델라와 수키 곁에는 프란시스 아줌마와 티나네 가족, 델라의 반 친구들, 또 수키의 직장 동료들이 있다. 그들이 건네는 따뜻한 시선과 말들은 책장을 덮을 때까지 마음을 훈훈하게 만든다. 그만큼 타인을 향한 ‘선한 영향력’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나쁜 어른에게 상처받는 델라와 수키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위로하고 응원하는 모습이 사뭇 감동적이다. 세상에는 나쁜 어른들만 있는 게 아니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덤으로 얹어 주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당당하고 씩씩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델라와 수키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될 뿐 아니라 아프고 슬픈 이야기를 읽고서도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짓게 된다. 



추천의 말
끔찍할 정도로 슬픈 이야기가 아주 매력적이면서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몸과 정신, 마음에 새겨진 상처를 치유하고 희망을 그려 가는 두 자매 이야기. _뉴욕 타임스

성적 학대와 트라우마에 맞서 싸우는 아이들의 용기가 돋보인다. 세미콜론이 지닌 의미처럼 그들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며, 야생의 늑대처럼 강인해지기를 응원한다. _스쿨 라이브러리 저널

드러내 놓고 말하기 힘든 주제인데도 주인공 델라는 절대 회피하지 않는다. 진심을 담은 정직한 목소리로 가슴 저린 처절함과 앞날에 대한 희망을 동시에 이야기한다. _커커스 리뷰

델라의 솔직한 내레이션은 거침이 없을 뿐만 아니라 무척 날카롭다. 우리에게 현실을 볼 수 있는 거울과 창문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_퍼블리셔스 위클리 

연민과 유머가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성적 학대와 트라우마에 맞서 싸우는, 그리고 마침내 그것에서 치유되는 아이들의 용기와 회복력을 보여 준다. 언제까지나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될 것이다. _혼 북 매거진

그루밍 성폭력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도 독자에게 힘을 북돋아 주고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서술 방식이 자못 흥미롭다.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당차게 자신의 앞길을 헤쳐 가는 델라의 모습은 결코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_북페이지 

우리 삶의 단면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그래서 더 생생하고, 고통스럽고, 쓰라리다. 일단 책을 손에 잡으면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_북리스트 

지은이 : 킴벌리 브루베이커 브래들리 Kimberly Brubaker Bradley
1967년에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의과 대학에 진학했다가, 작가가 되고 싶은 열망을 품고 스미스 리버럴 아트 스쿨에 들어가 글쓰기 공부를 시작했다. 거기서 뉴베리 수상자 패트리샤 매클라클랜의 어린이·청소년 문학 수업을 들으면서 작가의 꿈을 키웠다.
2016년에는 뉴욕 타임스 베스트 셀러였던 《맨발의 소녀》로 뉴베리 아너 상을 받았다. 뒤이어 2021년에 《너와 나의 세미콜론》으로 또다시 뉴베리 아너 상을 수상해 같은 상을 두 번 받는 영광을 안았다. 지금은 미국 남부 테네시주의 브리스톨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책을 쓰는 데 집중하고 있다.


옮긴이 : 이계순
서울대학교 간호학과를 졸업했으며, 인문 사회부터 과학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좋은 어린이·청소년 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에 힘쓰고 있다. 옮긴 책으로 《맨발의 소녀》 《그해 여름 너와 나의 비밀》 《캣보이》 《1분 1시간 1일 나와 승리 사이》 외 여러 권이 있다.

눈송이 같은 가계도
새로운 시작
나쁜 기억
금요일의 선택  
윽, 방과 후 수업이라니!  
제발 모른 척해 줘  
지우고 싶은 시간  
평범한 가족  
최악의 밤 
정말 내가 잘못한 걸까?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는 건  
명백한 증거  
세미콜론 ; 내 인생 최고의 날 

작가의 말

나는 올해 열두 살이고, 이름은 ‘딜리셔스 네바에 로버츠’다. 알다시피 ‘딜리셔스(Delicious)’는 ‘맛있다’는 뜻이다. 에휴, 무슨 놈의 이름이 이 모양인지. 중간 이름인 ‘네바에’를 그냥 내 이름으로 쓰면 안 되는 걸까?
아무튼 어디 가서 나를 소개해야 할 때 절대로 딜리셔스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출석부에는 버젓이 그렇게 적혀 있어서, 보통 등교 첫날에 선생님들이 그 이름을 불쑥 말해 버리곤 한다.
요즘 들어, 나는 등교 첫날이 꽤 여러 번이었다.
선생님이 큰 소리로 “딜리셔스!” 하고 외치기 전에 내가 “델라라고 불러 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한번은 어떤 남자애가 진짜로 맛있는지 확인해 보자면서 내 몸을 혀로 핥으려고 했다. 나는 그 애를 발로 냅다 걷어찼다. 녀석의 그곳을…….
나는 여기서 나쁜 말을 쓰지 않을 것이다. 수키 언니가 그러지 말라고 했다. 내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 주길 바란다면 그래야 한다나? 언니는 나더러 나쁜 말을 써야 할 때는 ‘눈’이나 ‘눈송이’, 혹은 ‘눈사람’으로 바꾸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래, 그렇게 할 거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쁜 말을 썼지만 그대로 옮겨 적지는 않을 생각이다. _8쪽에서


클리프턴 아저씨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서로 아무 관계도 아니라는 걸 누군가 알게 되면 우리를 지킬 수 없다고. 그러면 언니와 나는 어디서 뭘 먹으며 살 거냐고 물었다. 거리로 나앉는 수밖에 없는데, 거리는 어린 여자애들이 살아가기에 좋은 곳이 아니라나? 특히 언니처럼 예쁘고, 나처럼 어린 여자애는 더. _35쪽에서


쉬는 시간에 네바에와 루이사, 나는 운동장의 커다란 나무 밑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트레버가 다가오더니 대뜸 네바에 등을 꼬집었다. 등 한가운데 살을 뜯어 버리듯이 세게 비틀었다. 네바에가 몸을 배배 꼬며 트레버한테서 가까스로 벗어났다. 그런데 네바에는 소리도 지르지 않았고 녀석을 때리지도 않았다.
트레버가 말했다.
“하! 아직도 젖먹이 아기군. 언제쯤에야 그걸 할래?”
네바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나는 트레버한테 한 걸음 다가가서 소리쳤다.
“야, 하지 마!”
트레버가 내 주위를 빙빙 돌며 물었다.
“뭐라고?”
“하지 말라고! 네바에 꼬집는 거 내가 다 봤어.”
“쟤는 아기야! 너도 분명 아기겠지?”
트레버가 나한테 혀를 쏙 내밀고는 저 멀리로 도망쳤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선생님 중에서 이 상황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네바에 아랫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_90~91쪽에서


위층 침대를 살펴보니 언니가 없었다. 이불 속으로 손을 넣었다. 차가웠다. 어디 간 거지? 팔뚝의 털이 곤두섰다.
서랍장 위의 알람 시계는 2시 4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 언니가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는 시각은 이미 지났다. 나는 복도로 걸어 나갔다. 아줌마는 가스레인지 위에 달린 불을 항상 밤새도록 켜 놨다. 이윽고 식탁 의자에 앉아 있는 언니가 보였다.
식탁에 칼이 놓여 있었다. 아줌마가 요리할 때 쓰는 칼 중 하나였다. 길고 날카로운 칼. 아줌마는 지난 목요일에 그 칼로 저녁밥을 만들었다. 나는 설거지를 도운 뒤에 그 칼을 찬장 서랍에 넣어 두었다.
그런데 지금 그게 식탁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언니는 의자에 앉은 채 무릎을 두 팔로 감싸고서 그 칼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마치 그 칼이 세계 최고의 물건이거나, 혹은 최악의 물건이어서 감히 고개를 돌릴 수 없는 것처럼. 아니, 그 칼이 어떤 마법을 부려 언니만 들을 수 있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처럼. _147~148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