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출판사
도서정보
도련님
나쓰메 소세키
2017. 03. 24
9,500원
규격외 변형 / 244페이지
9791156751359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에는 거짓과 간교함에 맞서고자 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영웅이 등장한다. 위대한 힘을 지닌 영웅이라기엔 인간적인 약점이 가득하다. 단순무지한 면이 있는가 하면, 막무가내의 모습도 띠고 있다. 그러나 한없이 친근하고 따스해서, 마치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인 것만 같다. 물론 요사이는 자신의 이익을 좇느라 비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찾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본의 국민 작가로 불리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가 쓴《도련님》은 일본이 근대화를 내세웠던 메이지 시대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린 소설이다. 작품 속에서, 또 작품 밖에서 근대 지식인으로서 고뇌하며 살았던 작가의 인생관이 고스란히 배어 있으며,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무엇보다 거짓에 당당히 맞서는 강직하고 무모하고 솔직한 신출내기 교사의 모험담이 갑갑한 세상을 살아가느라 꽉 막혀 버린 우리네 속을 시원하게 뚫어 준다.

나쓰메 소세키
일본의 셰익스피어라 불릴 정도로 확고한 문학적 위치에 있는 일본의 국민작가다. 1867년 일본 도쿄 출생이며 본명은 긴노스케[金之助]로, 도쿄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제1고등학교 시절에 가인(歌人)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를 알게 되어 문학적, 인간적으로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도쿄고등사범학교·제5고등학교 등의 교수를 역임하였다. 1896년 제5고등학교 교수 시절 나카네 교코와 결혼 했으나 원만하지 못한 결혼 생활을 보냈고, 1900년 일본 문부성 제1회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영국에서 유학했다.

타지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예민하고 우울한 자아를 남겼으며, 이는 귀국 후에도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그는 치유의 한 방편으로 『고양이전』을 썼고, 이 작품은 1905년 『호토토기스(두견)』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1906)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어 큰 호평을 받았다. 1907년에 교직을 사임하였으며 아사히[朝日]신문사에 입사하여 『우미인초(虞美人草)』를 연재하고 『도련님』(1906), 『풀베개[草枕]』(1906) 등을 발표하였다.

20세기 초 근대적 주체와 삶의 불안한 내면 풍경을 깊은 통찰력으로 꿰뚫어 보여주는 그의 작품들은 일본적 감수성과 윤리관으로 서구 근대의 기계문명과 자본주의를 비평적으로 바라보며 인간세계를 조명하고자 했다. 경쾌한 리듬과 유머를 바탕으로 권선징악과 같은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가치에 기반을 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며 템포가 빠르고 리듬감이 있는 문체로 자연스레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소설 외에도 수필, 하이쿠, 한시 등 여러 장르에 걸쳐 다양한 작품을 남겼으며, 그림에도 재능이 있었다.

그의 작풍은 당시 전성기에 있던 자연주의에 대하여 고답적인 입장이었으며, 그후 『산시로[三四郞]』(1908), 『그후』(1906), 『문(門)』(1910)의 3부작에서는 심리적 작풍을 강화하였고, 다시 『피안 지나기까지』(1912), 『마음』(1914) 등에서는 근대인이 지닌 자아·이기주의를 예리하게 파헤쳤다. 반복적인 위궤양, 당뇨 등을 앓았던 그는 1916년 12월 병이 악화되어 『명암』 집필 중 49세의 나이로 타계하였으며, 1984년, 영국에서 그가 살았던 집 맞은편에는 런던 소세키 기념관이 설립되었다.
[예스24 제공]

제1장 나의 유년 시절
제2장 첫 발령장
제3장 깡촌에서 교사로 살아가기
제4장 한밤중의 메뚜기 소동
제5장 낚시하기 좋은 날
제6장 신참 교사 길들이기
제7장 남자와 여자
제8장 배신의 대가
제9장 끝물의 송별회
제10장 빨간 셔츠 퇴출 작전
제11장 용감한 샌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육 년째 되던 해 정월에 아버지도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해 4월에 나는 어느 사립 중학교를 졸업했다. 형은 6월에 상업 학교를 졸업했는데, 어떤 회사의 규슈 지점에 취직을 해서 집을 곧 떠나야 했다. 나는 도쿄에서 공부를 더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형은 집을 팔아서 재산을 정리한 후 규슈로 가겠노라고 했다.
나는 아무래도 좋으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 어차피 형한테 신세질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같이 있어 봐야 싸움만 늘상 싸움만 하니까, 형 쪽에서 알아서 잘 처리하리라 생각했다. 어설프게 빌붙어 살다가는 형한테 머리를 숙이고 지내야 할지도 몰랐다. 우유 배달이라도 해서 먹고살면 그만이었다.
형은 곧 고물상을 불러 조상 대대로 내려온 잡동사니들을 뭉뚱그려 헐값에 넘겨 버렸다. 집과 토지는 어느 부자한테 팔았다.……키요는 십 년도 넘게 살던 집이 남의 손에 넘어간다는 걸 몹시 안타까워했지만, 제 것이 아닌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도련님이 조금만 더 나이를 먹었더라면 제대로 상속을 받았을 텐데.”
그저 이렇게 푸념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몇 살 더 먹어서 받을 수 있는 상속이라면 지금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할머니는 내가 조금만 더 나이가 들었으면 당연히 그 집을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 믿은 모양이었다.
--- pp.19~20

쉬는 시간이 끝나고 옆 교실로 들어섰더니, “앉은자리에서 튀김 메밀국수 사 인분! 단, 웃으면 안 돼!”라는 글자가 칠판에서 춤을 추었다. 아까하고는 달리, 화가 나지는 않았지만 짜증이 확 솟구쳤다. 농담도 도가 지나치면 시비가 되는 법! 구운 떡에 달라붙은 검댕이와 비슷해서 그 누구도 좋아할 수 없는 것이다.
촌놈들이다 보니 애송이 선생한테 이런 장난쯤은 무작정 밀어붙여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한 시간만 걸으면 더는 볼 것도 없을 만큼 좁아터진 동네에 살다 보니 달리 즐거운 일도 없을 테지. 그래서 튀김 메밀국수 사건을 러일 전쟁 무용담이라도 되는 듯이 떠벌이는 것이 아닐까.
불쌍한 놈들이다. 어릴 적부터 이런 교육 환경 속에서 심사가 꽤 비틀어진 통에, 화분에 심은 단풍나무처럼 꼬불꼬불 꼬여서 메말라 버리고 마는 것이다.
--- pp.50~51

처음 이곳에 올 때부터 어쩐지 빨간 셔츠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친절한 여자 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건 친절도 뭣도 아니었다. 그에 대한 반작용 때문인지 지금은 이 사람이 너무너무 싫었다. 그래서 상대가 제아무리 논리정연하게 설명을 해도, 또 교감 특유의 당당한 태도로 나를 몰아세워도 전혀 설득이 되지 않았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말을 잘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사람이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궁지에 몰렸다고 해서 꼭 나쁜 사람도 아닌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빨간 셔츠가 누구보다 훌륭한 것 같지만, 겉이 그럴듯하다고 해서 속까지 감복할 수는 없다. --- pp.151~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