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출판사
도서정보
사랑이 반짝
라라 쉬츠작
2020. 11. 23
10,000원
204 페이지
9791189208660

“그거 알아?
너 때문에 내가 자꾸만 반짝이는 거.”

열네 살 생일을 앞둔 구스타프의 마음은 뒤숭숭하기만 하다.
따끔거리면서 자라기 시작한 가슴, 중년의 위기에 빠진 부모님의 폭풍 같은 갈등,
사춘기의 한복판을 지나느라 까칠하기 이를 데 없는 언니들의 비뚜름한 독설,
조금씩 멀어지는 것 같은 절친 아니나와의 관계…….
익숙한 일상을 뒤흔드는 작은 지진 같은 사건들이 괴롭기만 한 그 순간,
자꾸만 신경 쓰이는 남자애가 구스타프에게 성큼 다가온다!

열네 살 소녀의 마음속으로 파고든 두근두근 첫사랑 이야기



*출간의 의의
밀치락달치락하며 다가오는 첫사랑의 순간을 그리다!
팬데믹과 기후 위기로 인해 뉴 노멀이 가속화된 시대, 인간의 영역을 파고드는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그 어느 때보다 ‘인간다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에 로봇공학자 데니스홍 교수는 자신의 기억과 기록을 담은 AI 로봇을 제작해 튜링 테스트를 했다. 데니스홍봇은 친구와 지인들이 건넨 질문에 막힘없이 재치 있게 답변하고 심지어 농담까지 하는 여유를 보였다. 그러나 교수의 아들이 던진 질문, ‘나를 사랑하나요?’에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답변 없음’이라는 결과값을 내놓았다. ‘사랑’은 기계가 알 수 없는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대답한 이는 AI 로봇이 아닌 인간 데니스홍 교수였다. 물론 기술이 더 발전하면 복잡 미묘한 인간의 감정까지 이해하는 AI 로봇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인간을 정의하는 데 ‘사랑’과 같은 추상적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감정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랑이 반짝》은 우리가 여러 관계 속에서 맺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라는 감정을 기민하게 포착해 그린 성장 소설이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몸과 마음의 변화를 예민하게 느끼는 열네 살 소녀 구스타프가 보낸 한여름의 시간, 그리고 삶에 작은 지진을 일으키는 변화의 순간들을 맞닥뜨려 자기도 모르는 새 훌쩍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익숙했던 것들과 헤어지고 새롭게 다가오는 것들을 맞이하면서 느끼는 감정의 파열음을 섬세하게 담은 동시에, 사춘기와 첫사랑이라는 보편적이면서도 개별적인 감정을 탁월하게 형상화해 공감의 폭이 넓다. 
이 책은 독일 현지의 기대를 받는 신인 작가 라라 쉬츠작의 작품으로 출간되자마자 ‘마울 마르’ 문학상을 받았고, ‘취리히 아동 문학상’ 후보에도 올랐다. ‘유머와 가슴 아픈 통증이 공존하고, 한번 읽기 시작하면 멈추기 힘든 이야기’, ‘복잡한 사춘기 시절의 심리를 적확한 언어와 톤으로 그렸다’는 호평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간략한 소개 
“내 마음이 왜 이럴까?”
마음과 일상에 작은 지진을 일으키는 특별한 감정에 대하여
열네 살 생일과 신나는 방학이 코앞이지만 구스타프의 하루는 고달프기만 하다. 또래들에 비해 성장이 늦된 편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작은 완두콩 크기로 자라며 따끔거리기 시작한 가슴 때문에 밤잠을 설치게 된 것이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가장 끔찍한 시기인 사춘기가 오고 있다는 생각에 참을 수 없는 기분마저 든다. 절친 아니나를 비롯해 다른 아이들은 이성 친구에게 관심을 가지며 알 수 없는 반짝거림이 생겼지만, 구스타프는 사춘기를 겪더라도 절대로 사랑에 빠지지는 않을 거라며 굳게 결심한다. 
게다가 평화로운 줄 알았던 가족의 일상에도 생각지 못한 균열이 생긴다. 닭살 커플이었던 부모님의 갈등이 장기화되는 게 심상치 않더니, 서로 간에 거리가 필요하다며 떨어져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겠다고 선언하는 게 아닌가! 심지어 매년 가던 가족 여행을 일방적으로 취소해 버리기까지 한다. 
사춘기의 정점을 지나느라 세상 사람 모두와 척을 지고 살면서 독설을 퍼부으며 집 안 분위기를 흉흉하게 만드는 언니들, ‘중년의 위기’이자 어른들의 사춘기에 돌입해 자식들은 아랑곳없이 마주쳤다 하면 하얗게 재가 될 때까지 싸우는 엄마와 아빠……. 안온한 보루인 줄 알았던 집이 전쟁터가 되어 버린 게 참담할 뿐이다. 구스타프는 경직된 분위기를 풀고 관계를 이어 붙이려 고군분투하지만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지기만 한다. 결국 아빠는 몸만 이곳에 있고 정신은 다른 데로 가 있는 유령 같은 상태에 수시로 빠져들고, 엄마는 아픈 친구를 간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혼자 마요르카로 훌쩍 떠나 버린다.
절친 아니나조차 프랑스로 여행을 가는 바람에 오도카니 혼자 남게 된 구스타프는 치매를 앓는 늙은 개 모래를 돌보면서 함께 텅 빈 동네를 돌아다니며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그런 구스타프의 일상에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슬쩍 끼어든다. 반짝이 레깅스에 별 무늬 티셔츠를 입은 데다 머리카락까지 치렁치렁하게 긴 괴짜 전학생 문! 야외 수영장을 기웃거리던 구스타프는 스케이트보드를 끌고 다니면서 빈 병을 모으는 문을 발견하고 호기심을 느낀다. 그러다가 짓궂은 남자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문을 충동적으로 구해 주게 된다. 구스타프의 작은 호의는 둘 사이에 비밀스러운 온기를 남기고, 그날 이후 둘은 소소한 약속이라도 한 듯이 매일 만나며 사소한 추억들을 차곡차곡 쌓아 간다. 구스타프는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날 거라는 예감을 느끼며 자기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사랑을 묻고 답하며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
《사랑이 반짝》은 다양한 사랑의 방식을 보여 주고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그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뜨거운 열정이 식은 뒤 의무와 책임만 남아 권태를 느끼는 중년 부부의 미적지근한 마음, 가장 가까이에 있기에 무조건적인 신뢰를 주고받지만 그만큼 지긋지긋할 때도 있는 가족 간의 끈끈한 사랑, 또 다른 나라고 느낄 만큼 의지하고 몰입하게 되는 친구와의 사랑, 때론 세상 그 누구보다 내 편이라고 느끼는 반려동물과의 사랑, 그리고 자꾸만 신경이 쓰이고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이 쏟아지는 이성과의 사랑까지……. 이제 막 시작되기도 하고, 영원히 잊지 못할 기억을 남기기도 하며,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끝을 향해 가기도 하는 각각의 사랑은 형태와 온도가 달라도 어쩐지 모두 닮아 있는 듯하다. 
사랑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담은 구스타프의 이야기는 ‘한 사람이 오는 것은 그의 일생이 오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의미의 시구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무엇보다 부모님이 헤어지는 과정을 겪으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에 의구심과 불신을 품을 수밖에 없는 순간, 생애 최초로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생기는 구스타프의 이야기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잘 보여 준다. 이를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존재하고, 그로 인해 기쁨과 슬픔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 또한 자연스럽게 건넨다. 구스타프는 문과의 만남을 통해 사춘기는 곧 종말의 시작이라고 단언했던 과거를 지나 전혀 다른 색채를 띠는 세계로 서슴없이 건너간다. 간절하게 지키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것들을 받아들이고, 원치 않았지만 품을 수밖에 없는 마음을 인정하면서 아이의 세계가 훅, 넓어지고 깊어지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사춘기를 맞이하는 아이들의 다른 태도와 속도, 반려동물과의 다정한 유대감과 눈물겨운 이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해도 사랑을 멈출 수 없는 가족이라는 관계의 속성, 설레는 비밀이 생기는 풋풋한 첫사랑의 순간이 간결하고 담담한 문체로 솔직담백하게 그려져 있다. 사랑과 성장에 대한 따뜻하고 싱그러운 은유가 가득한 이야기는 독자들로 하여금 자기만의 경험을 꺼내 보고 싶은 몽글몽글한 기분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지은이 : 라라 쉬츠작 Lara Schützsack
1981년에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포츠담 대학교에서 독문학, 비교 문학, 미국 문학 등을 공부한 뒤, 베를린의 독일 영화 텔레비전 아카데미에서 극본을 공부했다. 데뷔작 《이런 혹한까지》로 ‘울라 한 작가상’과 ‘올덴부르크 아동·청소년 도서상’을 받으며 언론의 극찬을 받았다. 라라 쉬츠작은 현재 독일 아동·청소년 문학계에서 가장 큰 기대를 받는 신인 작가이다.


옮긴이 : 전은경
한양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튀빙엔 대학교에서 고대 역사 및 고전 문헌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독일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커피우유와 소보로빵》《악어 도둑》《인터넷이 끊어진 날》《리스본행 야간열차》《꿈꾸는 책들의 도시》 외 많은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작은 완두콩 두 알
엄마와 아빠의 사춘기
괴짜 전학생
가족 여행 vs. 혼자 여행
아빠만의 다이어그램
특별한 예감
마지막 승객
마음의 밀물과 썰물
어쩌면 사랑은 색깔 같은 것일지도
우주에서 보낸 깜짝 선물
완벽한 우연
마음의 균열
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
모래라는 이름의 개
사춘기 클럽
한여름의 끝

엄마와 아빠의 사춘기
여름 방학과 열네 살 생일이 코앞이지만 구스타프의 하루에는 칙칙한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작은 완두콩 크기로 부풀어 오르며 따끔거리는 가슴 때문에 수심에 잠긴 것이다. 게다가 절친 아니나가 다른 친구와 어울리면서 남자아이에게 관심을 가지는 통에 불안감이 점점 커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족에게도 문제가 생겼다. 엄마와 아빠의 갈등이 예사롭지 않더니, 급기야 서로 떨어져서 각자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면서 매년 가던 가족 여행까지 일방적으로 취소시킨 것이다. 구스타프는 평화롭던 일상이 부서지고 흔들리면서 심상치 않은 변화가 오고 있음을 직감한다.

“둘이 심각한 것 같아?”
구스타프는 라모나 언니의 방 앞을 지나가다가 사라 언니의 목소리를 듣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냥 ‘중년의 위기’지, 뭐. 저 나이에는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야. 부모들이 일시적으로 앓는 뇌 질환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 정신적인 감기 말이야. 다 지나가게 되어 있어.”
(중략)
“그러니까 엄마랑 아빠의 사춘기구나.”
구스타프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집에서 불안과 불만, 기분 변화를 겪는 사람은 언니들만으로도 충분한데, 이제 엄마와 아빠마저 가세를 하다니! 물론 그동안 엄마와 아빠 사이가 마냥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지난 몇 주째 저녁마다 다퉜으니까. 마요르카에 사는 엄마의 절친인 마렌 아줌마가 많이 아프면서부터, 엄마는 인생을 ‘제대로’ 살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아빠와는 도무지 그렇게 살 수가 없다면서.
“에릭, 당신은 지나치게 경직된 데다 뻣뻣해. 나는 다시 춤을 추고 싶다고!”
급기야 엄마는 어제저녁에 이렇게 고함을 질렀다.
“그게 뭐가 어려워? 나랑 같이 춤추러 가.”
아빠가 다급하게 대꾸하자 엄마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춤을 춘다는 건 비유야! 당신은 유연하지가 못해. 나는 돌멩이와 사는 기분이란 말이야!”
구스타프는 계속 귀를 기울였지만, 아빠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엄마가 안방 문을 휙 열어젖히고 나가서 부엌문을 세차게 여닫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19~20쪽에서



특별한 예감
구스타프는 엄마와 아빠의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매번 실패한다. 결국 아빠는 몸만 이곳에 있고 정신은 다른 데 가 있는 ‘반에릭 상태’에 수시로 빠져들고, 엄마는 절친 마렌 아줌마를 간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혼자 마요르카로 떠난다. 언니들은 매일같이 비뚜름한 독설을 쏟아 내며 집 안 분위기를 흉흉하게 만들고, 치매를 앓는 늙은 개 모래의 병세는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마음 둘 곳 없던 구스타프는 모래와 함께 동네를 떠돌아다니다가 괴짜 전학생 문을 만나게 된다. 이상하게도 자꾸만 마음이 가고 신경이 쓰이는 문 때문에 구스타프는 내일이, 그 애와의 만남이 조금씩 기다려지기 시작한다.

“야, 너 벙어리야? 어이, 말 좀 해 봐!”
욘테와 엘리아스는 고함을 지르며 킥킥거리더니 번갈아 가면서 트림을 꺽꺽 했다. 그러면서 문이 앉은 좌석에 거의 닿을 듯이 윗몸을 통로 건너편으로 쭉 뻗고서 위협적으로 굴었다. 녀석들이 내뱉는 트림은 마치 늙은 개구리 떼가 꽥꽥거리는 소리와 똑같았다. 녀석들은 계속 트림을 해 대면서 숨이 넘어갈 듯이 웃었다. 문은 얼굴이 시뻘게진 채 이마를 유리창에 딱 붙이고 있었다.
그때 구스타프는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했다. 나중에야 자기가 왜 그랬는지 의아하게 여겼지만 정작 그 순간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먼저 등을 쭉 펴고 공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공기가 배 안에서 퍼지는 게 느껴지는 순간, 욘테와 엘리아스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서 번개처럼 빠르게 입을 열었다. 그때 터져 나온 것은 평범한 트림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사자가 포효하는 소리였다. 구스타프의 입에서 나온, 엄청나게 우렁찬 트림 소리가 버스 안에 퍼져 나갔다. 뒤이어 정적이 찾아왔다.
욘테와 엘리아스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구스타프를 빤히 노려보았다. 문도 이마를 유리창에서 떼고 구스타프를 바라보았다. 구스타프의 포효가 멋지다고 생각하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욘테와 엘리아스의 관심에서 벗어나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중략)
내릴 정류장이 가까워졌는지 문이 스케이트보드와 종이 상자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통로에 섰다.
“그럼 또 보자.”
문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까끌까끌했다. 미소를 짓자 앞니 사이의 벌어진 틈새가 눈에 들어왔다.
집에 도착한 구스타프는 건물 앞 계단에 앉아 머리를 무릎에 대고 생각에 잠겼다. 문이 미소 짓던 모습을, 그리고 앞니 사이의 틈새를 떠올렸다. 그 틈새로 휘파람 소리를 잘 내겠지?
‘그럼 또 보자.’라는 말은 일종의 약속이었을까? ‘그럼 또 보자.’는 ‘그럼 내일 또 만나.’와 비슷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문과 자기가 소소한 약속을 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 약속에 나가지는 않을 테지만! 완두콩과 마찬가지로, 남자아이들과의 약속은 종말의 시작이니까. 사춘기로 곧장 발을 들여놓는 거나 다름없었다.
바람에 실려 온 달콤한 꽃향기가 콧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따뜻하고 어두운 향기였다. 구스타프는 몸이 살짝 떨렸다. 불쾌한 떨림이 아니라 닭살이 살짝 이는 정도였다. 이번 여름에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날 거라는 예감 같았다. 뭔가가 자기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뭔지는 몰라도 느낄 수는 있었다. ―73~75쪽에서



어쩌면 사랑은 색깔 같은 것일지도
구스타프와 문은 둘만의 소소한 추억들을 쌓으며 친밀감과 유대감을 느낀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랐지만 누구보다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가족 간의 불화나 부모에 대한 걱정, 일상의 작은 고민거리를 나누는 사이에 구스타프의 열네 번째 생일이 다가온다. 하지만 문은 생일 파티에 오지 않고, 설상가상 몰래 연 파티를 부모님에게 딱 들키는 바람에 구스타프네 가족은 다시 한 번 폭풍 같은 갈등에 휘말린다.

구스타프는 여전히 기분이 안 좋았다. 리네는 왜 내가 문을 좋아한다고 생각할까? 그건 그렇고, 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이 시간에 여기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지 않았나? 아니, 그건 약속이 아니었던 걸까?
잠시 후, 마침내 문이 나타났다. 그러자 무척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구스타프의 몸 안에서 휘몰아치던 폭풍이 순식간에 멎어 버렸다. 분노도 희미해졌다. 귓전에서 쟁쟁거리며 울리던 ‘너, 걔한테 관심 있어? 아니면 좋아해?’ 하고 묻던 리네의 말도 사라져 버렸다. 그 말이 울릴 때마다 얼굴에 피어오르던 열기도 식었다.
신기하게도 문이 눈앞에 있으니까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어제보다 더 밝아 보이는 문의 눈동자 속 푸른빛이 구스타프의 몸을 자꾸만 간지럽게 만들었다.
(중략)
문이 스케이트보드에 고정시킨 종이 상자를 떼어 냈다. 둘은 보드 위에 나란히 앉았다. 서로의 티셔츠가 닿을 정도로 가까웠다. 부드러운 바람이 문의 온기와 체취를 구스타프에게로 날랐다. 선크림, 감자튀김, 마요네즈, 옐라 아줌마의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그 가운데 오로지 문에게서만 나는 냄새도 있었다.
“너는 나중에 결혼을 할 거야?”
구스타프가 묻자 문이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모르겠어, 너는?”
“나도 몰라. 내 생각에 결혼할 때는 사랑과 존경 말고 뭔가 아주 다른 걸 약속해야 할 것 같아. 사랑과 존경이라는 말을 들으면 겁부터 나거든. 언젠가 결혼한다면 상대방이 나에게 제일 맛있는 체리를 남겨 주면 좋겠어. 아니면 침대에서 벽 쪽에 눕게 해 주든가. 난 다른 쪽에서는 잠을 못 자거든.”
“그렇다면 나는 아스파라거스 머리 부분을 나에게 주면 좋겠어. 줄기의 빳빳한 섬유질이 이 사이에 끼는 건 아주 질색이니까.”
두 아이는 주거니 받거니 서로의 바람을 풀어놓았다.
“그리고 아침마다 코코아를 타 주겠다고 약속하면 좋을 것 같아.”
“또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약속했으면.”
“맞아.”
“아름다운 이야기도 들려주고, 또 무척 비밀스러운 장소를 나에게 보여 주면 좋겠어.”
(중략)
둘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나무를 바라봤다. 이제는 조금 전처럼 따뜻하지 않았다. 풀밭에서 들려오는 소음도 귀에 거슬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구스타프는 팔과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문에게서 조금 떨어져 앉았다. 둘의 티셔츠가 닿을까 봐 두려웠다.
구스타프는 아빠의 다이어그램을 떠올렸다. 사랑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엄마와 아빠도 분명 사랑해서 결혼한 걸 텐데. 그러니까 둘이 진공청소기와 친환경 고기 때문에 싸우기 훨씬 전에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그 사랑은 어디에 있는 거지? 허공으로 흩어졌거나 더는 맞지 않아서 조각조각 분해되었나? 아니면 여전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너무 잘 숨어 있어서 엄마와 아빠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걸까? 어쩌면 두 사람은 이제 사랑이 어떤 모습인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건지도.
어쩌면 사랑은 색깔 같은 걸지도 모른다. 구스타프는 언젠가 빨간색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색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각자 자기만의 빨간색을 본다는 것이다. 모든 색깔이 다 그렇다고 했다. 구스타프는 사랑도 이것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마 모든 사람이 사랑을 각자 다르게 느끼겠지. 그러니 두 사람이 같은 감정과 사랑을 느낀다는 건 작은 기적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116~122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