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출판사
도서정보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 (인류의 생존을 이끈 선택과 협력의 연대기)
앨리스 로버츠
2019. 12. 17
25,000원
588 페이지
9791156758020

“길들여진 종의 역사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미래의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2017 〈이코노미스트〉 올해의 책
우리 주변을 환기시키는 과학 스토리텔링의 걸작-브라이언 콕스(물리학자)


BBC가 가장 신뢰하는 과학자 앨리스 로버츠 교수가
고고학, 언어학, 역사학, 유전학, 지질학을 넘나들며 추적한 길들여진 종의 기원과 역사

수십만 년 동안 우리 조상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다 약 1만여 년 전 세계 곳곳에서 ‘신석기 혁명’이 일어났고, 인류는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바꿨다. 인류가 비로소 ‘인류답게’ 창의성과 사회성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나무에 매달린 열매를 따먹고, 들판에 뛰어다니는 동물을 사냥하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그들은 야생의 씨앗을 골라 밭에 심었고, 사냥과 농사를 도울 동물을 집으로 들였다. 인간을 도운 협력자 종 덕분에 인류는 혹독한 겨울을 버티며 생존했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우리와 협력한 동식물 없는 세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협력자 종들은 우리의 삶을 바꿔놓았다.


약 1만 1천 년 전 동아시아와 중동에서 처음 시작된 신석기 혁명은 현대 세계의 기초를 이루었다. 그야말로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발전이었다. 그로써 우리는 다른 종들과 서로 진화적 경로가 맞물린 공생 관계로 얽히게 되었고, 농경은 전 세계 인구를 어마어마하게 늘릴 힘을 만들었다. -19쪽

해부학, 진화론, 발생학을 연구하는 생물인류학자이자 해부학자인 앨리스 로버츠 교수는 신간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놀라운 야생의 과거를 지닌 열 가지 종의 오래된 역사를 발굴한다. “인류 역사를 새롭게 이해하고 전망하는 탁월한 입문서”라는 평가를 받은 이 책은 고고학, 언어학, 역사학, 유전학, 지질학을 넘나들며 ‘길들임’이라는 새로운 렌즈를 통해 야생의 씨앗과 들판의 동물이 인류에게 중요한 협력자가 되기까지의 경로를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펼쳐 놓는다.

프랑스 곤충학자이자 식물학자였던 파브르(장 앙리 파브르)는 “역사는 우리가 죽음을 맞는 전쟁터는 칭송해도 우리가 먹고사는 밭에 대해 말하는 것은 비웃는다. (…) 인간은 이리 어리석다”고 말했다. 우리는 밥과 빵, 닭고기와 소고기, 우유와 치즈를 먹으면서도 수많은 야생 동식물 중에 왜 쌀, 밀, 닭, 소 등이 인간의 주요 먹거리가 되었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사실은 너무 익숙해 그 기원과 역사를 묻고 따지는 일조차 어색하다. 하지만 인간이 야생에 흩뿌려진 씨앗을 경작하고, 들판을 떠돌던 동물을 길들인 덕에 인구 증가와 문명의 성장이 가능했다면? 감자의 경작이 인간 뇌 발달에 영향을 미쳤다면? 소의 가축화가 인간의 DNA 변화를 가져왔다면? 인간이 다른 동식물을 길들이기 위해 스스로를 길들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면? 인류와 길들여진 종이 어떻게 상호 의존해왔는지 추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진화의 꽤 많은 비밀을 밝혀낼 수 있다.
앨리스 로버츠는 인류가 길들인 많은 종 가운데 열 개의 종을 골랐다. 개, 밀, 소, 옥수수, 감자, 닭, 쌀, 말, 사과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인류’다. 1만여 년 전 마지막 빙하기에서부터 최첨단 과학 기술을 선보이는 21세기 유전자 연구소까지, 저자는 깊고 넓은 시공간을 가로지르면서도 ‘야생동식물이 언제, 어떻게 인류와 협력자가 되었고 그들이 인류의 생존과 성공에 어떻게 조력했을까’라는 주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밀고 나간다. 저자는 길들임의 기원과 경로를 추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식량 문제, 기후 변화, 줄어드는 야생 등 인간이 초래한 지구의 위기를 직시한다. “우리와 협력하게 된 종들만 돌봐서는 안 되며, 야생과 함께 번성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이번 세기의 과제다”라고 말하는 이 책이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인 이유다.

야생종에게 좋은 것은 우리에게도 좋다. 우리는 진화와 생존이라는 같은 게임을 하고 있다. 우리의 운명은 다른 종들의 운명과 불가분의 관계로 묶여 있다. -543쪽

앨리스 로버츠는 영국 버밍엄 대학교 ‘대중의 과학 참여’ 교수이자 BBC에서 다수의 과학 교양 프로그램을 제작, 진행한 영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과학자이기도 하다. 2018년 BBC와 진행한 다큐멘터리 〈과학은 나를 완벽하게 만들 수 있을까〉는 동물들의 우수한 신체 특성들을 자신의 몸에 적용해 ‘앨리스 2.0’이라는 인체 모형을 제작한 프로젝트로 화제를 낳았다.
길들임의 기원과 경로는 2백 년 넘게 학계를 사로잡아온 이슈다. 19세기 과학자 찰스 다윈은 “길들여진 종이 굉장히 다양하다는 것은 별개의 야생종, 즉 조상이 여럿 있었다는 뜻이다”라고 생각했고, 세계 최고의 식물 사냥꾼이라 불리는 20세기 식물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는 종이 독자적인 한 장소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최근 과학 기술의 진보로 고고학과 유전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길들여진 종의 기원을 둘러싸고 해마다 새로운 가설들이 경쟁적으로 등장한다. 앨리스 로버츠는 이 책에서 역사적 자료와 여러 과학적 가설들 속에서 ‘진짜’ 이야기를 찾아내기 위해 하나하나씩 검증해나간다.
현장에서 직접 보고, 겪고, 들은 것을 마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전하는 저자의 수려한 필력도 이 책의 묘미다. 신석기 수렵채집인들이 어떻게 감자를 예비 식량으로 활용했는지를 탐구하기 위해 탄자니아의 수렵채집인 집단 하드자족과 생활하고, 소의 조상인 오록스 발자국이 발견된 폼비 해변의 지질 상태와 소의 흔적을 확인하기 위해 사륜구동을 타고 모래언덕을 달린다. 인간과 말이 어떻게 서로 의사소통하는지 경험하기 위해 칠레의 말 농장에서 ‘조리타’라는 말을 만나고 닭의 질병 저항성을 높이는 유전자 변형 기술을 연구하는 에든버러 로슬린 연구소를 찾아 유전자 변형을 둘러싼 논란을 재점검한다.
한편 이 책은 찰스 다윈과 니콜라이 바빌로프를 필두로, 19세기부터 21세기까지 책상머리를 벗어나 들판, 산, 바다, 동굴을 누비며 동식물의 놀라운 기원과 진화를 탐구해온 과학자들의 눈부신 발자취,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 유전자 변형 기술 등 최신 과학 기법을 두루 소개하고 있어 ‘생물학 교과서’로도 손색이 없다.

지은이: 앨리스 로버츠 Alice Roberts

생물인류학자해부학자. 영국 카디프 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고 브리스틀 의과대학교에서 해부학을 가르쳤다. 현재 영국 버밍엄 대학교 대중의 과학 참여Public Engagement with Science교수이자 영국과학협회British Science Association 협회장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고대 인간의 질병, 해부학, 진화론, 발생학, 인간과 자연의 관계 등이다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방송인으로도 활약하는, 영국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과학자 중 한 명이다. BBC 과학 교양 프로그램 과학이 나를 완벽하게 만들 수 있을까Can Science Make Me Perfect?,인류의 위대한 여행The Incredible Human Journey, 우리의 기원Origins of Us, 해안과 켈트인Coast and the Celts등 여러 획기적인 시리즈물 제작에 참여하고 진행했다. 우리 몸 알아야 산다, 인류의 위대한 여행, 인체 완전판등 다수의 대중과학서를 썼으며, 최근작 뇌를 비롯한 신체기관에 숨겨진 진화의 비밀은 웰컴북프라이즈 최종 후보에 올랐다. www.alice-roberts.co.uk

옮긴이: 김명주 

성균관대학교 생물학과,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호모 데우스인공생명의 탄생도덕의 궤적우리 몸 연대기인류세의 모험과학과 종교1만 년의 폭발』,다윈 평전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등이 있다.

추천의 말 7
서문 11

1. 개
숲속의 늑대 29 │ 빙하기의 먼 과거 속으로 35 │ 시베리아 두개골의 비밀 39 │ 1만 년 앞당겨진 개의 기원 45 │ 개의 고향을 찾아서 48 │ 누가 누구를 길들였을까 54 │ 친근한 여우와 불가사의한 법칙 60 │ 개의 놀라운 다양성 66 │ 신석기 개의 식생활 변화 74 │ 잡종화와 야생의 순수한 종 78

2. 밀
땅속에 남은 식물의 유령 91 │ 바닷가재의 고고학적 발견 92 │ 야생의 먹을거리에서 기르는 먹을거리로 97 │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낫 103 │ 인간을 매혹시킨 밀의 두 가지 형질 111 │ 밀의 기원과 연결된 세계 116 │ 인간은 왜 풀을 먹게 되었을까 123 │ 빙하기 이후 베이비 붐과 사회 변화 129 │ 레반트에서 솔런트해협으로 135 │ 중석기 식탁에 올라온 새로운 음식 140

3. 소
뿔 긴 짐승에 관한 수수께끼 147 │ 폼비 해변에서 발견된 발자국 149 │ 도축의 증거 156 │ 영양 젖과 관리되지 않은 치아의 위대함 161 │ 고대 토기에서 발견한 가공식품의 흔적 168 │ 소의 가축화와 이산 172 │ 소는 왜 점점 작아졌을까 177 │ 인간에 의한 이동, 인간에 맞춤한 교배 181 │ 오록스 부활 프로젝트 187

4. 옥수수
식물계의 ‘코즈모폴리턴’ 194 │ 아메리카 대륙의 옥수수, 그리고 동식물 교환 197 │ 옥수수의 출신을 둘러싼 기록 203 │ 잘 알려지지 않은 한 모험가의 항해 211 │ 유전학이 밝힌 옥수수의 번성과 확산 217 │ 옥수수의 조상을 찾아서 222 │ 옥수수는 어떻게 재배종이 되었을까 227 │ 현지 적응을 위한 옥수수의 세 가지 전략 233

5. 감자
고대 감자 239 │ 파묻힌 보물 245 │ 야생 감자가 인간 뇌에 미친 영향 251 │ 감자는 언제, 어디서 작물종이 되었을까 256 │ 재화가 된 감자 261 │ 긴 낮과 감자의 진화 264 │ 감자의 화려한 유럽 진출기 269 │ 인간의 통제가 불러온 비극 275 │ 우리는 다양한 감자를 만날 수 있을까 281

6. 닭
‘내일의 닭’ 대회와 대규모 육종 시장 289 │ 로슬린 연구소의 닭 유전자 전문가들 296 │ 유전자 변형 기술과 질병 저항성 299 │ 유전자 변형을 둘러싼 논란 308 │ 닭의 기원을 찾아서 317 │ 가축 닭의 인기가 상승한 이유 323 │ 포동포동 유전자의 확산과 모성본능 상실 327

7. 쌀
세계적인 작물 333 │ 황금쌀, 기회일까 위협일까 336 │ 거대 괴물의 창조 339 │ 유전자 변형 작물에 관한 세 가지 우려 346 │ 보잘것없던 풀이 주식이 되기까지 353 │ 신석기 사람들이 긴 겨울을 버티는 방법 360 │ 벼의 행진 364 │ 쌀 재배와 요리의 진화 369 │ 삶을 바꾸고 생명을 구하는 과학이란 375

8. 말
‘조리타’라 불리는 말 381 │ 말은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했을까 386 │ 광범위한 숲과 말의 번성 395 │ 인간이 처음 말을 탔을 때 401 │ 보타이 유적에서 발견한 말의 흔적 406 │ 고대 스텝 유목민의 확산을 돕다 411 │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야생말 417 │ 야생 암말의 미토콘드리아 DNA 424 │ 표범 패턴 반점과 말의 표정 429

9. 사과
축배를 드세 437 │ 중앙아시아의 천국 같은 산 옆구리에서 440 │ 사과의 고고학 447 │ 기원전 4000년대 정원사들이 발명한 클로닝 451 │ 따뜻한 기후가 낳은 다양한 품종의 사과 456 │ 길들여진 사과, 길들여지지 않은 사과 461

10. 인류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469 │ 아프리카 기원설과 교잡의 증거 474 │ ‘순혈’ 사피엔스는 없다 481 │ DNA에 새겨진 확산과 이주의 기억 485 │ 햇빛과 돌연변이 유전자 488 │ 교잡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것과 잃은 것 496 │ 곳곳에서 일어난 종 길들이기 499 │ 길들여진 종이 바꾼 인류 역사의 경로 505 │ 우유, 그리고 길들여진 DNA 513 │ 인간의 얼굴은 왜 달라졌을까 517 │ 사회적 관용과 진화적 성공 523 │ 또 다른 ‘녹색혁명’은 필요한가 525 │ 종은 변한다 531 │ 더 큰 야생을 위하여 537

감사의 말 549
참고문헌 551
찾아보기 567

우리에게 친숙한 종들의 긴 역사를 파헤치다보면 이런 동식물들이 인류의 생존과 성공에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게 된다. 이 생물들은 우리와 협력했다. 그 결과 지금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으며, 우리의 삶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바꾸었다. 이제 과거를 파헤쳐 들어가며 그들의 놀라운 기원을 추적해보려 한다. 이러한 추적 과정에서, 우리에게 길들여져 우리 세계의 구성원이 되면서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변했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 pp. 11~12

두 종의 성공적인 동맹은 양측의 타고난 성향에 의존했을 것이다. 서로에게 의지가 있어야 했다. 인간도 개도 사회적 동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동맹을 맺지 않은 사회적 동물도 많으니까. 미어캣, 원숭이, 쥐는 끝내 개처럼 가축화되지 않았다. 늑대의 행동에는 인간과의 유대 형성에 밑거름이 되었을 만한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늑대들 가까이로 가보았다.
--- pp. 55~56

빙하기 이후로 가축 개의 화석 증거는 유라시아 전역에 나타난다. 8천 년 전 무렵부터는 서유럽에서부터 동아시아에 이르는 광범위한 장소에서 개 화석이 발견된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고대 개와 현대 개 에서 얻은 최신 유전자 데이터는 단일 기원을 암시하므로 이 모든 홀로세의 개들이 각 지역의 늑대 개체군에서 따로 가축화되었을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오히려 개는 이주하는 인간을 따라왔거나, 아니면 인간이 다른 지역에서 데려온 것이 틀림없다.
--- p. 74

유전학 연구 덕분에 개의 진화사를 이해할 수 있는 놀라운 기회가 생겼다. 순종적인 성격을 골라내기 위한 선택 육종은 다면발현을 통 해 엄청나게 다양한 형질을 생산했고, 현대 품종에서는 특정 임무를 수행하기에 적합한 특이한 특징들이 선택되었다.
--- p. 82

초기 농부들은 밀을 재배하기 시작했을 때 그 옆에서 특정 식물들이 잘 자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잡초였다. 그리고 그런 잡초들 중 몇몇도 결국은 작물화되었다. 야생 호밀과 귀리는 둘 다 밀밭과 보리밭에서 흔한 잡초였다. 바빌로프는 겨울 동안, 혹은 열악한 토질이나 혹독한 기후 조건에서 호밀이 밀을 대체하면서 원래는 잡초였던 호밀이 작물로서 재배되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환경에서 호밀은 원래의 작물보다 더 강했다.
--- pp. 101~102

빙하기 이후의 베이비붐은 근동 지역의 호모 사피엔스 집단에 찾아온 유일한 변화가 아니었다. 사회 자체도 변하고 있었다. 이를 보여주는 가장 인상적인 증거를 메소포타미아 고지대의 터키 남부에 있는 놀라운 고고학 유적인 괴베클리 테페에서 확인할 수 있다.
--- p. 129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동물은 멸종했지만 일부 계통이 살아남았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오록스의 후손들은 인간의 협력자가 되었다. 설령 발크베흐의 오록스들이 유럽 북서쪽 끝의 고대 숑어르강의 강둑에서 최후를 맞았다 해도, 동쪽에 살던 그 사촌들 중 일부는 이미 가축화되어 있었다. 그것은 중석기 사냥꾼들이 오록스를 그토록 잡고 싶어 했던 이유인 고기와 가죽 때문만이 아니라, 젖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인간과 소의 관계가 변하고 있었다.
--- p. 161

20세기 후반에 인공수정이 도입되면서 소 육종은 더 전문화되었다. 일부 소들은 우유 생산을 극대화하기 위해 개량되었는데, 한 예가 현재 전 세계에 가장 많은 홀스타인 품종이다. 어떤 품종들은 육중한 근육을 키우도록 육종되었다. 어떤 소들은 싱그러운 초록 들판에서부터 사막까지 특정 환경에 잘 맞도록 육종되었다. 하지만 생산성만이 목적은 아니었다. 미적 특징도 선택되었다. 이렇게 해서 놀랍도록 다양한 소가 출현했다. 개의 다양성만큼 놀랍지는 않지만, 그렇다 해도 굉장하다.
--- p. 185

옥수수는 식물계의 ‘코즈모폴리턴’인 듯하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곳에 자라는 곡물이기 때문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옥수수는 남위 40도인 칠레 남부의 밭에서부터 북위 50도인 캐나다에서까지 자란다. 또한 해발 3400미터인 안데스산맥에서부터 저지대와 카리브해안까지 번성한다.
--- p. 194

옥수수가 전 세계로 확산한 속도는 놀랍도록 빨랐다. 유전자분석과 분자시계는 옥수수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약 9천 년 전에 작물화되었음을 암시한다. 옥수수가 이 지역에 8500년 동안 머무르다가 지난 5백 년 사이 전 세계로 퍼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옥수수의 확산이 이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 p. 221

정기적인 육식이 우리 조상들의 뇌를 더 크게 진화시키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했다고들 하지만, 최근 몇몇 연구자들이 식물 식량 , 특히 덩이줄기처럼 녹말이 풍부한 식물 식량의 역할이 그동안 간과되었음을 주장하고 나섰다. 하나는 문화와 관련이 있고 하나는 유전자와 관련이 있는 두 가지 중요한 발전이 녹말에 묶인 에너지를 꺼내 쓰는 데 엄청난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 pp. 254~255

재배하는 감자들 사이에 혹시 변이가 있다면 일부는 저항성을 가져서 병원체의 공격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있다. 하지만 변이가 거의 없는 경우라면 병원체의 기세는 그야말로 파죽지세다. 한 작물이 통째로 날아가버린다. 심한 경우에는 한 세기분의 작물이 날아가기도 한다. 1840년대에 아일랜드에 바로 그런 일이 발생했다.
--- p. 278

19세기 후반의 닭 육종가들은 자신들의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특정 형질을 가진 닭을 골라 교배시킴으로써 잡종을 창조했고, 그 과정에서 유럽 닭의 유전적 역사를 뒤섞어놓았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복잡하게 뒤엉킨 실타래를 푸는 것은 가능하다. 살아 있는 닭 의 DNA에 그 역사가 아직 파묻혀 있기 때문이다.
--- p. 324

동물의 대사뿐 아니라 행동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호르몬은 가축 닭의 행동에서 필수적인 한 측면에 기여했다. 바로 모성 본능의 완전한 상실이다. 이는 야생에서라면 분명 생존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알을 낳은 뒤 알을 두고 가버리는 암탉은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로 전달할 확률이 낮다. 하지만 가축 닭에서는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알 낳기를 멈추고 알을 품는 암탉은 달걀 생산에 득이 될 리 없다.
--- p. 329

벼의 작물화가 시작된 시점은 중요하다. 같은 시점에 아시아의 반대편 끝에서는 사람들이 그곳에서 자라는 야생 곡류?호밀, 보리, 귀리, 밀?를 경작하기 시작했다. 1만 1천 년 전~8천 년 전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자라던 그런 곡류들은 주곡이 되었고, 조와 쌀이 극동 지역에서 그랬듯이 야생풀에서 작물로 변모했다.
--- p. 360

하지만 약 1만 2900년 전, 춥고 건조한 시기가 1천 년 이상 지속된 신드리아스기가 왔다. 야생 식량의 감소에 직면한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자원을 통제하려 했을 테고, 이미 의존하게 된 야생풀을 경작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신드리아스기 직전에 인구가 증가해 있었기에, 기후가 악화하기 시작했을 때 자원 압박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서아시아의 밀과 동아시아의 쌀, 그리고 아마도 중앙아메리카의 옥수수까지, 모두 신드리아스기를 계기로 인류와 손을 잡고 수백 년 또는 수천 년 동안 이어지는 동맹을 맺었으리라 생각해 볼 수 있다. 의존할 수 있는 자원인 곡류는 식생활에서 더 중요해졌고, 결국에는 주곡이 되었다. 경작은 그다음이었을 것이다.
--- p. 361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우리 종, 호모 사피엔스는 적어도 4만 년 전에는 유럽과 시베리아 모두로 확산했다. 하지만 말은 그보다 훨씬 전인 수십만 년 전부터 초기 인류 집단들에 잡아먹혔다. 서식스 박스그로브에서 발견된 50만 년 전의 말 어깨뼈에는 창에 손상된 흔적이 있는데, 이는 초기 인류, 아마도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가 말을 사냥하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마지막 빙하기 의 정점에 북유럽 서부의 말 개체군은 차가운 기후와 구석기 사냥꾼들의 치명적인 창 양면의 공격으로 그 수가 급감했을 것이다.
--- pp. 395~396

말을 탐으로써 일어난 진전은 말의 가축화만이 아니었다. 기마를 통해 인간은 다른 동물들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이 걸어서 다니고 개의 도움을 받을 때 2백 마리의 양을 기를 수 있다면, 말을 타고 개의 도움을 받는 경우엔 5백 마리를 통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훨씬 더 넓은 지역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영역 확장은 분 명 목축인들 사이에 무력 충돌을 유발했을 것이고, 따라서 동맹을 맺거나 선물을 주는 것이 중요해졌을 것이다.
--- p. 412

다른 가축 종과 마찬가지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선택 육종은 특정 형질을 촉진하는 반면 다른 형질들은 억제했다. 말은 개, 소, 닭에서와 마찬가지로 엄격한 육종 관리 체제에 따른 강력한 인위선택에 의해 지난 2백 년 동안 오늘날의 다양한 현대 품종이 창조되었다. 하지만 선택은 먼 과거에도 일어나고 있었다. 속도와 민첩성을 갖춘 작은 말들은 가벼운 전차를 끌도록 선택된, 청동기시대의 발명품이다.
--- p. 429

“도시 주변의 모든 곳에서 산기슭과 숲의 광대한 지역을 덮고 있는 야생 사과를 볼 수 있다”고 보고한 바빌로프는 야생 사과나무 중 일부의 열매가 재배 품종과 비슷한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게다가 그것들은 유럽의 작고 신맛이 나는 야생 꽃사과와 달리 통통하고 향미로 가득했다.
--- p. 442

말루스 시에베르시이는 여러 면에서 독특한 과일나무다. 꽃사과로 총칭되는 야생 사과의 다른 종들은 보통 작고 신맛의 열매를 맺는 경 향이 있다. ‘꽃사과crabapple’라는 명칭의 기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 데, 그 단어의 스코틀랜드어 형태인 ‘scrabbe’는 단순히 ‘야생 사과’를 뜻하는 노르웨이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암시하지만, ‘ crab’은 ‘시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꽃사과는 단독으로, 또는 소규모로 자라는 경향이 있다. 어떤 것도 톈산의 말루스 시에베르시이처럼 울창한 숲을 이루지 않는다.
--- p. 444

사과의 두 번째 ‘디아스포라’는 온대 전역의 다양한 기후에 적합한 엄청나게 다양한 품종의 사과를 낳았다. 북아메리카에서 사과가 성공한 것은 ‘야생으로의 회귀’가 수반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야생으로 돌아간 사과는 씨에서 묘목이 자라났고, 그런 다음에 혹독한 겨울을 나야 하는 새로운 서식지에서 발육이 어려운 개체들이 자연선택에 의해 제거되었다.
--- pp. 450~451

하지만 우리의 현생인류 조상들과 엮인 것은 네안데르탈인만이 아니었다. 동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태평양 남서쪽 멜라네시아의 섬들에 사는 현대인의 유전체에서 또 다른 구인류 집단과의 교잡 흔적이 발견된다. 멜라네시아인 유전체 DNA 중 3~6퍼센트는 또 다른 유형의 조상에게서 온 것이다. 그 조상은 시베리아의 데니소바 동굴에서 나온 손가락 뼈 한 점과 치아 두 점으로만 알려져 있는 종이다.
--- pp. 483~484

비타민 D 수치와 햇빛 노출을 추적한 연구들은 예상치 못한 흥미로운 결과를 내놓았다. 예측한 대로 햇빛에 대한 노출이 증가할수록 (어느 정도까지는) 비타민 D 수치가 증가했다. 옷으로 몸을 덮으면 혈중 비타민 농도가 낮아지는 것도 예상대로였다. 하지만 얇게 바른 자외선 차단제가 일광 화상은 막아줘도 비타민 D 생산을 줄이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것은 검은 피부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뜻밖에도, 같은 양의 햇빛에 노출되었을 때 비타민 D 생산이 촉진되는 정도는 피부가 검은 사람들과 흰 사람들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 p. 492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개념에 결정타를 날리는 대목은 우리가 협력자로 모집하는 데 성공한 종이 비교적 적다는 사실이다. 자연 저술가 마이클 폴란이 아주 잘 표현했듯이, 많은 종은 “빠지기로 했다.” 한 종이 성공적인 협력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회가 왔을 때 인간에게 길들여지기 쉬운 특정 자질들을 가져야만 했다. 늑대의 호기심, 암말의 순종적인 성격, 비탈립성 이삭 가지를 발달시킬 수 있는 풀의 잠재력, 중앙아시아 야생 사과의 탐스러움이 없었다면, 우리는 개, 말, 밀, 재배종 사과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 p. 505

우리가 생물 종에 너무 많은 제약을 가할 경우, 물리적 환경 변화뿐 아니라 이례적인 병원체의 공격 등, 미래에 변화가 닥쳤을 때 종이 적응할 수 있는 잠재력은 심각하게 제한된다.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할 수 있는지를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이 잘 보여준다. 다행히 우리가 길들인 종들에는 야생의 친척들이 있고, 이들은 유전자형과 표현형의 다양성을 보유한 거대한 변이 도서관이다.
--- pp. 542~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