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출판사
도서정보
염증에 걸린 마음 (우울증에 대한 참신하고 혁명적인 접근)
에드워드 불모어
2020. 05. 12
18,000원
328페이지
9791156758211

“우울증 약이 잘 듣지 않는다고요? 
그렇다면 당신의 우울증은 염증 때문일 겁니다.”
세계적인 신경면역학자이자 케임브리지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 에드워드 불모어가 밝힌 
염증과 우울증에 관한 혁신적 과학

30년 전 영국 런던의 한 진료실, 류머티즘성관절염에 걸린 50대 후반의 P부인이 의사를 찾았다. P부인은 여러 해 동안 관절염을 앓고 있었는데 손의 관절들이 부어올라 통증을 일으켰고, 그로 인해 손 모양도 뒤틀려 있었다. 무릎에서는 콜라겐과 뼈가 파괴되어 관절이 더 이상 부드럽게 움직이지 않아서 걷기도 무척 힘들었다. 의사는 표준적인 검사표에 없는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P부인의 마음 상태와 기분에 관한 질문이었다. 그러자 P부인은 자신의 에너지 수준이 매우 낮고, 이제 어떤 일에도 기쁨을 느끼지 못하며, 수면 패턴도 엉망이고, 늘 비관적인 생각과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고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한마디로 P부인은 우울증에 걸려 있었다. 

의사는 스스로가 대견했다. P부인의 증상을 더욱 자세히 파고들어 작은 의학적 발견을 했다고 생각했다. 부인은 류머티즘성관절염 때문에 진료실에 왔지만 거기에 우울장애라는 진단까지 추가했으니 말이다. 의사는 선배에게 이 중요한 소식을 알리려고 서둘러 달려갔다. “P부인은 관절염만 있는 게 아니라 우울증도 있습니다.” 하지만 선배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우울증? 글쎄, 자네가 그 부인이라면 우울증에 안 걸리겠나?”(28~29쪽) 

당시 의학계와 과학계의 통념에 따라 P부인의 우울증은 제대로 진단되지 못했고 그에 대한 적절한 치료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에 따르면 우울증에 해당하는 모든 증상이 있더라도 다른 신체 질병이 있는 경우 우울증으로 진단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비단 30년 전의 독특한 사례가 아니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에 근거해 몸과 마음을 별개의 것으로 여기는 서구 의학 교육을 받은 의사들에게 의학은 몸의 병만 다루고, 마음의 문제는 정신의학과 심리학에서 다뤄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를 근거로 환자들은 몸과 마음이 동시에 아프더라도 각기 다른 병원을 찾아가, 다른 교육을 받은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왔다. 

이런 인식에 근거해 우리는 오랜 시간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 문제를 그저 ‘마음’의 문제로 다뤄왔다. 그러다 30년 전 ‘뇌 속에 세로토닌 호르몬이 모자라면 우울증에 걸린다’는 뇌에 기반한 정신의학의 핵심 가설이 등장하면서 우울증 치료제인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가 개발되었다. 프로작이라는 대표 상품으로 잘 알려진 항우울제는 그렇게 30년간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하며 많은 사람에게 효과를 거두었다. 우울증을 이해하는 방식이 바뀌면서 개발된 획기적인 치료제는 우울증의 종말을 예고하는 듯했다. 

하지만 모두가 아는 것처럼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30년 전 개발된 항우울제는 모든 환자에게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지금도 우울증 환자의 3분의 1은 항우울제 효과를 보지 못한 채 우울증과 힘겹게 싸우고 있다. 왜 이들에게는 항우울제가 듣지 않을까? 왜 그동안 우울증이나 다른 정신장애를 치료하는 새로운 방법은 하나도 추가되지 않았을까? 그간의 우울증 연구가 놓치고 있던 것이 무엇일까?

세계적인 신경면역학자이자 케임브리지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인 에드워드 불모어(Edward Bullmore)는 우울증의 원인이 ‘염증’에 있다고 지목한다. 몸의 염증이 뇌에까지 영향을 미쳐 우울증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1990년대에 처음 도입한 fMRI 연구에 참여하며 인간의 뇌 지도, 커넥톰(connectome)을 그리는 데 공헌해온 신경과학자이자 정신의학 전문가인 그는 누구보다 과학적 근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구자다. 신경과학과 정신의학 연구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과학자 중 한 사람인 그는 신경면역학과 면역정신의학이라는 최신 과학을 기초로 염증이 우울증의 원인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불모어 교수는 면역학, 신경과학, 정신의학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이 새로운 과학으로 얻은 연구 결과가 정신 건강 분야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리라고 확신했고 그 내용을 《염증에 걸린 마음(원제: The Inflamed Mind, 심심 刊)》에 담았다.

 이 책은 면역계와 신경계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어떻게 신체 염증이 우울증 같은 정신적 증상을 초래하는지, 새로운 치료법은 등장할 것인지에 답하는 최초의 대중 교양서다. WHO가 앞으로 20년 동안 전 세계에 가장 많은 환자가 생길 것으로 예측한 단일 질환인 우울증은 세계 인구의 7퍼센트인 3억 5000만 명 이상이 앓고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한 질병으로 자리 잡았다. 우울증 환자를 비롯해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 더 나아가 ‘우울증’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움츠러들고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는 대다수의 사람에게 이 책은 정신질환을 이해하는 방식과 그 치료법에 혁명적 변화를 예고한다.

에드워드 불모어Edward Bullmore
세계적인 신경과학자이자 케임브리지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 면역정신의학자다. fMRI 연구의 선구자로 인간의 뇌 지도를 그리는 데 공헌해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으며 신경과학과 정신의학연구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과학자 중 한 사람이다. 옥스퍼드대학교와 세인트바솔로뮤병원에서 임상의학을 공부하고, 세인트 조지병원과 모즐리병원에서 정신의학을 공부했다. 킹스칼리지 정신의학연구소에서 임상 과학자로 훈련했으며 1999년부터 지금까지 케임브리지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로 일해왔다. 현재 케임브리지 울프슨 뇌 영상 센터 책임자, 케임브리지대학교 정신의학과 학과장을 맡고 있다. 더불어 우울증 치료를 위한 새로운 항염증제 개발 분야의 학술-산업 파트너십을 이끌고 있다.
신경과학을 기초로 정신장애를 이해하고 치료하는 데 헌신하고 있으며, 신경면역학 관점에서 우울증을 비롯한 기분장애와 알츠하이머병, 치매 등의 면역 메커니즘과 치료법을 연구 중이다. 500편 이상의 과학 논문을 발표했으며 30년간 연구해온 뇌과학과 정신의학을 바탕으로 우울증과 염증의 관계를 밝힌 최초의 대중 교양서 《염증에 걸린 마음》을 출간했다. 과학계와 언론은 물론 독자들의 대대적인 호평을 받은 이 책은 “우울증의 원인을 세로토닌 불균형이 아닌 염증에서 찾는 흥미로운 이론을 제시하며 새로운 생각을 자극한다”는 찬사를 받았다.

추천의 말
서문 | 새로운 과학이 가져올 놀라운 변화

1장 / 과감히 다르게 생각하기
치과 치료가 불러온 우울감 | 신경면역학과 면역정신의학 | 염증이 생긴 마음은 어떤 모습일까 | 면역계가 차지할 치료의 미래 

2장 / 면역계의 작동 방식
염증과 감염 | 위치, 위치, 위치 | 면역세포들의 의사소통 방식 | 면역계의 신속한 반격과 학습 | 면역계의 이면, 자가면역 

3장 / 너무 뻔해서 오히려 눈에 띄지 않는 것
아픈 건 우울한 일 | 코기토, 신, 기계 | 긴 그림자 | P부인만의 일이 아니다 | 사이토카인을 잡아라 | 데카르트주의의 맹점 

4장 / 데카르트 이후의 우울증
흑담즙에서 주요우울장애로 | 우울증을 둘러싼 낙인과 침묵의 문화 | 슈퍼 정신분석가, 프로이트 | 춤을 추는 요양소 환자들 | 항우울제의 황금시대 | 세로토닌의 희비극 | 우울증을 진단할 생체지표가 없다

5장 / ‘어떻게’라는 커다란 물음표
비범한 주장에는 비범한 증거가 필요하다 | 변하지 않는 사실 | 원인이 먼저다 | 뇌 속의 베를린장벽 | 염증이 생긴 뇌 

6장 / 왜 염증과 우울증일까
고통의 원인을 찾아서 | 스트레스라는 빨간불 | 스트레스와 염증, 우울증의 악순환 | 결국, 답은 언제나 다윈일 수밖에 | 사바나의 생존 이야기 

7장 / 혁명은 이미 시작되었다
의학계의 분리 정책이 불러온 문제들 | 우울증에서 벗어날 새로운 방법을 찾아서 | 신약 개발과 시장실패 | 염증성 우울증의 치료약을 찾아서 | 알츠하이머병 치료에 진전이 없는 이유 | 조현병과 자가중독

감사의 말 | 면책 고지 | 후주 | 그림 목록 

우리는 아직도 우울증에 대해 자신 있고 일관적인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우울증은 순전히 마음의 문제인가? 그것은 ‘단지’ 매사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의 문제인 걸까? 그렇다면 왜 뇌세포에 작용하는 약들로 우울증을 치료할까? 그렇다면 그건 ‘정말’ 뇌 속의 문제이기만 한 걸까? 우리는 우울증에 걸린 친구나 가족에게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잘 모른다. 정작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우리 자신일 때는 그 사실을 밝히는 게 수치스럽기도 하다.(27쪽)

나는 내가 대견했다. P부인의 증상을 더욱 자세히 파고들어 작은 의학적 발견을 했다고 생각했다. 부인은 류머티즘성관절염 때문에 나를 만나러 왔지만 나는 거기에 우울장애라는 진단까지 추가했으니까. 나는 선배 의사에게 이 중요한 소식을 알리려고 서둘러 달려갔다. “P부인은 관절염만 있는 게 아니라 우울증도 있습니다.” 내 예리한 진단에 대한 그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우울증? 글쎄, 자네가 그 부인이라면 우울증에 안 걸리겠나?” (29쪽)

지금은 내가 의대에서 배웠던 것 중 틀린 내용이 많았다는 게 분명해졌다. 혈뇌장벽이 뇌와 몸 사이의 모든 면역학적 혼선을 막아내지는 못한다는 사실이 명백히 밝혀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사이토카인cytokine이라 불리는 혈액 속의 염증 단백질이 혈뇌장벽을 뚫고 몸에서 뇌와 마음으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사이토카인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사이토카인을 처음 들어보는 독자라면 혈액을 타고 흐르면서 뇌를 포함한 몸 전체에 강력한 염증반응을 일으키는 호르몬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37쪽)

우리 몸의 염증 상태, 즉 면역계가 위협을 각성하는 수준은 우리의 기분과 우리가 생각하는 내용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좀 더 과학적으로 말하자면 몸의 염증은 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이는 다시 우리가 우울증으로 알고 있는 기분과 인지, 행동의 변화를 불러온다. (52쪽)

우리가 아무리 데카르트의 회의론을 칭송하고 인간의 몸을 기계로 본 그의 혁명적 시각을 높이 산다 해도, 그는 우리에게 과학적 의학이 아직도 풀지 못한 난제 하나를 남겼다. 데카르트주의 의학에서 마음과 몸은 같은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종류의 것인데, 우리는 여전히 그 둘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모른다. 몸은 의사들의 영역이며, 물리학을 비롯한 과학으로 알 수 있다. 정신은 정신의학자나 심리학자의 영역이며 자기성찰적 추측 혹은 행동을 기반으로 한 추론으로만 알 수 있다. 환자들은 이원론에 의해 분리된 몸과 마음의 문제에 관해, 글자 그대로 다른 문을 통과하고, 다른 병원을 찾아가, 다른 교육을 받은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다. (94쪽)

오늘날에는 오히려 염증이나 자가면역 때문에 발병하거나 합병증이 생긴 것이 아닌 질병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또한 우울증과 피로, 불안을 비롯한 정신적 증상과 연관되지 않는 질병을 찾는 것 역시 똑같이 어렵다. 관상동맥에 생긴 염증 때문에 심장마비가 일어난 사람은 이후 몇 주 동안 우울 증상이 나타날 위험성이 50퍼센트, 주요 우울 삽화major depressive episode를 겪을 확률은 20퍼센트에 달한다. 장기간 심장질환을 앓은 사람도 불안증과 우울증을 겪는 비율이 상당히 증가한다. 그리고 우울증은 관상동맥질환의 위험 요인이자 심장마비에서 회복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위험 요인이기도 하다. 당뇨병이 있다면 우울증에 걸릴 위험은 최소 2배 높아진다. 다발경화증이 있는 사람은 주요 우울 삽화가 생길 확률이 3배 높고, 자살 위험성도 커진다. 이런 목록은 계속 이어진다. HIV, 암, 뇌졸중, 만성기관지염 등 어떤 병이든 댈 수 있다.(101~102쪽)

내가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우리가 우울증에 대해 갖고 있던 해법, 그러니까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와 심리치료는 오늘날에도 우리가 가진 치료법의 거의 전부다. 두 방법 모두 평균적으로 그럭저럭 효과가 있고, 일부 환자에게는 눈에 띄게 더 좋은 효과를 낸다. 그럭저럭 괜찮은 방법들인 것이다. 그러나 프로작이라는 태양이 발전의 지평선 저편으로 넘어간 이후로, 우울증이나 다른 정신장애에 대한 중요한 새 치료법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156쪽)

간단한 혈액검사로 측정하는 포도당 역시 진성당뇨병을 진단하고 인슐린 치료에 대한 반응을 예측하는, 즉 진단과 예측 모두에 사용되는 생체지표 중 잘 알려진 또 한 예다. 이렇게 의학의 모든 분야에서 이미 수십만 가지 생체지표가 존재하고 그 수와 정교함도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데, 오직 정신의학 분야만 예외다. 현재 정신의학 진료에서는 어떤 혈액검사도 어떤 생체지표도 사용되지 않는다. (161쪽)

세로토닌 생체지표가 있다면 우리는 막연한 희망 사항이나 허풍에 기대지 않고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를 근거 있게 사용할 수 있고 이는 환자들에게도 이로울 것이다. 그러나 세로토닌 생체지표는 임상 실무에서 실제로 사용된 적이 없고, 아주 전문적인 연구에서조차 세로토닌을 측정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162쪽)

세로토닌 조절 약물로 우울증을 치료할 때 참조할 생체지표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런 생체지표가 없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또한 생체지표가 없으므로, 우리는 자신이 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를 복용해야 하느냐고 묻는 환자들에게 명쾌하게 대답할 수도 없다. 앞으로도 한 가지 약을 시도해보고 그 약이 듣지 않으면 다른 약을 시도해보는 시행착오 방식을 계속 쓸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보다 유감스러운 점은 우리가 앞으로도 모든 우울증을 다 똑같은 병으로 취급하고 치료하게 되리라는 점이다. 세로토닌 수치가 높은 우울증 환자와 세로토닌 수치가 낮은 우울증 환자 사이의 차이를 구별할 수 없다면, 내가 모즐리병원 진료실에서 그랬듯이 모든 우울증 환자에게 똑같은 약을 처방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들 모두가 세로토닌 수치가 낮을 거라고, 그러니까 그들 모두가 같은 상태일 거라고 무작정 가정해야 하니 말이다. (163~164쪽)

세로토닌은 우울증 및 우울증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항우울제에 관한 이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런데 동물의 뇌에서 염증이 세로토닌의 작용을 방해한다니, 염증이 가장 미세한 분자 수준에서 어떻게 우울증을 일으키는지가 드러난 것이다. 염증이 시냅스에 방출되는 세로토닌 양을 감소시킨다는 것은 시냅스 내 세로토닌 수치를 높이는 것이 목적인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와 정반대의 작용을 한다는 뜻이다. 이는 치료 저항성 우울증treatment-resistant depression, 즉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나 기타 항우울제 치료가 잘 듣지 않는 많은 환자에게 염증이 있을 확률이 특히 높은 한 이유일 것이다. (206쪽)

현재 우리는 심한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들이 마치 면역계라는 연못에 커다란 바위를 던진 것처럼 각종 면역세포들의 작용 및 상호작용 방식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별을 겪으면 자기의 최전방을 순찰하는 대식세포들이 화가 나서, 즉 더 활성화되어서 더 많은 염증성 사이토카인을 혈류 속으로 뿜어낸다. 대식세포의 과도한 활동은 죽상경화증으로 두꺼워진 동맥에 염증을 일으켜 심혈관이나 뇌혈관에 혈전이 생성될 위험을 높이고, 그러면 심장마비나 뇌졸중이 일어날 가능성도 더 커진다. 사회적 스트레스가 면역계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면 어째서 마음의 상처로 죽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지 알 수 있다. (218쪽)

이른바 정신질환자라 불리는 사람이 이른 나이에 사망하는 것은 당뇨병, 심장질환, 폐질환 같은 신체질환 때문이다. 이는 분리 정책이 시행되는 의료체계 안에서 조현병과 조울증은 순전히 마음의 장애로만 다루어지고, 그런 병을 앓고 있는 많은 환자가 인정받지도 치료받지도 못한 신체질환을 갖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한 중증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돌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적절한 의료, 교육, 사회 서비스에 접근하기도 어렵다. 정신증 증상에 흔히 사용하는 일부 약물은 체중을 증가시키고 당뇨병을 유발한다. 많은 요인이 작동하고 있지만, 중증 정신질환이 암만큼 치사율이 높다는 엄연한 사실은, 중증 우울증이나 양극성장애, 조현병 환자 들의 조기 자살 사망률 때문에 데이터가 편향된 통계상의 왜곡이라며 무시하고 넘길 수 없다. 모든 연령대의 중증 정신질환자 중 상당수가 심각한 신체질환을 앓고 있다. 그들은 마음과 몸을 분리해놓은 의료제도를 상대해야 하는 현실 때문에 심각하게 불리한 처지에 있다. (259~260쪽)

염증성 우울증을 치료할 신약이 개발되면, 우울증 환자 가운데 이 치료에 적합한 이들을 가려낼 혈액검사, 그리고 염증 생체지표에 의해 치료에 반응하리라고 예측되는 환자 집단을 대상으로 한 약물 실험도 타당성을 인정받게 될 것이다. 새로운 항우울제로 승인받는 데 필요한 엄격한 기준들을 만족시키며 이 모든 일을 해내려면 엄청난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내가 기대하는 최선의 상황은 지금부터 5년쯤 지나면 P부인처럼 동반 이환 우울증이 있는 환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항염증약이 나오고, 5~10년 뒤에는 주요우울장애가 있는 일부 환자들도 사용할 수 있는 항염증약이 나오는 것이다. (276쪽)

제약업계가 임상시험을 계속하도록 용기를 주는 사실이 있으니, 바로 이미 개발되었거나 다른 질병들에 대해 사용 승인이 난 항염증약 수십 종이 염증성 우울증 치료에도 유용하게 쓰일 잠재성이 있다는 점이다. 업계 용어로 이를 용도 변경이라고 한다. 원리상 이는 맨바닥에서부터 새로운 항염증약을 개발하는 일, 그러니까 최초의 생화학적 선별 연구에서부터 동물실험을 거쳐 제1상 안전 연구까지 들어가는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우울증과 관련된 일련의 면역계들을 표적으로 삼을 수 있게 해준다. 이처럼 곧바로 제2상 단계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이미 인간 면역계에서 표적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것으로 밝혀진 약물이 우울증 환자에게도 효과를 낼지 여부를, 비용과 시간을 더 적게 들이고 덜 위험하게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277~2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