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출판사
도서정보
클린랜드
마틴 쇼이블레
2021. 04. 30
11,000원
208페이지
9791189208776

청결만이 우리를 보호한다
타인과의 접촉은 위험하다
건강이 자유보다 더 소중하다!

팬데믹이 휩쓸고 간 자리에 세워진 완벽한 통제 사회 ‘클린랜드’.
오염, 패배, 저주로 상징되는 시크랜드의 불길하고 무성한 소문은
클린랜드에 대한 사람들의 맹목적인 믿음과 추종을 부추긴다.
‘깨끗하고 안전한 땅’에서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고 살았던 소녀 쉴로.
어느 날, 보호복이 찢어지는 사건을 시작으로 예기치 않은 일들이
휘몰아치자 난생처음 클린랜드에 의구심을 품게 되는데…….
지금까지 믿어 온 것들이 정말로 진실일까?

미래 시대에 대한 불안과 통렬한 각성을 담은 디스토피아 소설


*출간의 의의

팬데믹이 초래할 수 있는 미래 사회의 풍경을 예리하게 경고하는 SF 소설
지난 2019년 12월, 중국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확산된 COVID-19는 그야말로 전 지구적인 재난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 1월 30일,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언한 데 이어, 3월 11일에는 사상 세 번째로 ‘팬데믹’을 선포했다. 현재까지 확진자만 1억 5천만 명에 육박하고, 사망자는 3백만 명을 훌쩍 넘긴 데다 변이 바이러스마저 등장해, 백신의 개발과 접종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여전히 여의치 않다. ‘인류는 이제 코로나 19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전망이 현실이 되고 만 셈이다. 
무방비에 가까운 인류에게 부지불식간에 찾아온 팬데믹은 각 분야를 전방위적으로 붕괴시킨 것도 모자라 불평등과 차별의 심화, 허위 정보의 확산 등 현대 사회의 취약점과 부정적인 면을 고스란히 노출시키고 있다. 특히 COVID-19에 대처하는 방식이나 태도가 무척 달라서 각 나라에 대한 인식마저 달라졌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그보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며 도시 봉쇄 등 고강도 방역 조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격렬하게 확산된 나라도 있었기 때문이다. 
《클린랜드》는 이렇게 전 세계를 초토화시킨 팬데믹 이후에 세워진 완벽한 통제 사회를 날카로운 상상력과 비판적인 시각으로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팬데믹이라는 재앙에서 살아남은 인류는 생존을 위해 극단적인 통제와 감시를 용인하는 ‘클린랜드’를 세운다. 그리고 그 경계 안에 들어오지 못한 ‘시크랜드’를 오염과 저주의 땅이라고 매도하며 사람들의 불안을 양분 삼아 클린랜드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부추긴다. 
모든 것이 청결과 건강의 관점에서 평가받고 통제되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사생활이 24시간 내내 모니터링되고, 일상적인 소독, 사회적 안전거리 유지, 사전 예약, 통행증 발급, 비대면, 자가 격리가 당연시된다. 클린랜드에서 나고 자라 ‘깨끗하고 안전한 땅’에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았던 소녀 쉴로는, 어느 날 보호복이 찢어지는 사건을 시작으로 절친 가족에게 발생한 비인간적인 일들을 겪으면서 클린랜드가 감추고 있던 끔찍한 비밀에 다가서게 되고, 마침내 인생을 건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이렇듯 《클린랜드》는 팬데믹이 초래할 수 있는 미래 사회의 풍경을 치밀하게 상상해 봄으로써, 국민의 건강과 개인의 자유라는 가치를 모두 지키기 위해 지금 당장 우리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간략한 소개

건강과 안전 vs. 자유와 권리, 과연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팬데믹이라는 재앙이 휩쓸고 간 근미래, 쉴로는 건강과 청결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는 클린랜드에 산다. 신체 정보와 위치 정보가 24시간 내내 모니터링되는 컨트롤러,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보호복인 프로텍터와 바이저를 착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못해 몸의 일부로 느껴질 정도로 익숙하다. 사람들은 인체에 무해한 성분의 살균 소독 스프레이를 항상 갖고 다니고 주변에는 이동식 소독 컨테이너, 클린 레인, 클리너 시스템 등 다소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소독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 
재택근무와 가정 학습 등 비대면이 일상인 세상에서는 지하철 등의 이동 수단도 일인용 칸으로 나누어져 있고, 거리를 이동할 때도 근처에 다른 사람이 접근할 경우 경고음이 울려 마주치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한다. 가족과 사회 보건국에 등록한 공식 접촉인 외의 사람과는 신체적 접촉이나 친밀한 관계가 허용되지 않으며, 질병에 취약한 위험군으로 분류된 노약자는 집 안에 의무적으로 설치한 ‘안전실’이라는 공간에 격리된 채 떨어져 살아야만 한다. 
사람들은 5대 보건 수칙(청결만이 우리를 보호한다. 타인과의 접촉은 위험하다. 안전거리 유지가 안전을 보장한다. 통제는 건강에 이롭다. 건강이 자유보다 더 소중하다.)을 엄격하게 준수하고 이를 어길 경우 강력한 처벌을 받지만 불만 한 자락 없이 순응한다. 쉴로 역시 오염되고 병든 자들의 땅 ‘시크랜드’를 막연히 두려워하면서, 깨끗하고 안전한 클린랜드에 사는 것을 다행이라 여긴다. 그러던 어느 날, 예기치 않은 사고로 보호복이 살짝 찢어지는 바람에 본인은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마저 강제 자가 격리 모드로 몰아넣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이러스 감염 등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지 않아 안도한 것도 잠시, 그 일을 시작으로 쉴로에게 연거푸 묘한 일들이 생긴다. 
먼저 절친 사미라의 남동생인 오스카가 집 밖에서 프로텍터를 벗어 던지는 사고를 일으켜 안전실에 격리된다. 심리 치료와 약물 치료마저 거부하는 오스카 때문에 걱정에 사로잡힌 사미라는 동생을 구하기 위해 안전실의 위생 유리창을 깨려고 시도한 끝에 보건법 위반으로 동기 부여 아카데미라는 의문의 장소에 강제로 끌려간다. 쉴로는 청결부에서 일하기 때문에 누구보다 보건법을 철저하게 지키며 강요하는 엄마로 인한 스트레스와 절친 사미라네 가족에게 일어난 비극 사이에서 중심을 잃고 흔들리며 지금껏 믿어 왔던 모든 것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이와 동시에 집에 새로 온 클리너인 또래 남자아이 토코와 급속도로 친밀해지면서 클린랜드 밖의 세상과 사람들의 삶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고, 여기에 죽은 줄 알았던 할아버지가 시크랜드에 살아 있다는 충격적인 비밀까지 전해 듣는다. 결국 쉴로는 사미라를 구하기 위해 두 발 벗고 나서면서, 이제는 더 이상 현실을 외면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중대한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을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앞서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질문들 
《클린랜드》는 COVID-19로 인해 요동치는 현재의 모습을 바탕으로 서둘러 온 미래의 풍경을 구체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바이러스와 질병을 차단하기 위해 강력한 통제와 압박을 시스템화한 ‘클린랜드’에서 사람들은 자유를 포기한 대신 건강과 안전을 보장받는다. 그러나 클린랜드의 무자비한 통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질병의 위험이 있더라도 자유가 보장된 사회인 ‘시크랜드’를 선택한다. 이러한 설정은 언뜻 극단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COVID-19에 대응하는 여러 나라의 방식이나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어느 한쪽이 정답이라고 주장하거나 힘을 실어 주는 이야기가 아니다. 건강과 안전을 앞세운 통제만이 능사도 아니지만,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며 방역 수칙을 어기는 무책임한 행태를 두둔하지도 않는다. 대신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거대한 재앙 앞에서 쉽사리 무너지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여러 가치들을 지키기 위한 합리적인 방법을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기 전, 인류가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 가치관과 철학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느낌이랄까? 
이와 함께 지금보다 더 철저한 계급 사회로 회귀해 불평등과 차별, 사회적 격차가 심해진 미래의 풍경을 보여 줌으로써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되짚어 보는 것은 물론이고, 자국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현 시대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 
독자들은 쉴로가 처한 절박한 선택의 순간을 따라가는 동안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국민의 안전 보장’이라는 사안을 두고, 국가가 어느 정도까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지에 대해 토론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매순간 결정적인 분기점에 맞닥뜨리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되고 시기를 놓쳐서도 안 되는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문제들을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녹여 내 짚어 주는 작품이다.

지은이 : 마틴 쇼이블레 Martin Schäuble
1978년에 독일 뢰라흐에서 태어났다. 베를린,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등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뒤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로버트 존탁이라는 필명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언론인이자 작가로, 실용서와 소설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꾸준히 출간하고 있다. 특히 비판적인 관점의 청소년 도서를 출간해, 그의 작품은 학교에서 추천 도서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 《젊은 독자를 위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역사》(공저), 《종말의 땅》 외 다수가 있다.

옮긴이 : 김완균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독일 괴팅겐 대학교에서 독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전대학교 H-LAC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2120년에서 친구가 찾아왔다》《청소년을 위한 뇌과학》《젤프의 기만》《도대체 가짜 뉴스가 뭐야?》 외 여러 권이 있다.

클린랜드 5대 보건 수칙 (보건법)
그 후
프로텍터가 찢어지다
자가 격리 모드
전쟁은 언제나 책상 앞에서 시작된다
새로 온 클리너
위험천만한 돌발 행동
예고된 패닉
한밤중의 대화
강제 격리
충격적인 비밀
위험한 외출
팬데믹 너머의 공간
여기서 벗어나고 싶어
동기 부여 아카데미
금지된 만남
시크랜드에서 온 사람들
잠입
예기치 못한 이별
그 후

프로텍터가 찢어지다
팬데믹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근미래, 재앙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인류는 질병과 바이러스를 원천 차단해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극단적인 통제 사회 ‘클린랜드’를 구축한다. 건강이 자유보다 더 소중하다는 내용이 담긴 5대 보건 수칙(보건법)을 엄격하게 지키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나고 자란 쉴로는 깨끗하고 안전한 땅에서 보호받으며 사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그러던 어느 날, 절친 사미라와 함께 놀러 나갔다가 보호복인 프로텍터가 찢어지는 사고가 발생하자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불안감에 전전긍긍하는 한편, 자가 격리 모드로 인한 불편에 시들시들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화장실로 가는 도중에 안전거리를 지키지 않은 아이를 피하려다가 그만 미끄러져 바닥에 넘어졌다. 몸을 일으키는 순간, 프로텍터의 무릎 부분이 약 0.5센티미터가량 찢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지금 막 찢어진 건지, 아니면 이전부터 찢어져 있었던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사미라는 내가 넘어진 것도 모르고 앞서 걸어갔다. 서둘러 그 뒤를 쫓아갔다. 화장실에 도착해 컨트롤러를 인식시키자 입구의 문이 열렸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하며 큰 소리로 말했다.
“프로텍터에 문제가 생겼어!”
내가 무릎 언저리를 가리키자 사미라가 상체를 숙여 찢어진 곳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아파?”
“아니, 하지만 신고는 해야지.”
“꼭 그래야 할까?”
“당연하지!”
컨트롤러로 클럽 지원팀에 연락하자 2분 뒤, 클리너(소독과 살균을 담당하는 일종의 청소부.―옮긴이)가 도착했다. 불빛이 깜빡거리는 명찰에는 ‘닉’이라는 이름과 함께 ‘클리너(믿고 맡겨 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닉 아저씨가 컨트롤러로 내 이름을 파악한 뒤 차분하게 말했다.
“쉴로 양, 걱정하지 마세요. 어디가 찢어졌나요?”
나는 조심스럽게 무릎을 가리켰다.
“언제 이렇게 되었죠?”
“아마도 몇 분 전에요.”
“아마라고요?”
이런 경우에 부정확한 대답은 문제가 될 수 있었다. 프로텍터가 파손된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의 감염 위험성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거나 그와 비슷한 문제가 있는 경우라면 말이다. 프로텍터가 찢어진 이후에 나를 만났거나 나와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의심 환자로 분류되어 검사 대상이 된다. 내것 말고 다른 프로텍터에도 문제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12~14쪽에서


예고된 패닉
프로텍터가 찢어진 일을 시작으로 예기치 않은 일이 속속 벌어진다. 최근에 청결부로 이직한 엄마는 일이 힘든지 할머니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오랫동안 집의 청소와 소독을 도맡아 온 클리너 코스타 아저씨가 일을 그만둔 뒤 오염과 저주의 땅이라고 배운 ‘시크랜드’에 가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쉴로는 의아함과 함께 어쩐지 불길한 예감에 시달린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클리너가 배정되는데, 쉴로는 자기 또래 남자아이인 것을 알고 호기심을 느낀다. 우연을 빙자한 계획적인 첫 인사를 시작으로 쉴로와 토코는 비밀스러운 만남을 이어 가며 친밀한 감정을 싹틔운다. 한편, 절친 사미라의 동생 오스카가 프로텍터를 거부하는 소동을 일으켜 안전실에 격리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평화롭던 쉴로의 일상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왜? 오스카가 평소보다 더 정신 사납게 굴어?”
“뭐, 비슷해. 오스카가 학교 기지에서 시험을 치는 도중에 프로텍터를 벗었거든.”
“뭐? 대체 왜!”
나는 깜짝 놀라서 그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누군가 자발적으로 그런 짓을 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스카는 프로텍터를 입고 있으면 패닉 상태에 빠지거든.”
“언제부터?”
“몇 주 전부터 그랬어. 그때는 학교 기지가 아니라 집에 있었고, 우리는 걔가 또 쓸데없는 장난을 친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
“그런데 장난이 아니었어?”
“응, 장난이 아니더라고.”
우리는 어느새 아파트 출입문 앞에 도착했다. 사미라는 그동안 일어난 일들을 모두 이야기해 주었다. 오스카는 프로텍터 입는 걸 늘 불편해했고, 집에서 프로텍터를 벗는 횟수도 점점 늘어났다. 부모님은 집 안에서 그러는 거여서 그다지 문제 삼지 않았고, 사실 크게 걱정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오스카가 집 밖에서도 프로텍터를 벗고 싶어 했다. 식은땀을 흘리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으며, 미친 듯이 이리저리 날뛰었다는 것이다.
“심리 치료사를 만나 보는 건 어떨까?”
“안 그래도 내일 집에 오기로 했어.”
“내가 오스카를 만나 봐도 될까?”
“그럼, 되고말고! 그렇잖아도 오스카가 계속 너만 찾고 있는걸. 그런데 점심때 지나서 오는 게 좋겠어.”
“왜? 내가 또 늦잠 잘까 봐?”
“아니, 오전에는 심리 치료사가 다녀가기로 했거든. 청결부 직원 두 명이 치료사와 같이 온대.”
“오스카 때문에?”
사미라는 기운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슬픈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내일 너희 엄마가 우리 집에 오는 건 아니겠지?”
우리 엄마는 책상 앞에 앉아 일반 사무만 처리한다고 대답하려는 순간, 얼마 전에 할머니가 했던 말씀이 생각났다. 모든 전쟁은 언제나 책상 앞에서 시작된다던……. ―65~67쪽에서


동기 부여 아카데미
클리너와는 사적인 만남이 금지되어 있는 터라 쉴로와 토코는 도시의 사각지대에서 몰래 만나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한다. 쉴로는 토코와의 만남을 통해 클린랜드 밖의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며 지금껏 굳게 믿고 지켜왔던 사회의 규칙들이 사람들을 너무 억압하고 통제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게다가 오스카에 이어 사미라마저 보안법 위반으로 인해 동기 부여 아카데미라는 곳에 강제로 끌려가 격리당하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결국 쉴로는 사미라와 오스카를 구하고, 스스로가 옳다고 믿는 삶을 선택하기 위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미정이라고? 사미라 부모님은 격리 기간이 길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유리창에 몸을 기댔다. 몸이 많이 쇠약해진 것 같았다. 수면 부족에다가 이곳에서 보고 들은 모든 것이 너무나 충격적이라 기력이 소진되었다. 하지만 사미라에게는 내가 필요했다. 나는 유리창에 있는 ‘연결’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 직원을 보았는데, 컨트롤러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잠만 자나요?”
직원이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여기에 와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무척 피곤해합니다. 곧 연결 시도를 알아차릴 것입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잠자코 기다렸다. 사미라가 저렇게까지 지쳐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곳에는 밤의 치유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오스카와 사미라처럼 말을 고분고분하게 듣지 않는 사람들, 또는 반항하는 사람들을 위해 낮의 치유자도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이 복도는 정도가 심각한 사람들을 위한 장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의 모든 것이 일반적인 아카데미와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중략)
사미라는 침대 가장자리에 기대어 간신히 몸을 일으키더니 천천히 다가왔다. 유리창을 붙잡고도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 손으로 유리창을 닦더니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목이 메어 머릿속이 하얗게 텅 비어 버렸다. 나도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가까이 있으면 안 됩니다. 시간은 8분 남았습니다.”
직원이 사무적으로 말했다.
사미라네 부모님이나 우리 엄마가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든 이제는 아무 상관 없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적극적으로 협력하면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라고? 지금 사미라는 약 때문에 무기력해진 좀비나 다름없었다.
“오스카도 이제 곧 이해하게 될 거야.”
사미라가 아주 천천히 말했다. 나는 놀라서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이해한다니, 뭘?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그 애가 잘해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야.”
“뭘 해내는데?”
“청결해지는 법, 규칙을 준수하는 법……, 그런 것들을.”
눈물이 솟구치는 것을 애써 참으며 다시 물었다.
“그런 비슷한 것들을 잘해 낼 수 있도록 돕는 거라고?”
“청결만이 우리를 보호한다.”
사미라가 힘겹게 말했다. 굵은 눈물이 볼 위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건강이…….”
사미라가 테이블 위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자유보다 더 소중하다. 다섯 번째 법칙.” -153~155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