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출판사
도서정보
잔류 인구 (Remnant Population)
엘리자베스 문
2021. 10. 29
16,000원
416페이지
9791156759201

소외된 인물의 깊고도 아름다운 내면을 그려낸 독보적 SF작가
엘리자베스 문의 대표작 《어둠의 속도》, 《잔류 인구》 동시 출간 
엘리자베스 문은 독창적인 세계관으로 많은 독자와 평단의 이목을 끌어온 SF작가로 유명하다. 그의 책 《어둠의 속도》는 자폐인의 시선으로 삶의 정상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모든 독자의 시야를 끊임없이 변화시킬 보기 드문 캐릭터”라는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아서 C. 클라크상 최종 결선에 올랐고, 출간 이듬해인 2004년 네뷸러상을 수상했다. 또 다른 대표작인 《잔류 인구》는 70대 여성 노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세상이 정한 쓸모와 무쓸모의 경계를 허물어뜨림으로써 로커스상, 휴고상,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상 장편 부문 최종 결선에 모두 오른 바 있다. 장애인, 노인, 여성 등 소수자성 문제를 SF 장르 안에서 풀어내온 문의 대표작 《어둠의 속도》와 《잔류 인구》의 출간은 기존 SF 틀을 허물고, 독자들의 시선을 또 한 번 바꾸어놓을 것이다.

경계와 위험, 쓸모와 필요 사이에 선
외계인과 인간 여성 노인의 극적인 마주침
지구를 떠난 인류가 40년째 거주하는 콜로니 3245.12. 이곳은 주인공 오필리아가 정착 초기부터 일흔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살아온 곳으로, 그에게는 고향이나 다름없다. 그는 이곳에서 두 번의 대홍수를 겪었고, 남편과 자식들의 죽음을 견뎌냈으며, 살아남은 아이를 키우기 위해 헌신했다. 이제 그에게 남은 생이란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며 평온하게 늙다가 시나브로 죽음을 맞이할 일만 남아 있을 줄 알았다. 콜로니 거주를 관리하는 기업 심스 뱅코프가 사업권 상실을 이유로 새 행성 이주계획을 발표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다른 주민들은 기업의 통보를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효율적인 이주를 위해 저온 수면 탱크에 직접 발을 들이는 반면, 오필리아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다. 바로 콜로니에 기꺼이 남아 ‘잔류 인구’가 되기로 결심한 것. 이제 그는 그 어떤 요구도, 충고도, 폭력도 가해지지 않는 혼자만의 세상을 기꺼이 즐기기로 한다. 이 낙원의 유일한 주인이 아님을 깨닫기 전까지는……. 과연 오필리아는 갑자기 들이닥친 낯선 외계인들을 물리치고 다시 평화로운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들은 대체 무엇을 바라고 40여 년 만에 오필리아라는 여성 노인에게 접근한 것일까?

쓸모없음, 가치 없음의 시선을 기꺼이 부수고
스스로 ‘잔류 인구’가 된, 70대 노인의 행성 생존기
엘리자베스 문은 언제나 경계 바깥에 선 소수자에게 시선을 두는 작가다. 사회가 제시하는 ‘정상’과 ‘비정상’의 정의를 기꺼이 무너뜨리고, ‘쓸모’와 ‘효율’을 최고의 덕목으로 취급하는 오늘날에 치명적인 균열을 일으킨다. 《잔류 인구》는 그런 작가의 세계관이 집약된 SF소설이다. 저자는 주인공으로 효율적인 이주 정책과 행성 소거에 걸림돌로 취급되던 여성 노인 오필리아를 등장시킨다. ‘젊음’, ‘남성성’, ‘생산성’, ‘자녀 출산의 주체’로 대표되는 이른바 건강한 주민들은 이주 우선대상이나, ‘나이 듦’, ‘여성’, ‘무생산’의 대표인 오필리아에게는 이주 비용을 따로 지불하라는 명이 떨어진다. 이야기는 오필리아가 이 부당한 이주 행렬에서 벗어나 몰래 숲에 몸을 숨기면서 급변한다. 그의 탈주에 누군가는 “대피명령 위반”이라며 윽박지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나이도 많은 양반이 혼자 돌아가실 거라고요!”라고 비난하지만, 오필리아에게 명령과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그에게 잔류는 “가족과 사회적 의무로는 채워지지 않는 빈 곳”을 채우기 위한 ‘선택’일 뿐이다. 홀로 남은 그는 자신의 욕망에 따라 스스로 옷을 벗고, 비즈 목걸이로 자신을 장식하고, 정원에서 직접 재배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낸다. 타인이 정해놓은 기준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증명하는 방식으로 살아보기로 한다. 그를 통해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기준은 소멸하고, 오필리아는 오롯한 삶의 주체가 된다. 이처럼 이 소설은 세상이 세운 주류의 시선에서 기꺼이 빠져나오는 한 여성 노인의 숨 가쁜 탈출기라고 할 수 있다. 

경계와 위험, 쓸모와 필요 사이에 선 
외계인과 인간 여성 노인의 극적인 마주침
저자는 ‘인류와 외계생명체의 첫 만남’이라는 역사적인 이벤트를 과학자도, 정치인도 아닌 70대 주부인 여성 노인에게 쥐어준다. 오필리아는 세상이 필요없다고 정의내린 자신의 능력, 예컨대 돌봄능력, 타인을 향한 이해, 인내심 등을 활용해 인류학자들도 소화해내기 어려운 외계인과의 접촉을 멋지게 해낸다. 오필리아와 외계 생명체, 서로를 두렵고 혐오스러운 존재로 여기던 두 개체가 점차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둥지 공동체’로 나아가는 모습은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미움과 혐오가 아닌 오직 사랑뿐임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오필리아는 이후 다시 찾아온 인간과 외계인을 이어주는 교두보 역할로까지 나아가는데, 이 과정에서 독자들은 끊임없이 질문받는다. 인간과 비인간의 기준은 무엇인가? 말이 통한다고 해서 소통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정상과 비정상, 권리와 자격은 누가 정하는가? 독자들은 받아든 질문에 스스로 답을 던지면서 타인을 향한 새로운 시선과 이해의 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

엘리자베스 문Elizabeth Moon
1945년에 태어나 텍사스 토박이로 자랐다. 라이스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해병대에서 기술병으로 3년 동안 근무하다가, 다시 텍사스대학교에 들어가 생물학을 공부했다. 그 뒤로 응급의료원, 교사, 합창단 지휘자, 지역신문 칼럼니스트 등 여러 직종에서 다채롭게 일하기도 했다.
장애인, 노인, 여성 등 소수자성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온 문은 독특한 세계관으로 많은 독자와 평단의 이목을 끌어온 SF작가로 유명하다. 2003년에 출간된 그의 대표작 《어둠의 속도》는 자폐인의 시선으로 삶의 정상성에 대해 질문하여 “모든 독자의 시야를 끊임없이 변화시킬 보기 드문 캐릭터”라는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아서 C. 클라크상 최종 결선에 올랐고, 출간 이듬해인 2004년 네뷸러상을 수상했다. 또 다른 대표작인 《잔류 인구》는 70대 여성 노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세상이 정한 쓸모와 무쓸모의 경계를 허물어뜨림으로써 로커스상, 휴고상,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상 장편 부문 최종 결선에 모두 오른 바 있다. 그 밖에도 30여 권의 작품을 출간하는 등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2007년, SF문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로버트 A. 하인라인상을 수상하였다.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감사의 말 

그는 이곳에 있기로, 떠나지 않기로 했다. 갑자기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마치 추락하고 있는 것처럼, 발밑의 땅이 사라지고 행성의 중심부까지 떨어질 것처럼. 기쁨인가, 공포인가?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심장이 뛸 때마다 그의 피가 뼈와 근육에 똑같은 메시지가 전달된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떠나지 않을 것이다. _ 21쪽, 〈1〉

남의 집에 들어가 옷을 찾아볼까. 아니면. 아니면 지금껏 살아왔고 이제는 소문낼 이웃도 없는 곳의 거리를 알몸으로 걸어가도 되고. 오필리아는 열린 문가로 타박타박 걸어가서 밖을 봤다. 땅거미. 해는 이미 먼 숲 뒤로 넘어가고 없었다. 아무도 없는 거리, 아무도 없는 집들. 흥분과 대담함 때문에 배가 조여드는 느낌이었다. 할 수 있을까? 안다, 언젠가는 할 수 있을 것임을. 마음속에서 새 목소리가 처음 말했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언젠가 할 수 있다면 지금, 오늘 밤, 스릴이 사라지기 전에 하는 게 어떨까? _ 55쪽, 〈3〉

그의 오래된 목소리는 의무에 대해 말하고, 솔직히 예쁘장한 목걸이를 그렇게나 많이 만들 필요는 없었다고 지적하며 그를 괴롭혔다. 아니, 그럴 필요가 있었어. 그런 것이 필요하다는 걸 모르면서 살았던 평생 동안 그런 게 필요했어. 창작의 기쁨, 놀이의 기쁨은 가족과 사회적 의무로는 채워지지 않는 빈 곳이었어. 자식들을 더 잘 사랑할 수 있었을 텐데, 이제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게 놀이가 얼마나 절실했는지, 아름다운 것을 다루고 더 많은 아름다움을 창조하려는 스스로의 유치한 욕망을 따르는 일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했는지 더 일찍 알았더라면. _ 126쪽, 〈7〉

망토를 걸친 것이 이번에는 두 팔을 펼쳐 보였다. 천천히, 오필리아 뒤의 마을을 가리킨 다음 가리킨 것을 작게 포장해 그에게 건네는 것 같은 몸짓을 했다. 그에게 이해력이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곳 전체가 네 것이다’라는 뜻일 수밖에 없었다. 또는 그런 것이냐고 물어보는 것이거나. 오필리아는, 어릴 때 부르던 노래를 떠올리며, 두 손으로 공중에 커다란 원을 그린 뒤 한 손으로 그 원에서 수평선까지 가리킨 다음, 괴동물이 했던 대로 포장하는 듯한 몸짓을 했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포장물을, 크고 소중한 것인 양, 망토 입은 것에게 건네주었다. 이 세계 전체가 너희 것이다, 라는 뜻이었다. _ 219쪽, 〈11〉

내가 무엇을 배우든 그것은 아무한테도 쓸모없을 것이고, 내가 죽고 나서 다른 사람들이 온다고 한들 그들은 내가 남기려 애쓴 모든 것에 관심이 없을 거야……. 그것조차 내가 남긴 것들을 괴동물들이 없애버리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고. 잠시 오필리아는 웃음만큼이나 갑작스러운 슬픔과 절망으로 마음이 산란해졌다. 두려워한 적은 없지만, 이제 죽음이 길 끝에 와 있었다. 어둠, 더는 아무것도 없는 것. 그는 공식 로그를 윤색해 자신의 기억을— 누가 읽든 말든, 자기가 죽어도 살아남을 무언가를—남기려 했음을 이제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렇게 덧붙인 기록이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_ 236쪽, 〈12〉

괴동물은 병약한 늙은 여자가 성가시기만 한 감독자 같은 이도 아니고, 궁금한 것을 다른 데서 언제든지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필리아밖에 없었고, 그러므로 그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그러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상황이 악화되리라는 것 말고는. 얼마나 악화될지, 어떻게 악화될지는 몰랐다. 오필리아는 책임질 것이 더 많아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의무가 더 많아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은, 그의 어머니가 종종 말했듯이, 입맛대로 바뀌지 않는다. 배가 고프다고 해서 밀가루가 저절로 빵 반죽으로 변하지 않는 것처럼. 그 진실은 그가 사는 내내 한 번도 틀렸던 적이 없다. 학교에서, 심스 뱅코프 사의 콜로니 부서 서류에서 읽었던 더 희망적인 내용과는 달리 어머니의 더 비관적인 말들은 그가 사는 동안 언제나 현실로 다가왔다. 그러니 이제 반죽을 하고, 그런 다음 빵을 먹을 수 있기를— 장담할 수는 없다—바라야 한다. _ 243, 244쪽, 〈13〉

무릎 위의 아기가 똑바로 앉아서 오른발을 굴렀다. 오필리아가 힐끔 내려다보니 아기가 빤히 쳐다보며 계속 오른발을 굴렀다. 반대. 뭘 반대한다는 거니? 초롱초롱한 눈이 깜박이지 않고 그의 눈을 들여다봤다. 오필리아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이번에는, 이 아이에게는, 제대로 해줄 터였다. 이번에는, 사실은 그가 한 번도 주기 싫었던 적이 없던 것을 줄 터였다. “너,” 오필리아는 아기에게 말했다. 진짜 웃음이 나서 자신의 얼굴이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더러 불가능한 일을 하라는 거구나?” _ 372쪽,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