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출판사
도서정보
몸이 아프다고 생각했습니다 (현대 의학이 놓친 마음의 증상을 읽어낸 정신과 의사 이야기)
앨러스테어 샌트하우스
2022. 12. 06
19,800원
392페이지
9791156751274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으로 아픈 경험이 있거나
마음을 다루는 일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볼 것을 권한다.”
-한창수 고려대학교 정신건강연구소장, 《무기력이 무기력해지도록》 저자

만성피로, 무기력증, 어지럼증, 신경성 두통, 온몸에 끊이지 않는 고통…
몸에 이상이 없는데도 여전히 아프다면, 답은 바로 마음에 있다

20년 넘게 수천 명의 환자를 만난
런던의 정신과 의사가 짚어낸 마음의 증상들

만성피로증후군, 신경성 두통, 무기력증, 잦은 기침 등, 현대 의학으로도 그 원인을 명확히 밝혀내지 못하는 증상들이 있다. 환자는 종합병원의 여러 분과를 전전하며 각종 검사를 받은 후, 결국 “좋은 소식입니다. 검사 결과 완전히 정상이에요”라는 답을 듣는다. 하지만 환자의 증상과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분명히 존재하는데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은 환자에게 두려움을 안긴다. 여기에 ‘건강염려증이다’, ‘예민하다’ 등등 주변에서 아픈 것 자체를 의심하기도 한다. 아픔을 이해받지 못한 환자의 불편한 심리 상태는 더욱 악화되고, 몸에 나타나는 고통도 이에 따라 더욱 심화된다.
이처럼 현대 의학의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 《몸이 아프다고 생각했습니다(원제: Head First, 심심刊)》가 출간되었다. 이 책을 쓴 앨러스테어 샌트하우스는 런던 종합병원의 정신과 의사로, 20년 넘게 수천 명이 넘는 환자를 치료해왔다. 내과 의사 출신이었던 저자는 종합병원의 응급실을 거쳐 내과 진료소에서 근무하며, 몸이 아픈 사람들의 증상을 살피고 진단명에 따라 치료하고 처방하는 일을 했다. 그러나 수많은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점차 신체검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많으며 질병의 심리적 측면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진정으로 그들의 몸과 마음 모두를 치유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정신과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저자는 종합병원의 정신과 진료소에서, 병원 내 각종 분과에서 증상의 원인을 알아내지 못한 환자들의 정신을 감정하는 일을 하게 된다. 이 일을 통해 건강은 신체적 측면과 심리적 측면 양측이 모두 적용되며, 두 요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저자가 만났던 수많은 환자들의 이야기를 묶어낸 책으로, 종합병원 정신과를 찾아온 환자들이 겪었던 증상과 마음속에 숨은 아픔,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마음의 고통이 어떻게 몸으로 이어지는지, 무엇이 그 고통을 더욱 깊게 하는지,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의학적인 시선으로 예리하게 살핀다. “환자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고민하지 말고 그 병이 어떤 사람에게 생기는지 고민하라”고 말한 영국 의학자 윌리엄 오슬러의 말처럼, 이 책은 우리의 성격과 정신 건강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지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하게 도와주는, 치유와 회복을 위한 첫걸음과도 같은 책이다.

마음의 고통은 어떻게 몸의 고통으로 이어지는가
고통에서 벗어나 온전한 삶으로 향하는 치유와 회복의 여정

저자가 속한 종합병원에서 정신과는 ‘원인 불명의 증상’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이 가장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다. 환자들을 만나 그들이 어떤 일을 겪었고 마음 상태가 어떤지 당사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치료한 결과, 저자는 이런 환자들에게 신체의 상태를 점검하는 일 못지않게 내밀한 심리 치료가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환자 스스로도 모르던 마음속 결핍을 채우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은 한 환자는 18개월 동안 심장외과, 류마티스내과, 신경과, 자율신경과, 소화기내과, 이비인후과까지 전문의 6명을 거치고도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결국 정신과 진료소로 왔다(60쪽). 업무도, 약혼도 미뤄두고 온갖 스캔과 검사에 몰두한 그에게 남은 것은 불안, 분노, 악화된 건강 상태. 저자는 그를 만나 대화를 나눈 뒤, 그가 ‘불안장애’를 겪고 있으며 어지럼증은 불안장애에 흔히 따르는 과호흡 때문이라는 소견을 제시했고, 환자는 항불안제 복용 8주 만에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사실 능숙한 의사는 보통 메모를 힐끗 보기만 해도 환자가 호소하는 신체 건강 문제가 스트레스, 불행, 우울 등 온갖 심리적・사회적 요인에서 비롯되었음을 눈치 챌 수 있다. 복잡한 가족 관계, 경제적 압박, 기분 및 불안장애도 참고 사항에 기록된다. 하지만 그때쯤엔 이미 상황이 늦기 마련이다. 의사들은 이미 환자의 문제가 신체 질환이라는 판단하에 검사를 진행해왔고 환자도 그렇게 믿고 있다. 의사들이 발견할 가능성도 없는 신체 질환을 계속 찾으려고 했을 리가 없으니까. 그러니 전임자들이 그랬듯 환자와 나눠야 할 대화를 피하는 편이 쉽다. 환자의 신체 질환이라는 것이 사실은 심리적・사회적 압박의 결과일 가능성을 외면하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54~55쪽)

마음의 치유는 단순히 질병 치료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한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 태도를 좌우하고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이 책은 저자가 만난 다양한 사연과 증상을 지닌 환자들의 이야기를 총 18장으로 나누어, 각 사례에 등장하는 환자들이 어떻게 마음을 마주하고 삶을 바꾸어 나갔는지 보여준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만성피로(111쪽)나 신경성 두통 환자(362쪽)부터, 세상이 두려워 집에 틀어박힌 광장공포증 환자(37쪽), 외모 강박으로 건강이 망가진 거식증 환자(225쪽), 자신의 삶을 방치하다 병세가 악화된 당뇨 환자(285쪽), 자기혐오와 우울로 먹는 것을 멈출 수 없었던 비만 환자(151쪽), 심지어 보살핌을 받고 싶어 일부러 몸을 망가뜨렸던 환자(185쪽)까지, 각양각색의 이유로 종합병원을 찾은 환자들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환자들이 가지고 있던 심리적 문제를 파악해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환자에게 적합한 방법을 제시해 고통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매일 끔찍한 흉통을 앓았지만 신체검사에서 아무런 이상을 찾아내지 못한 한 환자는 납치 후 후유증으로 인한 불안장애가 통증의 원인이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잦은 검사가 아닌, 항불안제 처방과 심리 상담이었다(265쪽). 당뇨를 평생 관리해야 한다는 현실에서 도피하느라 지병을 방치해 건강이 악화된 한 환자는, 스스로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저자가 던진 질의응답을 통해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내면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치료 과정을 밟은 환자들은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고, 신체적 고통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삶을 가꿀 수 있게 되었다.

질병의 신체적 원인과 심리적 원인은 구분할 수 있는가
현대 의학이 말하는 ‘건강’의 범위

이 책은 환자의 심리 상태가 신체 상태에 대한 인식, 지속적인 건강관리, 더 나아가 삶을 유지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과학적 근거를 통해 밝힌다. 이를테면 스트레스를 받은 후 두통을 느끼는 것은 심리적인 고통이 몸까지 전이되어 나타나는 현상 중 일상적인 경우에 속한다. 그러나 일시적이고 가벼운 증상이더라도, 증상을 느끼는 당사자가 이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증상과 고통이 더욱 심화될 수도 있다. 실제로 환자가 자신의 증상이 심각한 것 같다고 사전에 선입견을 가질 경우 더욱 아프다고 느끼는데, 이는 신경을 통해 전해지는 감각을 뇌가 왜곡하여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통각 자체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더라도, 뇌가 심각한 요인이 있을 거라고 단정하면 실제보다 통증을 더욱 과장되게 인식하는 것이다(259쪽).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삶을 비관적으로 보는 환자는 신체의 통증을 더욱 심하게 느끼고 염려하는 경향이 강하며(262쪽), 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병세가 더욱 악화되기 쉽다. 실제로 우울증은 심장병과 뇌졸중의 발병 확률을 급격하게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294쪽). 하지만 신체 질환과 우울증을 모두 갖고 있는 환자는 주변에서(심지어 의료진까지도) ‘우울증에 걸릴 만하다’며 우울증 치료를 방치하는 일이 잦아 질병을 빠르게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우울증 환자가 비관으로 더욱 자신의 질병을 방치하고, 병이 깊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기도 한다.

우울증 환자가 심장마비를 겪고 나면 만성 질환과 사망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울증으로 인한 화학물질 분비 변화 때문이겠지만, 어쩌면 우울증이 개인의 사기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중요한 요소일지도 모른다. 우울증 환자는 건강관리에 소홀하기 쉽다. 예를 들어 흡연을 계속하거나, 정적인 생활방식을 유지하거나, 건강에 해로운 식사를 고집하거나, 후속 진료를 받을 의욕이 부족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모두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심장 질환 치료의 맥락에서 우울증 치료는 결코 심장약 복용만큼 강조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이다.(295쪽)

꼭 우울증 정도로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겪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환자가 심리적으로 얼마나 위축되었는지는 환자가 자신의 삶을 관리하는 큰 요인이 된다. 심장마비 이후 회복 과정에 있는 환자들의 상태를 조사한 결과, 환자가 겪는 객관적인 불편함의 정도보다 환자 본인의 믿음이 건강을 좌우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22쪽). 자신이 “병세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환자”는 재활 치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사회활동을 유지하는 등 질이 높고 긍정적인 일상생활을 이어나갔다. 반면 “자신의 병이 치명적이라고 믿은 환자는 활동이 위축되고 정적인 생활을 유지했”으며, 심장마비 이후에는 적당한 신체활동을 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면서도 무력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확인되었다. “환자의 믿음이 병의 예후와 진행을 좌우하는 것이다.”(23쪽)

정신감정부터 존엄 치료까지,
‘사람을 위하는’ 의학이란 무엇일까

이 책은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저자가 정신과 의사로서 다뤄야 할 ‘의학’의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진중한 고민을 던진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정신 감정’의 폭은 꽤 넓다. 신장을 기증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을 경우, 정신과 의사는 그에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로 신장 기증을 결정한 것인지 기증자의 정신을 감정한다. 자신이 받을 시술을 거부하는 환자가 있으면, 환자가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생길 여파를 판단할 객관적 능력, 즉 ‘결정 능력’이 있는지 감정한다. 만일 이들이 비이성적인 연유로 시술을 원하거나 원하지 않을 경우, 정신과 의사가 이를 제지하고 환자에게 적합한 조치가 무엇인지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환자가 마지막 나날을 편안히 보낼 수 있도록 의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 앞에서 의학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연명 치료를 계속하는 것뿐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저자는 죽음을 앞두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환자를 ‘어쩔 수 없다’며 방치하지 않는다. 대신 환자가 다시 활기를 되찾을 수 있도록 이야기를 나누거나,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는 치료를 실행하거나, 환자가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며 그간의 삶을 되새기는 ‘존엄 치료’를 실행한다. 저자는 이런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신약이나 데이터에 기반한 치료가 아니라, 환자가 스스로 괜찮다고 느끼는 안녕감을 확보하도록 돕는 심리 치료라고 말한다.
저자는 현대 의학이 눈부신 발전이 낳은 부작용인 과잉 진료와 검사, 의료진의 번아웃과 같은 현상을 예리하게 비판하면서도 ‘좋은 의료’로 가는 길을 제시한다. 그가 말하는 좋은 의료란 ‘환자가 살아온 인생의 맥락과 환자가 받은 영향을 이해하고 환자 스스로도 이해받았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현대 의학은 기술적 측면을 넘어 인간적 측면까지 포괄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런 희망의 씨앗이 될 것이다.

앨러스테어 샌트하우스 (Alastair Santhouse) (지은이) 
런던의 가이스 병원과 모즐리 병원의 정신과 의사.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한 후, 영국 왕립런던종합병원 대학원에서 의학 교육 과정을 수료했다. 종합병원 내과에서 근무하던 중,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을 알고 싶다는 생각에 모즐리 병원 정신의학과로 전공 분야를 옮겼다. 이후 20년 넘게 정신과 의사로 근무하며 수많은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영국 왕립정신과의사협회 자문조정정신의학 위원회 부위원장과 영국 왕립의료학회 정신의학과장을 지냈다.
《몸이 아프다고 생각했습니다》는 ‘원인 불명의 증상’으로 종합병원을 찾은 환자들의 정신감정을 맡아온 저자가 그동안 만난 여러 환자들이 겪은 아픔, 증상, 그리고 그들이 털어놓은 마음속 이야기들을 묶어낸 책이다. 이 책은 각양각색의 사연을 지닌 환자들의 사례와 저자의 예리한 의학적 시선을 통해, 정신 건강이 신체 건강과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신소희 (옮긴이) 
서울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출판 편집자로 일했다. 지금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번역하고 있다. 그동안 옮긴 책으로 《야생의 위로》,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 《엉망인 채 완전한 축제》, 《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처방》, 《피너츠 완전판》 등이 있다.


1. 종합병원의 정신과 의사
2. 정신질환자라는 낙인
3. 과잉 검사, 차가운 병원
4. 무기력과 우울증
5. 신장 기증자 정신감정
6. 만성피로증후군이라는 증상
7. 자살, 희망과 절망 사이
8. 비만을 불러온 슬픔
9. 의사의 말을 믿지 못하는 이유
10. 증상을 꾸며낸 환자
11. 환자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
12. 외모 강박과 불안
13. 어떤 치료로도 낫지 않은 통증
14. 스스로 삶을 끝내고 싶은 암 환자
15. 도피 끝에 찾아온 정신과
16. 치료 선택, 치료 거부
17. 마지막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
18. 무너진 세상이 남긴 연민

맺음말
감사의 말
참고 문헌

인체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깊어지면서 의학은 다양하게 파편화된 전문 분야로 갈라졌다. (…) 전문화로 관점이 편협해지면서 의학계는 많은 지혜를 상실했다. 다시 말해 의료 행위가 협소하고 기술적으로 변하면서, 환자의 성격이나 정신 건강처럼 외적 증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타 요인들을 고려하지 못하게 되었다. (…) 질병과 무관한 증상을 겪는 환자들은 결국 여러 차례 검사를 받고서도 병인을 알아내지 못한다. 안 맞는 열쇠로 잠긴 문을 열려는 셈이다. 열쇠를 억지로 자물쇠에 쑤셔 넣고 낑낑대며 돌려 봤자 무의미한 짓이다. 아무 소용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해로운 결과가 발생하는 경우도 흔하다. (21쪽)

연구자들은 심장마비 이후 발생한 장애가 항상 박출률과 정비례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놀랍게도 환자가 믿는 본인의 상태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신의 병이 치명적이라고 믿는 환자는 활동이 위축되고 운동과 성행위를 중단하며 예전보다 훨씬 정적인 생활을 한다. 반면 자신의 병세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환자는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일상을 유지하며 업무와 예전에 즐겼던 활동을 재개할 확률이 높다. 심장마비 이후에는 적당한 신체활동을 하는 것이 유익하기 때문이다. 이는 심지어 심장마비로 근육이 심하게 손상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박출률이 45퍼센트인데도 무력 상태에 빠질 수 있는 반면 박출률이 35퍼센트인데도 활발하게 살아갈 수 있다. 즉, 환자의 믿음이 병의 예후와 진행을 좌우하는 것이다. (22~23쪽)

이 책에서는 우리의 성격과 정신 건강이 어떻게 평안한 삶을 좌우하는지 다루려고 한다. 정신이 신체에 그토록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게 믿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실제로 정신은 우리의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도 좌우한다. 이뿐 아니라 우리의 사고방식을 형성하고 신체 증상에 반응하며, 우리가 받는 치료와 그 성공 여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제부터 그간 우리 정신과 진료소를 찾아온 환자들의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겠다. (…) 독자 여러분도 자신의 심신과 건강을 새로운 관점으로 생각할 수 있길 바란다.(31~32쪽)

의료계는 과학을 거의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환자가 통증이나 피로, 어지러움을 느낄 때 그런 증상이 실재하는 동시에 그 원인이 환자의 체내에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점은 쉽게 이해받지 못한다. 주류 의료 문화와는 정반대이며 의료진과 환자 모두 납득하기 어려워하는 관점이기 때문이다. (48~49쪽)

어떤 사람이 어지럼증으로 의사를 찾아간다고 해보자. 검사 결과 아무 문제도 찾지 못한 의사는 병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좋은 소식입니다. 검사 결과 완전히 정상이에요. 아무 문제도 없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 안심이 되시겠죠.” 그러나 병자의 고통은 그대로다. 그의 병이 정당화되지 못했을 뿐이다. 검사 결과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것은 병자에게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다. 병자의 동료와 가족은 그의 고통이 정말인지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다. 선의를 가진(혹은 악의를 감춘) 사람들은 병자에게 그만 ‘정신 차리고’ 업무에 복귀하라는 충고를 할 것이다. 다양한 증상으로 괴로움을 호소하지만 원인 질환이 규명되지 않은 병자는, 고통받는 사람이 아니라 의지가 약하고 도덕성이 부족한 자로 취급받게 된다. (58쪽)

 나도 종종 놀라워하는 사실이지만, 정신 건강이 튼튼해지면 병에 대한 저항력도 강해진다. 이런 현상이 면역계와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은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대중에게도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예를 들어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고 전염병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진다고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더욱 극단적인 사례로, 학계에서 자주 인용되는 한 논문에서는 만성 스트레스가 면역계에 영향을 미쳐 특정 유형의 암 발병과 진행을 촉진한다고 주장했다. (134쪽)

 환자에게 대체의학 치료사와 만난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이 가장 강조하는 점은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가 아니다. 대신 치료사가 실제로 자기 말을 들어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자기에게 공감해준다는 점을 가장 많이 언급한다. 애매하고 치료하기 힘든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가 의사에게 이런 대우를 받는 일은 드물다. 대체의학 치료사도 물론 치료를 제공하지만 이 부분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때가 많다. 사람들이 대체의학 치료사를 찾아가는 것은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치료 과정의 총체적 경험 때문이다. (183쪽)

환자가 의사와 같은 시각으로 상황을 보게 하려면 시간과 인내와 요령이 필요하다. 하지만 명백히 우울증이 아닌 증상을 치료하겠다고 효과도 없을 항우울제를 계속 처방하는 것보다는 그 편이 나을 것이다. 환자에게 뇌 내 세로토닌 결핍이 아니라 인생의 의미 결핍이 문제임을 인식시키기란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의사에게 그럴 경험과 배포가 있다면 환자의 삶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224쪽)

우리는 감각에서 오는 증거를 믿을 가능성이 더 큰가, 아니면 우리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믿을 가능성이 더 큰가? 내 경험에 따르면 후자다. 뇌에서 내려오는 하향식 예측이 강해질수록 손에서 전해지는 실제 통각 수용체의 피드백은 더욱 왜곡된다. 따라서 손을 조금만 움직여도 통증이 심해질 것이다. 즉, 뇌는 스스로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선호하고 그 기대에 맞추어 현실을 왜곡한다.  (259쪽)

우리는 우울증이 나을 수 있는 질병이며 우울증 치료가 경과 전반과 생존율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안다. 그런데 우울증은 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까? 내 생각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는 환자라면 충분히 우울증에 ‘걸릴 만하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어서다. 의사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을 병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으로 여긴다(“누구든 이런 상황에서는 그렇게 느끼지 않겠어요?”). 두 번째는 의학이 점점 더 분화된 결과 심장 전문의가 심장 질환에 대해서는 대체로 자신만만해하지만 마음의 문제는 치료는커녕 인식하는 것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다. (295~296쪽)

의사는 환자와 같은 인간으로서 행동해야 한다. 공허한 약속이 아닌 실질적 희망을 제시하는 능력은 훌륭한 의사가 되는 데 무척 중요하다. 의사는 환자의 곁에서 그가 어떻게 될지 염려하는 동료임을 인식시켜야 한다. 환자를 구체적으로 도울 방법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임종을 앞둔 한 인간의 절망을 덜어주는 일을 어떻게 숫자로 따질 수 있겠는가? (335쪽)

효과적이고 좋은 의료는 환자가 살아온 인생의 맥락과 환자가 받은 영향을 이해하고 환자 스스로도 ‘이해받았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현대 의학이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대체 의학이나 보완 의학을 선택하는 게 아닐까. 환자는 의학의 기술적 능력을 존중할지 몰라도 인간적 측면에서는 표준 의학에 만족하지 못한다.(364쪽)

현재의 진료 방식이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 다수에게 부적합한 의료 체계를 지속시키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나는 20년 넘게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이전 세대 의사들의 지혜로움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항상 의학이 무엇보다도 사람에 관한 것임을 이해하고 있었다. 의학계는 세대가 바뀔 때마다 이 사실을 잊어버리지만, 그런 만큼 세대가 바뀔 때마다 다시 배워야 한다.(3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