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출판사
도서정보
칼날 위의 삶 (뇌종양 전문 신경외과 의사가 수술실에서 마주한 죽음과 희망의 간극)
라훌 잔디얼
2024. 01. 30
18,000원
140*210mm/ 296페이지
9791156754527

“내게 수술은 인체 해부가 아니라 마음에 관한 탐구였다.”
세계 최고 뇌종양·말기 암 전문 신경외과 의사인 라훌 잔디얼 박사가
수술실과 병동에서 목격한 생과 사의 경계

수술로 몸의 절반을 잃은 30대 남성, 아들의 졸업식을 보고 싶어 몇 달이라도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병원을 찾은 40대 여성, 어린 나이에 뇌사를 맞고 사망 선고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19세 소년, 수술의 후유증으로 눈꺼풀을 깜빡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중년 여성……. 이들은 제각기 다양한 증상과 질병과 사연을 지녔지만, 모두 생과 사의 기로에 놓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의 ‘생명줄’을 쥔 의사는 이 환자들에게 삶의 기회와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 병실과 수술실에서 고군분투하며 삶과 죽음을 누구보다도 가까이 목격한다.
세계 정상급 뇌종양 전문 외과 의사이자, 말기 암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의사의 소회를 솔직하게 담은 회고록 《칼날 위의 삶(원제: Life on a Knife's Edge, 심심刊)》이 출간되었다. 이 책을 쓴 라훌 잔디얼은 뇌종양과 말기 암을 전문으로 진료하는 신경외과 의사로, 가장 건드리기 예민한 부위인 뇌를 열어 종양을 제거하며 수천 명의 삶을 연장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암 연구 전문가로서 100여 편의 논문과 수많은 의학 도서를 집필한 저자는〈선데이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상을 수상했다. 전작인 《내가 뇌를 처음 열었을 때》에서 신경학자로서 뇌의 작용과 활용법을 다루었다면, 이번 책에서는 한 명의 의사로서 병실과 수술실에서 겪은 경험과 환자들의 사례에서 길어 올린 삶에 대한 통찰을 총 10가지 키워드에 담아냈다. 트라우마, 자아, 상실, 삶 등 인생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통해 저자는 환자들의 사례를 살피고, 치료 과정에서 만났던 어려움과 깨달음을 솔직하게 풀어놓는다. 죽음 앞에서 환자들이 보여준 삶의 태도와 저자의 통찰이 담긴 이 책은,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할 기회를 건넨다.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이 책을 “빠른 속도감을 갖춘, 때때로 충격을 주는 생생한 글”이라고 평했으며, 《호흡의 기술》 저자인 제임스 네스터는 “인간의 생물학적 내면 깊은 곳으로 우리를 이끈다”며 찬사를 보냈다.

라훌 잔디얼(Rahul Jandial) 지음
뇌종양 전문 신경외과 의사이자 뇌 과학자. 미국 로스앤젤레스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샌디에이고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학교 교수로 초빙되었으나 이를 거절하고 암 연구에 정진하는 길을 택했다. 현재 로스앤젤레스의 국립암연구소에서 선정한 통합 암 치료 전문 기관인 시티 오브 호프City of Hope 재단에서 ‘잔디얼연구소’를 운영하며, 암이 뇌로 전이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연구에 힘쓰고 있다. 비영리기관 국제신경외과어린이지원협회International Neurosurgical Children’s Association를 창립해, 의료적 도움이 필요한 동남아시아·동유럽·남아메리카의 어린이들을 정기적으로 치료하고 있다.
잔디얼은 암 연구에 몰두하며 10권 이상의 의학 서적과 100편 이상의 논문을 출간했고, 그 성과로 2019년 〈선데이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상, 2015년 미국 국방부 유방암 연구 혁신상, 2008년 UC샌디에이고 유명 강의상, 2007년 펜필드 연구상 등을 수상했다. 대표 저서로 《내가 뇌를 처음 열었을 때》가 있다.


정지호 옮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일본어와 영어를 전공하고 성균관대 번역대학원에서 문학(번역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영상 및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번역 일을 하며 경험을 쌓았다. 책이 좋아 출판 번역의 길로 들어섰다. 옮긴 책으로는 《마지막 끈을 놓기 전에》, 《괴롭힘은 어떻게 뇌를 망가뜨리는가》, 《트라우마는 어떻게 삶을 파고드는가》, 《세계사를 바꾼 위대한 식물 상자》, 《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 《루틴의 힘》, 《부두에서 일하며 사색하며》, 《시작과 변화를 바라보며》, 《우리 시대를 살아가기》, 《인간의 조건》 등이 있다.

머리말 ─ 나는 환자의 뇌에 칼을 대는 의사다 9

1 트라우마 ─ 몸과 마음에 숨은 상처 15
2 몰입 ─ 의사에게 필요한 능력 41
3 자아 ─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65
4 실패 ─ 어떻게 다시 일어나야 할까 99
5 믿음 ─ 신앙과 과학 사이에서 129
6 위협 ─ 위기에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153
7 중독 ─ 유능한 의사라는 증명 187
8 가치 ─ 나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 213
9 상실 ─ 비극에서 찾은 의미 239
10 삶 ─ 환자들이 가르쳐준 인생의 태도 267

감사의 말 293

외과 의사는 환자보다는 그 환자가 받을 수술에 관심이 더 많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수술을 한 적이 없다. 내게 수술은 인체 해부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관한 탐구였다. 나는 수술이라는 기술의 덕을 많이 보았다. 수술은 나와 환자를 발가벗기고, 둘의 사활을 칼날 위에 올려놓는다. 수술은 외로운 상황이 될 수 있고, 쉬운 답은 거의 없다. (10쪽)

현재, 나는 사람의 몸에서 악성종양을 제거하는 외과 의사다. 40대인 지금까지 1만 5천 명 이상의 환자를 만났고 4천 건 이상의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은 우리 자신의 가장 인간적인 면모에 상처를 입힐 수 있지만, 우리의 인간성을 가장 깊이 있게 드러내기도 한다. (11쪽)

내가 환자와 함께했던 여정은 인간의 나약함, 용기, 아름다움이 어우러진 상급자 코스였다. 그리고 그 고통을 치료하려고 내 자신의 고통을 전면에 내세워야 했다. 그동안 내가 환자와 함께 겪었던 윤리 문제와 갈등에 대처한 여정을 이 책에 담았다. 나는 이 책에서 내 삶과 일의 깊은 골짜기에서 건져 올린 교훈과 통찰, 그리고 우리의 탁월한 뇌와 귀중한 생명에 관해 환자들이 가르쳐준 모든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나는 이들에게 영원히 빚을 졌다. (11~12쪽)

일부 뇌종양 환자는 운명을 피할 길이 없다. 이들은 가급적 빨리 자신의 죽음을 냉철히 바라보아야 한다. 생의 결승선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다. 환자는 당장 그 선을 밀쳐내고 싶다. 몇 달이라도, 몇 년이라도 더 살 기회를 잡으려고 눈앞에 닥친 건 무엇이든 한다. 그러다 보니 환자는 치료를 한 번 받고 나서 회복할 겨를도 없이 검사 결과를 듣고, 그 결과에 따른 치료를 또 감당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며 암 센터에 가는 것. 이건 내 눈에는 영웅적인 행동으로 보인다. (30~31쪽)

요즈음에도 치명적인 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나를 찾는다. 나는 이에 감사함을 느낀다. 내 기술로 다른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으니 그게 세상에 변화를 일으키는 방법이 아닐까? 나는 이런 순간이 두렵지 않다. (55~56쪽)

우리 각자는 자신의 경험과 믿음, 기억과 역사, 희망과 갈망에서 생겨난 독특한 내면의 이야기, 즉 자아의식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인생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흡수해서 이들을 진행형 서사로 엮어내는 능력을 자서전적 기억이라고 하고, 이는 스스로의 자아를 바라보는 기반이 된다. (…) 역경에 맞서 싸워야 할 때, 상상 속의 미래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할 때, 우리의 자서전적 서사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런 불쾌한 사건, 좌절, 실패를 목적과 회복의 서사로 엮어내는 능력은 정말 중요하다. 우리에게는 마주하는 난관에 맞게 자신의 정신 상태를 단련하고 생각의 흐름을 이끌며 마음속으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고유의 역량이 있다. (96~97쪽)

나에게는 새로운 공감의 저장고가 생겨나고 있었다. 힘든 시기를 거치면서 나에게는 겸손이 생겨났다. 이제 나는 세상을 다르게 보았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좀 더 분명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는 고통 안에서 세상에 속할 기회가 있었다. 고통을 겪는 환자들은 의사인 나도 짐을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다. 우리는 이제 터놓고 얘기할 수 있었다. (114쪽)

뇌는 끊임없이 변하고, 우리에게는 뇌를 조정하고 이용할 힘이 있다. 환자들은 뇌 수술을 받은 후 잃어버린 기능을 회복한다. 따라서 여러분이 건강한 뇌를 가지고 있다면 본인이 위협과 맺는 관계를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음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이 능력은 모두 사고의 가소성에 달려 있다. (180쪽)

사람들은 암 전문 외과 의사로 일하는 것이 심적으로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는 이 질문에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라고 대답한다. 내 환자는 심적으로 나를 힘들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에게 가르침을 주고 나에게 용기를 준다. (…) 이들은 왜 암 진단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삶의 질을 우선시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아쉬워한다. 암 환자들의 위기 관리는 내 삶의 질을 향상시켰고, 나는 그들에게서 삶의 교훈을 얻었다. (183쪽)

나는 수술의 영광이 아닌 수술 과정에 집중하면서 희열을 느끼기 시작했다. 수술 자체에 강렬한 감정을 이입할 필요가 없었다. 내 통제 밖에 있는 요소가 너무 많다는 사실, 그래서 최선을 다하되 이후에 오는 인생의 부침도 즐겨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장인이 되자. 단순해지자. 환자를 포용하고 의료 시스템에 의문을 던지자. 수술은 산의 정상이 아님을 깨달았다. 환자의 여정이 산의 정상이다. (210~211쪽)

놀랍게도 많은 환자가 암을 상실로 보지 않는다. 이들에게 뜻하지 않게 찾아온 삶의 마지막 장은 암에 걸리기 전에 꾸렸던 인생에 종지부를 찍는 진혼곡이 아니라, 암이라는 병에 걸렸어도 끝까지 존재감을 발휘하는 시간이다. 이들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요소에 집중한다. (…) 암 환자는 대재앙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암 환자는 내게 ‘수준 있는 삶의 질’을 누리는 것이 단순한 우선순위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임을 보여주었다. (246~247쪽)

일부 암 환자들이 조기 단계 임상 실험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것도 비극적인 상황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서다. 자신의 운명은 끝이 나더라도 의학 발전에 이바지해서 다른 사람을 돕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제인 같은 암 환자들은 사후 신속한 부검을 위해 본인의 시신을 기증한다. (262쪽)

상실과 삶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상실로 인해 심히 절망하고 가슴 깊이 고통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상실과 삶이 맺은 깊은 유대감과 애착 때문이다. 상실을 경험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나는 환자와 이들 곁의 소중한 사람들의 삶에 상실이 파고드는 것을 목격했지만, 그럴 때마다 가장 날것의 그러면서도 가장 견고한 인간애를 발견했다. (266쪽)

장기 기증 의사를 반복해서 밝힌 후, 환자는 치료를 그만 받기를 원했다. 이런 결정은 환자 스스로가 아닌 가까운 가족 구성원이 하는 일이다. “우리가 인공호흡 장치를 떼어내기를 원합니까?” “네.” “인공호흡기를 계속 유지하고 싶으세요?” “아니오.” “호흡기를 떼어내면 당신이 살까요, 아니면 사망할까요?” “호흡기를 계속 유지하면 살까요, 사망할까요?” “죽음이 두려우세요?” “아니면 죽어가는 게 두렵나요?” 근육의 수축이 전혀 없는 멍한 얼굴에도, 환자의 눈은 정말 평온해 보여서, 마치 그게 자신의 권리이고, 자신의 삶이고, 새장에서 벗어날 기회임을 내가 마침내 깨닫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마지막 질문으로 우리는 “무엇이 두려운가요?”라고 물었다. 환자는 “사는 것”이라고 답했다. (281~282쪽)

그 순간, 나는 내 환자와 인간애를 공유했고, 앞으로 배울 게 정말 많다는 생각을 했다. 삶과 내 자신에 대해서. 내가 그동안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서. 삶, 상실에 관한 교훈과 생존의 법칙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우리 뇌 속의 세포 하나하나에도, 우리 마음속에도, 내 환자에게도, 수술실에서도, 내가 진료할 때도 존재하며, 이들은 생과 사, 희망과 무기력함의 경계 속에서 작동한다. 삶의 벼랑 끝과 깊은 골짜기에서는 삶의 높이도 드러난다. 어떤 비극이나 승리도 영원하지 않다. (288쪽)

환자는 저마다의 생존 방식이 있다. 모든 환자가 질병에 잘 대처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은 초월적인 수준으로 마음의 본질에 접근해 힘든 상황에서도 성장으로 인생을 마무리하며 승리를 거둔다. 이런 사람들에게 병의 진단은 삶을 구속하는 방해물이 아니었다. 이들은 죽음 또는 죽어간다는 사실에 눈이 머는 대신, 진정한 삶의 우선순위를 발견하고 오랫동안 인생에 방해가 되었던 부차적인 것들은 옆으로 제친다.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을 볼 수 있는 능력은 서서히 생기든 깨달음으로 찾아오든 가장 중요한 변화다. (289쪽)

나는 환자가 감사 인사를 보내면, 어리둥절하며 ‘뭐가 감사하지?’라고 혼자 의아해한다. 그들의 가장 치열하고 가장 개인적인 순간에 개입할 수 있도록 관대하게 허락해준 환자들에게, 그들의 시련을 보고 배울 수 있도록 허락해준 환자들에게 나야말로 감사해야 하는데 말이다. 이들은 시련에 맞서며 비극적인 앞날을 무력하게 기다리지 않았다. 이런 태도의 목표는 고난의 상황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만이 아니다. 기쁨을 음미하고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과정을 창조하는 것이다. (2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