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출판사
도서정보
제7일
위화
2013. 08. 26
13,000원
304p
9788971846964

세계가 사랑한 작가 위화,
중국 최고 이야기꾼의 귀환

사람들은 누구나 희극과 비극 사이에서 살아간다
사랑과 관계 그리고 희생의 선순환 속에서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허삼관 매혈기》로 한국 독자들에게 중국 소설의 매력을 흠뻑 전해준 위화(이 소설은 하정우 주연?연출로 영화화가 확정되었다. 2014년 가을 개봉 예정이다). 그가 새로운 작품을 들고 다시 독자들을 찾아왔다. “기차가 낳은 아이” 양페이는 태어나면서 생모와 이별하고 철도 선로 인부였던 아버지에게 극적으로 구출되어 그의 아들로 살아가게 된다. 이 책은 양페이가 불의의 사고로 죽고 나서 (구약 창세기에서 모티브를 따온) 7일 동안 연옥에서 이승의 인연들을 만나 그동안의 앙금도 풀고 사랑을 재확인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작가는 변해가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그늘이 되고 만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품고 있으며, 사회의 부조리마저 유머러스하고 흡인력 있는 이야기로 탈바꿈시키는 거장의 풍모도 이 작품에서 넘치도록 보여주고 있다.

사고로 버려진 아이를 혈혈단신 총각의 몸으로 키우는 아버지와 그들을 돌봐주는 아버지 친구 부부, 사랑했던 여인과 이웃들의 이야기가 엮여가면서 중국 사회를 뉴스 보도보다 더 사실적이고 날카롭게 그리면서도 휴머니티에 대한 견고한 믿음을 작품 전체에 걸쳐 그려냈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유사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과 서로를 증오하는 혈연 가족의 모습, 협잡과 꼼수가 난무하는 현세와 서로를 죽인 원수임에도 매일 토닥토닥 싸우며 아옹다옹하며 살아갈 수 있는 연옥을 대비하며 우리가 정말 살고 싶은 세상,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를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또한 작가는 독자들에게 ‘선택’의 문제를 환기시킨다. 양진뱌오가 아들을 버렸다가 다시 찾아오는 선택, 양페이가 생가를 버리고 양부를 선택하는 것, 리칭이 양페이를 버리고 부호를 선택하는 것, 쥐순이가 가난뱅이 우차오와 끝까지 함께하기를 선택하는 것 등 실제로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극단적인 선택의 순간들, 그들의 심리 상태와 당위까지도 놀랍도록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인간의 나약함과 강인함, 결단성과 우유부단함을 동시에 다채롭게 보여주고 있다.


위화
저자 : 위화
저자 위화는 1960년 중국 저장성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때 발치사拔齒師로 일하다가 1983년 단편소설 《첫번째 기숙사》를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열여덟 살에 집을 나서 먼 길을 가다》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 등 실험성 강한 중단편 소설을 잇달아 내놓으며 중국 제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첫 장편소설 《가랑비 속의 외침》 으로 새로운 글쓰기를 선보인 위화는 두번째 장편소설 《인생》을 통해 작가로서 확실한 기반을 다졌다. 이 작품은 장이머우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으로 ‘위화 현상’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리고 1996년에 출간한 장편소설 《허삼관 매혈기》로 세계 문단의 극찬을 받으며 명실상부한 중국 대표 작가로 자리를 굳혔고, 이후 10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형제》가 또 한 차례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에세이집으로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가 있다. 1998년 이탈리아 그린차네 카보우르 문학상, 2002년 중국 작가 최초로 제임스 조이스 기금, 2004년 프랑스 문학예술 훈장 및 미국 반스 앤 노블의 신인작가상, 2005년 중화도서 공로상, 2008년 프랑스꾸리에 엥테르나시오날 해외 도서상 등을 수상하였다.

세 번 버림받은 아이, 양페이
자신의 삶보다 업둥이 아들을 더 소중히 여긴 진짜 아버지, 양진뱌오
신장을 떼서 연인에게 묘지를 마련해준 남자, 우차오
사랑보다 성공을 선택한 여자, 리칭
 
내가 으앙 하고 깨면 아버지는 배고프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젖병을 꺼내 입에 넣어주었다. 그렇게 나는 젖병과 아버지의 체온을 빨며 하루하루 자라났다.
 
아버지 통증이 조금 줄어들면 우리는 함께 추억에 잠겼다. 그럴 때 아버지의 목소리는 무척 행복해보였다.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의 일을 아주 많이 이야기했다. 어렸을 적 나는 잠잘 때 꼭 얼굴을 마주봐야 했다며, 가끔 자세를 바꾸느라 등을 돌리면 내가 계속 “아빠, 나 봐. 아빠 내 쪽 봐…….”하고 웅얼댔다고 했다.
 
나의 어린 시절은 웃음소리처럼 마냥 즐거워, 나는 내가 아버지의 인생을 갉아먹고 있는 줄 전혀 몰랐다. 내가 철도 위로 떨어진 뒤 아버지의 인생길은 순식간에 좁아져버렸다. 결혼은커녕 여자 친구도 사귈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인 하오 아저씨 부부가 여자한테 내가 생긴 사연을 알려주고 이게 바로 선량하고 믿음직한 남자라는 증거라며 몇 번인가 자리를 마련해주었지만, 처음 만날 때조차 아버지는 내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털옷을 짰기 때문에 여자들은 잠시 미소를 지은 뒤 돌아서 나가버렸다.
 
“여기 오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잊었어요.”
“잊었다면 아주 오래 되셨겠네요.”
“너무 오래 되었지.”
“왜 죽은 뒤에 오히려 영원히 사는 것처럼 느껴질까요?”
그는 공허한 눈동자로 나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죽은 뒤에 안식의 땅으로 가야 합니까?”
내 물음에 그가 웃는 듯하더니 말했다.
“모르겠소.”
“왜 스스로를 재로 만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건 규칙이라오.”
“묘지가 있는 사람은 안식을 얻지만 묘지가 없는 사람은 영생을 얻습니다. 어떤 게 더 좋습니까?” 내가 물었다.
“모르겠소.”
아무 말 없고 아무 행동도 없이, 그저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우리가 침묵 속에 앉은 것은 다른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 무리라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였다.

나와 아버지는 영원한 이별 뒤에 다시 만났다. 이제 체온도 없고 숨결도 없지만 우리는 다시 함께하게 되었다. 내 오른손이 하얀 장갑을 낀 아버지의 앙상한 손가락뼈를 떠나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어깨뼈로 갔다. 아빠, 나랑 같이 가요, 하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얼마나 일을 사랑하는지, 이 대기실에서의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았기에 이렇게 말했다.
“아빠, 자주 뵈러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