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출판사
도서정보
겪어야 진짜
후지와라 신야|김윤덕
2014. 05. 16
13,000원
296 / 페이지
9791156755142

“당신이 맞다면, 지지 마라.
두려워해야 할 것은 너를 잃는 일!”

남겨진 우리가 인생을 돌보는 방법에 대하여,
방황하는 이들의 정신적 스승, 일본의 행동하는 지성
후지와라 신야가 전 생애로 답하는 삶의 의미

2014년 봄, 한국에서는 세상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화가 났던 건,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 일로 아이들은 어른에 대한 믿음을 접었고, 어른 또한 망연자실한 채 집단적 우울을 앓고 있다. 2011년 봄, 가까운 일본은 ‘쓰나미’라는 천재天災와 함께 ‘방사능 누출’이라는 인재人災, 두 가지 재해를 동시에 입었다. 국민 모두가 슬퍼하고 분노했던 그때, 방독 마스크를 쓰고 현장에 달려가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사람들의 상처를 고스란히 함께 나눈 이가 있다. 한국 독자에게는 《인도방랑》이라는 인도 여행의 고전으로 유명한 작가이자 사진가, 40년 동안 일본 젊은이들의 구루로 인정받아온 후지와라 신야다.
저널리스트이자 사회운동가, 퍼포먼스 예술가로 여전히 일본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후지와라 신야는 동일본 대지진뿐 아니라 고베 대지진 때에도 생수와 야채를 자동차에 가득 싣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동시에 원전 사고를 방관만 한 채 거짓말을 일삼은 정부를 비판했다. 또한 아베 총리의 입김으로 선출된 모미이 가쓰토 NHK 회장의 부적절한 언행을 두고, 그가 공공방송의 수장으로서 공정성을 잃었다며 비난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시청자인 ‘우리가 항거할 수 있는 방법은 수신료 납부를 거부하는 것’이라며 NHK의 위기가 개선될 때까지 수신료 납부 '일시 유보' 운동을 벌이고 있다. 행동의 힘을 알고 있는 그는 침묵하지 않았다. 잊지 않았다. 대신 더 크게 소리치며 자신의 자리에서 부조리와 불의를 향해 칼을 겨누었다.

〈죽지 마, 살아라〉라는 타이틀의 사진전은 2011년 3월 4일에 시작되었는데, 3월 11일에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지진이 일어나자 일본 사회는 자숙하고 반성하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나 역시 전시회를 중단해야 하지 않나 고민했습니다. 국가가 재난을 당한 상황에서 작가가 전시를 계속한다는 게 사치로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또한 올바른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히려 나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시 기간을 두 배로 연장했습니다. 위기가 닥치면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위축됩니다. 그런데 이런 때야말로 적극적인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 위험한 상황이라고 해서 물러난다면 거기서 끝이지요.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말겠다는 의지가 필요하지요. 모든 위기의 순간에는. _본문 중에서

냉철한 현실주의자이며 가슴 따뜻한 휴머니스트 후지와라 신야의 인생과 통찰을 〈조선일보〉 김윤덕 기자와의 인터뷰로 엮은 《겪어야 진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 지켜야 할 삶이 있는 우리들이 어떻게 인생을 일구고 돌봐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책은 ‘여관집 도련님’에서 집안이 파산해 남의 집에 얹혀살아야 했던 성장기의 혼란, 구두닦이부터 세일즈맨까지 스무 가지 일을 전전하면서 돈을 벌었던 청년기의 절망, 대학을 그만두고 세계를 여행할 수밖에 없었던 운명적 순간과의 조우 등 일흔의 ‘사부’ 신야가 살아온 굴곡진 인생을 고스란히 담았다. 그의 인생이 특별한 이유는, 책상머리가 아닌 ‘거리’에서 그 모든 이야기가 시작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사랑, 이별, 행복, 종교, 나이 듦을 이야기하지만, 그의 사상에는 ‘날것’의 생생함이 펄떡인다. ‘행동’과 ‘경험’을 통해 깨달은 그의 통찰은 그래서 강력하되 오리진하다. 그가 온몸으로 부딪쳐 체득한 삶의 이치는 세상의 수많은 물음표들 앞에서, 인생의 두려움이나 괴로움 앞에서 머뭇거리다가도 이내 온몸으로 직면할 수 있는 용기를 권한다.
후지와라 신야는 유례없는 재앙을 겪으면서 “일본인들이 타인의 슬픔을 공유하고, 누군가를 위해 울기 시작”한 것에 주목한다. 또 경쟁과 성장을 절대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잃어버렸던 ‘인간성’을 회복할 기회를 준 대지진이 축복이라고 말한다. 그는 일본 국민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일본의 비극을 반면교사 삼아달라고 부탁한다. 쓰나미 이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화두는 일본 사회의 숙제가 되었다. 그것을 풀기 위해 여전히 애쓰는 신야는 2014년 봄, ‘삶의 의미’를 묻는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넬까.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어른의 어른, 후지와라 신야가 세상을 대하는 방법

‘어른이 필요 없다, 어른을 믿지 못하겠다’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믿고 싶은 어른이 있었으면 좋겠다, 누구라도 마음 놓고 믿고 싶다, 인간을 믿고 싶다’의 강력한 표현이지 않을까. 아이들에게는 물론,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 이런 때, 책상물림이나 온라인에서 선동하는 사람이 아닌 생의 밑바닥에서 뒹굴면서 예리한 현실감각과 직관을 기른 후지와라 신야 같은 어른의 존재는 더욱 빛이 난다. 삶에 대한 놀라운 통찰과 안목, 그것을 세상으로 거침없이 내뿜는 용기, 그리고 오랜 여행을 통해 얻은 현자의 면모까지.
후지와라 신야는 여행할 때 일부러 위험한 곳을 찾아다닌다. 사창가 뒷골목, 총성이 난무하는 무법천지에 겁도 없이 뛰어든다. 단 하루라도 진정으로 여행하고 싶다면, 그래서 그 지역의 속살을 발견하고 싶다면, ‘사고를 치라’고 강권한다. 그는 남루한 거리에서, 용광로 같은 삶의 현장에서 자신이 직접 만나고 부딪힌 사람들에게서 삶의 지혜와 혜안을 얻었다. 세계를 여행했고, 사람을 여행했으며 이제야 비로소 삶을 여행한다고 말하는 행동하는 어른, 후지와라 신야의 통찰이 공허하지 않은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7년간 인도를 방랑했던 20대부터 지금까지 거리를, 세계를 떠도는 남자. 일본 정부가 미워하는 독설가이며 사진작가, 시부야 한복판에서 먹물 묻힌 거대한 붓을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휘두르는 예술가. 명상과 요가를 파쇼만큼이나 혐오하지만 붉은색 페라리를 사랑하는 이 유별난 인물의 정체를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분명한 건, 그는 정이 많고 자유로우며 영적靈的인 남자라는 사실이다. 인디언 추장처럼, 빈 사막을 홀로 걷는 수도승처럼. _본문 중에서

“불안을 한 장 벗겨내면 자유가 있다”
놓쳐버릴까 봐, 망쳐버릴까 봐
지금 겪어내야 하는 것들을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야비하고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비겁해지고 허약해졌을까. 남들처럼 번듯한 직장을 갖지 못할까 봐, 저 사람에게 밉보일까 봐, 회복하지 못할 마음의 상처를 입고 무너질까 봐, 알고 있는 것도 모른 척,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하며 진짜 성장, 성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다. 신야는 “결국 질퍽거리면서도 살아가야 하는 것은 그 사람 자신”이라고 강조하며, 무엇보다 상황을 손익을 따져서 계산하지 말고, 두려움과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다잡으며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여보라고 외친다.
신야는 도망가고 싶은 순간들을 겪어내야 이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진짜’ 여행을 다녀온 사람은 여행 이전과 이후가 다르듯이 일상의 순간들도 그것을 직면하느냐, 겉도느냐에 따라 내 삶이 미묘하게 방향을 튼다는 것. 그는 또 작은 바람에도 쉽게 휘어지고, 인생을 편하게만 살려는 우리에게 직접 경험해본 것만이 결국 자기 것이 되며 그것이 결국 삶을 지탱하는 결정적 힘이 된다고 조언한다.

수장을 하면 일단 가라앉는데, 바닥 끝까지 내려간 시신은 다시 물 위로 떠오르지만 바닥에 이르지 못한 시신은 떠오르지 않고 그대로 흘러갑니다. 그렇게 떠오른 시신의 얼굴이나 몸은 불순물이 모두 씻겨 나간 것처럼 아름답습니다. 반쯤 눈을 감은 채 미소를 머금어 마치 불상처럼 보이는 시신도 있지요.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만큼, 바닥 중의 바닥까지 떨어져서 더는 떨어질 수 없는 곳에 다다르면 오히려 평온해지죠.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_본문 중에서


“그에게 내가 가야 할 길을 묻고 싶었다”
불혹을 넘긴 어른에게 던져진
산다는 것에 대한 막막함

《겪어야 진짜》는 후지와라 신야의 인생 통찰을 담은 책인 동시에 불혹을 넘긴, 기자 김윤덕의 ‘고백’을 엮은 ‘성찰의 기록’이다. 밖에서는 신문기자로, 안에서는 아내이자 딸이자 며느리로 20년 넘게 ‘여러 가지 얼굴’의 삶을 살아왔다. 사회의 기준에 따라 “깔려 있는 철도”를 달려온 그녀는 문득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실존적인 물음에 말문이 막혔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싫어하는 것은 무엇이냐’라는 단순한 질문에도 주저하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살면 살수록 삶이 더 막막하고, 나라는 존재를 잊고 살던 그때, 후지와라 신야를 만났다.
그를 인터뷰하는 3박 4일 동안 김윤덕 기자는 “사표를 낼 용기도 없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자신감도 떨어진” 채 지금까지 이룬 것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 두려워하고, “막연한 운명에 비굴하게 기대어” “마음만 먹으면 누릴 수 있는 욕망의 찌꺼기들”을 기대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한 수많은 눈빛에 답해야 하는 나이, 책임질 일이 많아지는 자리에 얹혀진 짐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기자로 1주일에 최소 한 명, 20년간 천 명도 넘게 인터뷰를 해온 그녀지만 ‘사부’ 후지와라 신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로소 자기 자신의 맨얼굴을 마주한 것이다. 그렇게 드러난 ‘인간’ 김윤덕의 모습은 동시대에 깔려진 철로를 열심히 따라가

후지와라 신야
날것의 풍경을 건져 올리는 사진가, 무라카미 하루키, 시오노 나나미보다 더 사랑받는 작가, 시부야 한복판에서 먹물 묻힌 거대한 붓을 거침없이 휘두르는 예술가, 일본 정부가 미워하는 독설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생수와 야채를 가득 싣고 방사능 피폭 현장으로 달려간 사람, 시부야 밤거리를 떠도는 10대들을 만나고 그들의 울분을 알리는 작업을 이어가는 사람, 명상과 요가를 파쇼만큼이나 혐오하지만 붉은색 페라리를 사랑하는 이 유별난 인물. 세계를 여행했고, 사람을 여행했으며, 이제야 비로소 삶을 여행한다고 말하는 행동하는 어른, 후지와라 신야.

1944년 일본 후쿠오카 현 모지 시(현재 기타큐슈 시 모지 구)의 여관을 운영하는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여관이 파산하자 고교 졸업 후 상경해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명문인 도쿄예술대학 미술학부 회화과에 입학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예술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중퇴, 1969년 스물다섯 살 되던 해에 인도로 떠난다. 이후 서른아홉 살 때까지 인도, 티베트, 중근동, 유럽과 미국 등을 방랑한다.

1972년에 펴낸 처녀작 『인도방랑』은 당시 청년층에게 커다란 호응을 불러일으켰고, 8년의 인도방랑 후 떠난 티베트에서의 여정을 기록한 『티베트방랑』은 라마교 사회의 삼라만상을 예리한 시선으로 포착하여 독자를 투명한 감상공간으로 이끌어주었으며 『인도방랑』과 더불어 저자의 원점이 되는 대표작으로 사랑받고 있다.

1977년 『소요유기』로 제3회 기무라 이헤에 사진상, 1982년 『동양기행』으로 제23회 마이니치예술상을 받는다. 그 밖의 주요 저서로 『아메리카 기행』『도쿄 표류』 『메멘토 모리』 『침사방황』 『시부야』 『바람의 플루트』 『황천의 개』, 소설 『딩글의 후미』, 자전소설 『기차바퀴』 등이 있고, 사진집으로는 『남명』, 『일본풍경 이세』, 『천년소녀』, 『속계 후지산』, 『발리의 물방울』 등이 있다. 어디에도 소속되길 거부하며 사진과 문장을 무기 삼아 기성세대에 덤벼들었고, 지금까지 40년 동안 청춘의 구루로 자리 잡고 있다. |||1970년 충북 청주 출생으로,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월간 샘터, 경향신문을 거쳐 현재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겸 비상근 논설위원, TV조선 시사토크 ‘판’의 진행자로 활약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자문 위원, 이주배경청소년지원센터 비상임 이사로도 일하고 있다.
2007년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를 시작한 꽁트식 에세이 ‘줌마병법’으로 2008년 여성신문사가 선정한 ‘미래를 이끄는 여성 지도자상’을 받았다. 저서로는『우리는 모두 사랑을 모르는 남자와 산다』,『유모차 밀고 유럽 여행』이 있다.
[예스24 제공]

프롤로그 그에게 내가 가야 할 길을 묻고 싶었다

1장 매일 부서지고 매일 새로워진다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다’는 느낌 | 인형 코알라, 진짜 코알라 | 고깃덩어리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건 | 뭔가를 얻었다는 건 뭔가를 상실했다는 뜻 | 지기 위해, 좌절을 맛보기 위해

2장 시시한 삶은 없다, 위대한 삶도 없다
남은 20퍼센트의 나 | 욕망, 불온하지 않다 | 당신의 인생에 불운만 있었는지

3장 몸이 외치는 소리
나는 방금 바람이 되었다네 | 사막 위 발자국을 찍다 | 여행이라는, 다른 방식의 투쟁

4장 세상의 중심은 나
여관집 아들, 후지와라 신야 | 정말로 목숨 걸고 뛰어들면 | 정해진 건 뭐든지 싫었다 | 그렇게 ‘자아’가 싹텄다

5장 손등으로 뺨을 치는 마음
벳푸항의 74세 삐끼 | 대나무에 마디가 있는 이유 | 말하지 않고 행하는 것

6장 아무것도 되지 못한 불안, 그러나 자유!
도쿄 최고의 구두닦이 | 불안을 한 장만 벗겨내면 | 공중에 매달린 것 같은 날들 | 이름 없는 사람들에게 배우다 | 나를 잃지 않고 사는 법

7장 사랑, 처음부터 있었고 가장 나중까지 남는 것
쓰나미 폐허 속 두 남녀 | 용케도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들의 특권 | 받아도 보고, 퍼부어도 보고, 그러다 실패하고, 헤어져도 보는

8장 당신이 나에게 마음을 허락하는 순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 셔터는 염불과 비슷한 데가 있다 | 사진도 붓글씨도 사랑의 방편

9장 타인을 위해 눈물 흘릴 수 있는 사람
나이 마흔에 찾아온 인생의 전환점 | 떠나지 않고 여행하는 법 | 슬픔 또한 풍요로움 | 대지진은 일본에 축복이 될 것입니다 | 신도 도깨비도 없었다 | 죽지 마, 살아라

10장 도시에서 꺾이지 않고 살아가는 법
자연이 우리에게 준 선물은 | 혼자서 잘 노는 아이는 없다

11장 죽음 뒤엔 아무것도
‘늙었다’고 말하는 순간 늙기 시작한다 | 길고양이를 만지지 않게 된 것처럼 | 모든 죽음은 숭고하다 | 우리가 늘 죽음을 기억하고 산다면

에필로그 ‘후지와라 신야’라는 오리지널리티

결혼해 아이 둘 낳고 키우면서 직장까지 다니느라 마음의 스승을 염원하고 말고 할 여유도 없었다. 유명인들을 인터뷰할 때 ‘당신의 정신적 스승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은 습관적으로 던졌다. 그들의 입에서는 어김없이 위대한 사람들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명사가 너무 많으니, 어느 땐 “무학無學인 내 아버지가 최고의 스승”이라는 대답이 신선할 정도였다. 누구나 멘토를 이야기하는 시대이니 나도 한번 두어볼까, 생각해본 적도 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사이 내 머리가 커진 탓, 멘토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탓도 있다. 또 진심으로 존경의 염이 우러나 마음으로 모시고 싶은 어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_p.7 프롤로그, 그에게 내가 가야 할 길을 묻고 싶었다

바로 거기서 엄청난 장면을 목격합니다. 나무 위에서 두 마리의 코알라가 엉겨 붙어 격렬한 싸움을 하고 있었던 거지요. 결국 한 마리의 코알라는 귀가 뜯겨 나갔습니다. 그야말로 피투성이가 된 전투를 목격하고 아이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녀에게 코알라는 인형이었지, 야만스런 동물이 아니었으니까요. 벽을 넘어 자연 속으로 들어가보았더니 거기에 ‘진짜’ 코알라가 있었던 겁니다. 아마도 그녀는 세상을 여유롭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만은 없음을 깨달았을 겁니다. 똑같이 호주를 여행해도 인형 코알라만 보고 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진짜 코알라를 보고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_p.31 매일 부서지고, 매일 새로워진다

언젠가 사막에서 만난 이슬람의 한 청년이 내게 물었습니다. “너희 나라의 신은 왜 자비롭게 웃고 있는가?” 당황한 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종교란 원수마저도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사랑”이라고. 그러자 청년이 비웃으며 말하더군요. “불교가 굉장히 지쳐 있군!” 그 말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사막에 사는 사람들은 오아시스가 있는 한 뼘의 낙원을 두고 뺏고 빼앗기는 항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들에게 종교는 생존이 걸린 치열한 삶이자 투쟁이었습니다. 살아갈 권리를 쟁취하는 방식이죠. 그런 이들의 눈에 부처님의 인자한 미소는 안일하고 위선적으로 보입니다. 지쳐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요. 종교에 대한 생각은 문화와 환경에 따라 이렇듯 달라집니다. 낯선 문화, 낯선 땅에 가면 우리의 사고방식을 또 다른 거울에 비춰보게 되지요. _p.43 매일 부서지고, 매일 새로워진다

세상에 시시한 삶이란 없다, 특별히 위대한 삶도 없다는 사부 신야의 말에 목젖이 뜨거워졌다. 깔려 있는 철길을 악착같이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니, 위안이 됐다. 축 처진 어깨에 날개가 돋을 정도는 아니지만 다시 운동화 끈을 맬 수 있는 힘이 솟았다. 자신을 놓치지 않고 살 것,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 자신의 야성을 발견해 나만의 인생을 창조해갈 것, 그것이 비록 세속의 찬사를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만 즐거우면 됐지’ 하는 배짱을 가질 것, 나는 불운조차 행운으로 바꿀 수 있다는 허세를 부릴 것. 남과 자신을 비교하느라 금쪽같은 시간을 허비할 게 아니라 앞의 목록들을 하나씩 실천해가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_p.65 시시한 삶은 없다, 위대한 삶도 없다

막연히 인도에 가면 노골적으로 드러난 인간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정말 위험하지만 ‘살아 있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인도에 갔고, 정말로 시체가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일본과는 전혀 다른 가치관이 통용되는 세계를 맞닥뜨렸습니다. 글쎄요. 왜 꼭 인도였는지는 모르겠어요. 일종의 직관이 작용하지 않았을까요. 젊은이 특유의 감각이라고 할까. _p.71 몸이 외치는 소리

그때까지 점잖은 부잣집 도련님이었기에 제가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우리 집 물건을 모두 끌어내 현관에 잔뜩 쌓아놓고 걸어오는 튀김집 아저씨를 향해 레코드판을 집어던졌습니다. 처음으로 세상을 향해 분노를 느낀 순간이었어요. 그 한순간이 인생에 커다란 분기점이 되었지요. 내게 처음으로 ‘자아’라는 게 생겼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죠. 아무 생각도 아무런 걱정도 없이 호의호식하던 도련님은 그날 세상의 진실, 인간의 이중적인 얼굴을 목격합니다. 인간이 한번 기울기 시작하면 시체를 파먹는 새들, 까마귀들이 몰려든다는 것을 처음으로 직시하게 되었지요 _p.108 세상의 중심은 나

신야에겐 ‘청춘’이라 불리는 20대가 시련의 절정이었다. 자신에게 드리워진 거대한 그늘을 걷어내고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이를 악물었던 시절이다. 가업이 파산한 뒤 공부할 여건이 안 되자 대학 진학 대신, 구두닦이부터 건물 청소원, 나이트클럽 삐끼까지 비천한 직업을 전전했다. 배낭에 칫솔과 카메라만 넣어 미지의 땅 인도로 방랑을 떠난 것도 20대였다. 그에게 청춘의 동의어는 ‘자유’였다. 아무것도 되지 못한 현실에 대한 불안과 바닥 없는 자유를 가진. 가장 낮은 자리, 삶의 밑바닥에서 세상을 올려다보는 시기였다. 결코 만만치 않았던 그 경험들로 사부 신야는 진짜 삶과 가짜 삶, 목숨을 건 진짜 혁명과 패션에 지나지 않는 가짜 혁명을 구별해내는 매서운 안목을 갖게 되었다. _p.131 아무것도 되지 못한 불안, 그러나 자유!

나는 세대 차이가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같은 눈높이, 같은 시선이란 절대 있을 수 없지요. 너와 나의 입장이라는 게 전혀 다르니까요. 어떤 문제에 대해 ‘너와 나의 생각이 같다’는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흔히 같은 눈높이에서 얘기하자는 말을 많이 하는데, 세상에는 상하, 위아래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민주주의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온 탓에 ‘모두 똑같이 합시다’라는 주장으로 변질되었지만 그것은 민주주의의 본질이 아닙니다. 오히려 상하관계를 만들면 소통은 훨씬 수월해지지요. _p.149 아무것도 되지 못한 불안, 그러나 자유!

아무리 강력한 자연이라고 하더라도 이 연약한 두 사람의 사랑은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이제 겨우 스무 살 정도로 보이는 청춘들이었지만, 나는 처음으로 사랑의 강인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처음 ‘사랑’이라는 글자를 붓으로 쓰게 되었고요. 이 세상에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어떤 재앙으로도 인간의 사랑은 훼손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이 있었으므로 절망 가운데에서도 살아갈 수 있었던 겁니다. _p.172 사랑, 처음부터 있었고 가장 나중까지 남는 것

뒤죽박죽 엉킨 쓰레기더미 위에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어요. 물에 젖은 아이의 그림이었습니다. “미야코의 할머니에게”라고 쓴 글자 옆에 할머니 그림이 그려져 있더군요. 그 그림은 이곳에 삶이, 생활이 있었다는 증거였습니다. 그제야 내 마음 속에 분노와 슬픔이 밀려들었습니다. 슬픔보다는 분노의 감정이 훨씬 강했지요. 이 작고 평범한 일상을 한입에 삼켜버린 거대한 힘에 분노가 치솟았습니다. _p.223 타인을 위해 눈물 흘릴 수 있는 사람

대지진으로 인해 광대한 지역이 사라졌습니다. 우리의 일상이 송두리째 쓸려가버린 사건을 겪으면서 아무것도 아니었던 삶의 풍경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한 거죠. 관람객들은 아주 사소한 풍경들을 빨려 들어갈 듯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평범해서, 언제나 주변에 있었던 그 풍경들이야말로 우리 삶에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가, 하는 메시지가 전달된 것입니다. 일본 젊은이들은 최첨단 기술과 정보보다 의지를 삼을 만한, 인간의 향기가 나는 무엇인가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대지진의 참사야말로 우리의 비극이자 축복이었습니다. _p.234 타인을 위해 눈물 흘릴 수 있는 사람

지금 아이들은 방에서 컴퓨터 게임에만 매달리고 있지만 내가 어릴 때는 산과 바다로 놀러 다녔습니다. 바다도 산과 마찬가지로 맛있는 생선이 있는가 하면 독이 든 물고기가 있지요.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놀이를 통해 벌계와 보상계의 원칙, 생존 규칙을 배우고 몸으로 익히게 됩니다. 굉장히 큰 가르침이지요. 아이들이 훌륭하게 자라려면 가족뿐 아니라 주위에 이웃과 대자연이 있어야 합니다. _p.245 도시에서 꺾이지 않고 살아가는 법

맞아요. 나는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고양이에게 바로 달려가서 쓰다듬었는데, 형은 양복을 입은 채로 가만히 서서 바라만 보고 있었죠. 그때 내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회사의 중역은 집 없는 고양이를 만지지 않는구나’였습니다. 세상에 대한 입장, 관점이 바뀌었다고 할까요? 회사에 오랫동안 근무하다 보면 세계가 점점 좁아지는 모양입니다. 바라보고 느끼는 대상이 회사 중심으로 바뀌는 걸까요. 사람은 자신의 생활권에 따라 필요하지 않은 것은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슬펐습니다. 거대한 조직을 위해 노동하고 월급 받는 생활에 익숙해지는, 회사라는 조직의 톱니바퀴가 되어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어린 시절의 동심을 잃어버리게 마련이구나 싶었지요. _p.267 죽음 뒤엔 아무것도

인간의 죽음은 어떤 죽음이어도 좋다! 멋없는 죽음이든, 멋있는 죽음이든, 고통 속의 죽음이든, 죽음은 모든 것을 수용하고 받아들입니다. 그게 죽음의 깊이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나에게 멋진 죽음을 강요하는 것은 또 하나의 압박입니다. 어떤 죽음이든 좋다고 생각할 때 인간은 처음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상적인 죽음을 상정한다면, 이상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죽어간 사람들을 불쌍하게 만드는 꼴이 되니까요. _p.276 죽음 뒤엔 아무것도

가령 자연 속에는 산이 있습니다. 여기엔 많은 열매가 맺혀 있지요. 밤, 대추 등 온갖 열매가 있고 아이들은 그 속에서 놀면서 벌계와 보상계의 개념을 인지합니다. 그런데 도시 사회에는 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