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출판사
도서정보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
박성제
2014. 09. 26
13원
288/ 페이지
9791156755241

어차피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인생,
자존심을 지키면서
스트레스를 덜어내며 사는 법

해직된 40대 중년 기자가 어쩌다 보니 수제 스피커 장인이 되어 나타났다.
과연 지난 2년간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012년 6월 20일, 19년간 MBC 방송기자로 폼 나게 살던 중년 사내가 회사에서 쫓겨난다. 회사 선후배들과의 관계는 물론, 주변 평판이 좋은 언론인이자 20년간 50개의 스피커를 탐닉했던 AV애호가이며 퇴근 후면 늘 한강을 누비던 라이더로 살아온, 좀 놀 줄 아는 평범한 아저씨의 인생에 유례없는 위기가 닥친 것이다.
평화롭던 그의 인생은 해고와 동시에 급박하게 흘러갔다. 복직할 수 있을 거란 희망과 절망이 파도처럼 수시로 들이쳤다가 빠져나갔다. 일상은 무너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좌절감은 커져만 갔다. 그러나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했다. 계속 소파에 붙어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하여 해직 후 3개월을 허송세월로 보낸 어느 날, 남아도는 시간에 뭐라도 하자는 생각에 목공예에 발을 들인다.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몸을 움직여 세상에 단 하나뿐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목공의 재미에 이내 깊게 빠져든다. 일은 점점 커져서 급기야 입문 두 달 만에 ‘내 손으로 만든 세상에 없던 스피커, 평생 쓸 진짜 멋있는 스피커’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해고당한 지 약 1년 뒤, 갖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수제 스피커 장인이 되어 [GQ]에서 극찬한 명품 스피커, 드라마 [밀회]의 스피커와 함께 돌아왔다.


입이 막힌 기자, 스피커로 세상에 말을 걸다!

MBC 경영진은 정권의 언론 길들이기 정책과 낙하산 사장 선임에 반대하며 170여 일간 벌어진 파업의 배후로 그를 지목했다. 물론, 증거는 없었다. 파업을 주도한 지도부도 아니었다. 전임 노조위원장이긴 하지만 한참 전에 임기가 끝난 터였다. 대학 시절 별명이 ‘베짱이’ ‘부르주아 한량’이었을 정도로 운동권 근처도 안 간 사람이라 평생 투철한 신념을 품어본 적도 없었다. 아무도 안 맡으려는 짐을 등 떠밀려 맡은 것뿐이었다. 눈 딱 감고 노조위원장 자리를 거절했으면 일신은 지킬 수 있었는데 차마 그러지 못한 결과가 해고였다.

아픔은 너무나 컸다. 함께 해고된 동료 중 누군가는 박사과정을 등록하고 누군가는 여행을 떠났다. 그 와중에 좋은 기회도 찾아왔다. 독립 언론이나 타 방송사에서 커리어를 계속 이어갈 수도 있었고, 억대 연봉을 제시한 대기업 홍보임원 자리도 있었다. 그런데 어차피 마음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인생이라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기로 결심한다. 맞서 싸우는 전장도, 호의호식하는 길도 버리고 40대 후반의 나이에 수제 스피커 장인이라는 엉뚱함에 가까운 전혀 새로운 길을 택한다. 그것도 결연한 게 아니라 신나게.

인생 2막, 자존심을 지키면서 스트레스 없이 살기

언론을 길들이려는 정권에 맞서 언론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과 원칙을 지키려다 나락에 빠졌다. 생계와 직업인의 자존심 모두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박성제 기자는 불확실한 미래에 겁먹거나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이 기회에 재밌게 살기로 결심하고 맹렬히 실천한다. 거기에는 나름의 원칙이 있다.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일을 선택하고, 결심했으면 뒤를 돌아보지 않고 저지른다. 생각할 시간에 일단 부딪혀 보고, 주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구한다. 이 원칙에 입각해 탄생한 것이 바로 쿠르베 스피커다.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는 평탄한 삶을 살던 한 남자의 인생에 휘몰아 닥친 지난 2년간의 풍파인 동시에 국산 하이앤드 스피커 ‘쿠르베’의 탄생 스토리다.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일군 창업기는 인생 2막을 꿈꾸는 사람들의 로망을 자극한다. 창업 아이템 자체가 ‘취미를 파고들다가 만난 것’인데다 손수 단 하나뿐인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이기에 흥미는 더욱 증폭된다. 생각에만 머물지 않고 바로바로 밀어붙이는 국가대표급 추진력은 그 어떤 자기계발서를 읽은 것보다 더 큰 자극으로 다가온다. 어쩌다 목공을 시작한 이야기부터 그러다 한 단계 한 단계 사업체를 꾸려나가는 좌충우돌 모험기를 읽다보면 한편의 청춘영화를 보는 것처럼 활기찬 에너지가 샘솟는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불안 ·초조해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인생 2막에 직면하거나 마주하기 직전인 사람들에게 쿠르베는 아름다운 소리로 너무 겁먹지 않아도 된다고, ‘나도 했으니 너도 할 수 있어’라고 말을 거는 듯하다.

다들, 잘 살고 계십니까?

이 책은 그저 누군가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진행 중인 우리 사회의 이야기이자, 어느 누구나 언제든지 겪을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뉴스 속에서나 만나던 정치사회 문제가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는지, 원칙과 자존심을 지키면서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MBC가 무너지는 과정을 지켜본, 그리고 무너진 건물의 파편처럼 떨어져나간 그가 지켜본 생생한 장면들을 통해 체감할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시련을 마주할지 모른다. 눈 한번 질끈 감고 모른 척 지내면 편하게 살 수 있는 선택의 순간에 놓일 수도 있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온 쿠르베가 ‘소리’로 그 대답을 대신한다.

추천사 - 입이 막힌 기자, 음악을 들려주는 스피커로 세상에 말을 걸다!

후배 박성제. 기자와 노조위원장과 스피커 회사 사장이라는 별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을 하나 같이 다 잘해냈거나 잘하고 있는 사람. 하도 자랑하여 그의 스피커를 들어보는데 그가 스피커를 만든다는 사실보다 그 스피커의 수준이 굉장하다는 것이 더 놀랍다. 그러나 그는 기자이고 그게 더 어울린다. 이제는 그와 같은 장에서 일할 수는 없게 되었으니, 훗날에라도 내가 현역으로 있는 동안 박성제가 만드는 뉴스와 경쟁하고 싶다. 힘들고도 즐거운 경쟁이 될 것 같다. 누가 뭐래도 박성제는 기자여야 한다.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

해고 이후 그가 공방에서 만들었다며 와인 진열장 사진을 보여줬을 때 그저 '참 재주도 많지' 생각했다. 나무를 깎아 뭔가를 만드는 것은 해고가 주는 상처와 무료함을 달래는 데 제격일 것 같았다. 그런데 웬걸, 몇 달 뒤 그는 직접 만든 첫 번째 스피커를 들고 [뉴스타파]에 찾아와 기증했다. 그날 나는 그를 [뉴스타파]에 데려오려던 생각을 포기했다. 그의 재능과 열정이 공영방송 뉴스를 통해 빛났더라면 세상이 얼마나 더 좋아졌을까? 쿠르베가 날로 사랑받는 것을 보며 나는 오히려 그의 복귀를 소망한다.
최승호 [뉴스타파]앵커, 前[PD수첩]책임PD

마치 마이더스왕처럼 저자 박성제가 손으로 만져온 것은 모두 빛을 발하고 활력을 뽐냈다. 뉴스 취재, 노조 활동, 스피커 제작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의 공통점은 들리지 않는 것을 듣게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끝내 문화방송 MBC로 돌아가려는 그의 꿈은 이뤄져야 한다. 소통의 최전선이며 불통의 현장, 바로 최고의 스피커는 그곳 언론이기 때문이다.
노회찬 17,19대 국회의원

오랜만에 박성제 선배를 만나고 어딘지 모를 예술가의 향기를 맡은 건 멋지게 자란 수염 탓이 아니었다. 스피커를 만들고 있다며 건네는 명함을 받아보니 험난했던 그의 인생 항로가 그려졌다. 하지만 그 고독한 시간들은 멋지게 담금질되어 아름다운 스피커로 승화되어 있었다. 앞으로의 선배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진다.
박혜진 아나운서

박성제
저자 : 박성제
저자 박성제는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부모 속 별로 안 썩이는 ‘범생이’로 자랐다. 서울대 재학 시절에는 남들 다 하는 데모도 안 하고 음악과 오디오에 빠져 ‘베짱이’로 지냈다. 대학 졸업 후 MBC에 입사해서도 골프 잘 치고 술 잘 먹는 ‘한량 기자’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거절을 못하는 성격 덕에 덜컥 노조위원장이 됐다. 그때부터 좌빨 언론인으로 몰려 인생이 꼬이기 시작하다 급기야 2012년 파업의 배후로 지목되어 해고당했다. 그리고 400여 일간의 좌충우돌, 절치부심, 와신상담하다가 난데없이 직접 개발한 스피커를 들고 어둠에서 돌아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피커를… WWW.COURBEAUDIO.COM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프롤로그
해고 통보는 문자로 날아왔다
 
나는 골프 치는 한량 기자였다
그래서 말인데… 박 기자가 하면 안 될까?
사장님을 만나 롤러코스터를 타다
공수부대장 김재철, 그리고 열린 방송의 적들
1백70일의 파업, 그 자리에 남겨진 사람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내 손으로 만든, 세상에 단 하나뿐인 당신
기자가 스피커 만드는 게 어때서요?
‘죽이는 디자인’은 닦인 길 위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러다 정말 스피커 회사 차리겠어요
초짜 자영업자의 세상은 MBC 기자가 살던 곳이 아니었다
디자이너 박 선생님이세요?
나를 위로하지 마, 내가 위로할게
고마워, 여보. 그리고 사랑해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에필로그 나는 돌아간다, 반드시

나를 잘 아는 친구들과 취재원들은 내가 노조위원장이 됐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한번은 대학 동창회에 나갔다가 “너 같은 부르주아 한량이 노조 운동을 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는 말까지 들었다. 내가 노조 운동을 한 것은 거절을 못 하는 내 성격 탓이다. 나는 그저 원칙을 버리기가 싫었다. 기자회장 박성호 씨도, YTN의 노종면 기자도 마찬가지다. 모두들 평범하고 일밖에 모르는 언론인이었다.---p.125

순강이는 가족을 걱정하면서 눈을 감았다. 그를 화장하던 날, 부인과 두 딸은 너무도 서럽게 울었다. 누가 어떤 말로 그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나는 한마디도 건네지 못했다. 친구를 잃은 슬픔도 컸지만 남겨진 가족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이 계속 나를 괴롭혔다.
친구를 보내고 난 후, 나는 며칠 동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밤마다 온갖 상념이 머릿속을 헤집어놓았다. 순강이가 병을 얻은 이유는 뭘까? 친구가 남기고 간 가족을 앞으로 어떻게 보살펴야 하나? 나는 건강하게 살고 있는가? 지금까지 내 인생은 과연 괜찮은 편이었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가 복직을 못 하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될까? 또 MBC는 어떻게 되나? 답이 없는 질문들, 해고당한 후에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수없이 던지고 또 되뇌었다. 그러다 결국 내가 얻은 결론은 간단했다. 절대 스트레스 받지 말자. 즐겁게 살자. ---p.132

다음날 나는 세무서를 찾아갔다. 사업자 등록을 하기 위해서였다. 남아도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적당히 하는 소일거리는 싫었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우선 내 이름 석 자를 걸고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 비록 혼자 하는 자영업일지라도. 내가 만든 제품을 떳떳하게 사람들에게 알리고, 정가를 받고 판매하고, 이익이 나면 세금도 낼 것이다. 이왕 하는 것, 대충대충 하는 건 내 성미와 맞지 않는다. 내가 언제 MBC로 돌아갈지는 모르지만 그때까지 해직 언론인으로서 내 자존심을 지키며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다.---p.203

돌이켜 보면 지난 2년여의 내 삶은 한마디로 좌충우돌이었다. 해고 이후 분노를 달래기 위해 시작한 목공, 대선 이후 짓밟힌 복직의 희망으로 인한 좌절 속에서 만들어낸 쿠르베, 그리고 스피커 제조 회사 대표로 변신하기까지. 고비마다 나는 쉽지 않은 선택을 해야 했다. 선택의 기준은 오직 하나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결정하면 뒤돌아보지 않고 밀어붙인다. 잘 되든 못 되든 모든 결과는 내 책임이다.---p.271

어떤 힘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 왔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그 추진력의 가장 중요한 원천은 쇠뿔도 단 김에 빼는 나의 성격이 아니었을까.
원래 나는 성질이 급한 편이었다. 특히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한다. 누가 어떤 음악이 좋다고 하면 당장 음반 매장으로 달려갔고, 좋다는 영화가 나오면 개봉 첫날 봐야 직성이 풀렸다. 이런 급한 성질은 MBC 기자가 되면서 더욱 증폭됐던 것 같다. 한 달 만에 쿠르베의 디자인과 개발을 끝내고 2주마다 하나씩 작은 모델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20년 동안 몸에 밴 기자의 속전속결 정신이 큰 역할을 했다. ---p.275